저는 오스트리아에서 2년 과정의 “요양보호사 직업교육”을 받고 지금은 연방주에서 관리하는 한 요양원에서 3~40여명의 동료직원들 사이에서 근무를 합니다.

 

이곳에서 직업교육을 받았고, 이곳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착”을 잘했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습니다.

저는 이곳에서는 언제나 “사오정”이니 말이죠.^^;

 

저는 이곳 사람들의 사투리를 못 알아듣는지라,

내 앞에서 빠른 사투리들이 왔다 갔다 하면 이해 불가.

 

내 앞에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은어”로 이야기해도 못 알아듣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멀뚱거리며 쳐다볼 뿐이죠.^^;

 

처음에 직업교육 받을 때는 허구한 날 울었더랬습니다.

 

내 독일어 실력이 딸린다고 내 머리가 딸리는 것은 아닌데, 사람들이 날 모자란 인간 취급하는 것이 서러워서 울었고,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를 하고 암기를 하면서 시험에 임했습니다.

 

시험점수가 잘 나오고 내가 그들보다 공부를 더 잘하면 날 다르게 볼 거라는 생각했었는데..

그것은 나만의 오산이었습니다.

 

내가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현지인들은 자기네끼리만 어울립니다.

외국인인 날 그들 사이에 끼워주지는 않았습니다.

 

직업교육을 마치고 요양원에 근무 중인 요즘도 달라진 건 별로 없습니다.

난 요양원에 근무하는 직원 중 제일 새내기이고, 거기에 외국인입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여자가 셋 이상만 모이면 사이가 심상치 않죠.

우리 병동에는 3~40여명이 근무를 하는데, 그중 대부분은 여자들입니다.

 

여자 30여명이 모여서 일을 하니 그들 사이에 보이게 안 보이게 오가는 암투들이 많습니다.

서로의 뒷담화는 기본이고,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이 집중적으로 화제에 오르죠.

 

직원 중 제가 실습생일 때부터 저를 챙겨준 직원 몇몇은 저도 편안하지만,

안 그런 직원들도 있습니다.

 

눈빛부터 저에게 적대적인 직원들과 일을 해야 하는 날이면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을 하지만..

그래도 심적으로 쫄아드는 것 어쩔 수가 없습니다. ^^;

 

같이 일하는 직원들 중에는 어르신들을 끔찍하게 챙기는 정말 존경할만한 사람들도 있지만,

어르신들 윽박지르고, 소리만 버럭 지르면서 자기 할 일은 대충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전 어떤 그룹에 끼여서 일을 하던 간에 일단 저의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최소한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내이야기가 나온다 쳐도..

“그래도 일은 열심히 하고, 눈치껏 요령도 안 부리더라.”는 말은 듣고 싶어서 말이죠.

 

해도 안 되는 독일어 발음 때문에 직원들한테 놀림 받는 건 이제는 그러려니 합니다.

그들 나름대로는 내 발음이 “귀여워서”라고 하지만 놀림을 당하는 사람은 싫거든요.

 

사실 여러 사람이 하나를 바보 만드는 건 참 쉽죠.

 

현지인 직원들 사이에서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데,

난 외국인이고 신입이다 보니 시시때때로 그들의 놀림의 대상이 되기는 합니다.

 

요양원 어르신의 보호자들도 내 독일어 발음을 놀리듯이 하면 기분도 나쁩니다.

 

뜨거운 커피 같은 음료를 빨대로 드셔야만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뜨거운 음료를 빨대로 마시는 경우, 너무 뜨거우면 입천장이 훌러덩 벗겨집니다.

 

혹시나 이럴까 싶어서 음료를 드리면서 “조금씩, 천천히 드세요.”했더니만,

어르신을 방문한 어르신의 따님께서 뒤에서 내가 한말을 계속 흉내 냅니다.

 

“조금씩, 천천히”

 

나 같으면 거동도 못하는 내 엄마를 보살펴 주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외국인이 됐건 내국인이 됐건 간에 감사하겠구먼, 이따위로 놀리는 짓은 하면 안 되죠!

 

요양원 어르신들의 가족들에게 감사와 존경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이런 놀림은 사양하고 싶습니다.

 

그들딴에는 아무리 내 발음이 “귀엽다”고 해도 말이죠.^^; (정말일까???)

 

며칠 전 근무 중에 오후 3시가 넘어가니 어르신들을 모시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직원들이 부산을 떨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모르는 이벤트가 있는 것인지..

 

“오늘 뭐 있어? 왜 모시고 밖에 나가는데?”

“휴게실에 있는 근무일지 못 봤어?”

“봤는데?‘

 

내가 읽은 근무일지에는 오늘 무슨 행사가 있다는 것 못 봤는데..

 

이쯤 되니 남자 간호사가 대화에 끼어듭니다.

 

“근무일지를 읽기는 했는데, 무슨 뜻인지는 몰랐지. 그치?”

 

이때 열 받아서 속으로 한마디 했습니다.

 

"그래 이놈아~ “

 

 

 

인터넷에서 캡처 -perchten= Krampus

 

이날 했던 행사는 요양원 입구에 만들어 놓는 가판대에서 파는 펀치도 마시고,

니콜라우스(산타)와 천사 그리고 Krampus 크람푸스도 온다는..

 

우리나라에는 없는 등장인물인데, 크리스마스에 산타가 좋은 일을 한 아이에게는 선물을 주지만, 나쁜 일을 한 아이에게는 크람푸스가 찾아와서 벌을 준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남자 간호사의 말대로 읽기는 했는데, 그 뜻은 몰랐던 단어가 있기는 했습니다.

 

 

 

근무일지에는 12월에 요양원 입구에 세워진 가판대에서 펀치를 파는 날짜와 시간들이 있었고.

12월 30일에는 불꽃놀이고 한다는 정보.

 

그 아래 휘갈려 쓴 것는 사실 그렇게 주의해서 읽지 않았었습니다.

 

근무일지에 쓰인 “Perchtenlauf페어흐턴라우프” 가 사실은 뭔지 몰랐습니다.

그냥 Krampus크람푸스라고 했으면 더 이해가 쉬웠겠구먼..

 

perchten페어흐턴+lauf라우프의 합성어로.

유령(보다는 악마에 가까운)+ 행진인거죠.

 

아무튼 밖에 나가서 구경하시고 싶은 어르신들을 몇 분 모시고 나갔습니다.

나가실 때는 돈도 조금 있으셔야 합니다. 밖에서 파는 펀치를 팔아주셔야 하거든요.

 

크람푸스가 요양원 입구까지 온다고 하니 새내기 직원은 궁금했습니다.

요양원 행사라는 것이 해마다 똑같아서 다들 알겠지만 새내기에게는 다 새롭죠.

 

우리 병동에 근무자는 달랑 3명. 요양보호사 2명과 간호사 한명.

 

셋중 하나는 병동을 지켜야 합니다.

도움이 필요하신 어르신이 계시면 달려가야 하니!

 

직원들 앞에 제가 말을 했습니다.

 

“나도 크람푸스 보러 가고 싶어.”

 

말인즉, 내가 어르신들 모시고 밖에 나가겠다는 이야기죠.

 

이렇게 까지 말을 했구먼.. 어르신 모시고 요양원 입구로 이동해서 거기서 있으니 병동에 있어야할 간호사가 나오면서 하는 말.

 

“지금 병동에 아무도 없거든, 너 빨리 들어가!”

 

“야 이놈아! 내가 크람푸스 보고 싶다고 했었잖아.”

 

이 말은 마음속으로 삭이고 얼른 병동으로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남자간호사도 저처럼 새내기인지라 그 녀석(20대 후반)도 이 행사가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그 날 퇴근해서 요양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투덜거렸던 거죠.

 

“내가 분명히 보러 가게다고 했는데도 다 나가버리는 바람에 나는 병동을 지켰어.”

“보러 가겠다고 말을 안했어?”

“했지. 그랬는데도 일이 그렇게 된 걸 어떻게 해!”

 

같이 근무하는 동료직원이라고 해도 발음이 어눌한 외국인 직원이어서..

그들에게 차별 아닌 차별을 받고, 왕따 아닌 왕따를 당하는 사오정인 것은,

내 언어가 아닌 언어를 말하고, 쓰고, 사용하는 삶이어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같은 외국인(라오스 출신)이라고 해도 4살 때 이민 와서 독일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하는 직원이 다른 현지인 직원들 앞에서 일부러 나의 실수를 대놓고 커다랗게 말할 때 나는 더 작아집니다.

 

내가 한 실수를 나에게만 살짝 와서 이야기 해주면 참 고맙겠구먼,

같은 외국인이 더 치사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당당하게 살고 싶지만 가끔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오정이 되기도 하는 것이 해외에서의 삶입니다.

 

사투리어서 못 알아듣고, 빨리 말을 해서 못 알아듣고, 은어로 말해서 못 알아들어 자꾸 되묻게 되고, 내가 아는 뜻인가 싶어서 되물어보면 또 다른 뜻으로 사용이 되는지라..

저는 이래저래 사오정이 됩니다.

 

저의 안타까운 사오정의 삶을 응원 해 주는 남편덕에 저는 천명이 넘는 크람푸스를 볼수 있는 축제까지 갔다왔으니 사오정의 삶이 그리 나쁜것만은 아닌거 같습니다.^^

 

외국인 남편과 외국에서 살고 있는 모든 한국인 아내들이여!!

그대들을 응원합니다.

올 한해도 기죽지 않는 한국인의 자긍심을 가지고 치열한 삶을 살아봅시다.^^

 

눌러주신 공감이 저를 춤추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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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18.01.08 00:30

 

가끔 돌아오는 누군가의 뒷담화입니다.

아시죠?

제가 친구가 없어서 스트레스 받으면 벽 보고 이야기하던가, 블로그에 쏟아내야 합니다.

 

“불쌍한 아낙이 하소연할 때가 없어서 여기다 하나부다.” 생각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17년 마감을 이틀 앞두고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과거라는 이야기죠.^^)

 

남편은 조금 이상한 성격입니다.

 

마눌이 조금 친절하면 오히려 삐딱선을 타고, 마눌이 심술을 있는 대로 부리면..

완전 아양덩어리로 변신해서는 마눌 비위를 맞추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이번에 요양원에서 하는 “불꽃놀이”는 꼭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시부모님께도 보러가자고 했었습니다.

 

“우리 요양원에서 불꽃놀이를 하는데, 이것이 그냥 시중에서 파는 폭죽을 터뜨리는 것이 아니고, 정말 폭죽 전문가가 만든 폭죽으로 하는 불꽃놀이야!”

 

신문기사까지 보여줬었습니다.

 

“이것 봐! 우리 요양원에 근무하는 나랑 동갑내기 직원이거든, 폭죽회사를 형이랑 경영한다는 말을 언뜻 들었었는데, 이 사람이 린츠 시에서 하는 새해맞이 불꽃놀이도 제작하나봐! 올해는 빨간, 파랑, 금색을 많이 써서 더 칼라풀한 불꽃놀이가 될 거라네. 그냥 동료직원인줄 알았는데, 15년째 불꽃(놀이)디자이너로 근무한다고 해서 깜짝 놀랐어.”

 

“이런 사람이 요양원 앞에서 불꽃놀이를 한다니 가서 꼭 봐야해.

폭죽 돈 주고 살 필요도 없이 전문가가 만든 불꽃놀이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야!“

 

동료직원에게 물어보니 요양원 직원이라고 해서 요양원을 위해서 “공짜”로 하는 불꽃놀이는 아니고, 요양원에는 조금 저렴하게 해주는 모양이라고 했습니다.

 

“오후 5시에 불꽃놀이를 한다니 4시쯤에 천천히 가서 요양원 앞에 음식도 판다니 그것을 사먹어도 좋고, 아님 근처에 케밥집에서 케밥을 사먹으며 기다려도 좋고!”

 

시부모님도 모시고 갈 생각이었는데,

시아버지는 스키점프 중계를 봐야 해서 안 가신다고 하시고..

시어머니는 가실 의향을 보이시는데,30분 거리를 걷기엔 무리가 있으시고!

 

이래저래 시간은 다가오고, 가시겠다던 시어머니께 살짝 가보니..

시어머니는 눈썹을 염색중이십니다.

 

나한테 “오후 4시에 출발하면 되지?”하면서 갈 의지를 보이시더니만, 4시 10분전에 염색 중.

 

제가 제일 싫어하는 타입입니다.

말을 했으면 지키던가, 아니면 미리 취소를 하던가!

 

시어머니와 어떻게 가는 것이 좋을지 열심히 고민했었는데..

미리 알았다면 길게 고민하지 않았을 것을...^^;

 

30분 걸리니 시간에 맞춰서 슬슬 걸어가려고 했었는데..

쇼핑몰에 자전거타고 장을 보러가자고 하는 남편이 꼬시는 한마디.

 

“당신이 나랑 자전거타고 같이 쇼핑몰에 갔다 와서 차로 요양원에 가자.”

 

이 말을 믿고 비도 조금 내리는데 남편이랑 열심히 자전거를 타고 쇼핑몰에 갔다 오니..

 5시 22분전.

 

불꽃놀이는 5시에 시작을 한다니 빨리 서둘러 차를 몰고 가야하는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이 차열쇠를 찾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

 

“당신이 서둘러서 내가 열쇠를 어디에 뒀는지 모르잖아.”

“아니, 쇼핑몰에 장보러 갈 때는 당신이 먼저 나가 있어서 내가 문을 잠뒀구먼. 뭘 서둘렀다고?”

 

열쇠를 찾으면서 계속 궁시렁거리는 남편.

 

“가도 주차장도 없을 거 같은데..”

 

내가 제일 싫어하는 타입입니다.

말을 했으면 지킬 일이지, 가기 싫은 티를 내는 거죠.

 

열쇠도 안 보이고, 가면 주차할 자리고 없을 거 같고..

 

이제 5시 20분전.

남편은 열쇠를 찾느라 궁시렁 거리면서 왔다리~ 갔다리~

열 받아서 그냥 집을 나왔습니다.

 

걸어갈 생각으로 나오기는 했는데, 아무리 부지런히 걸어도 20분으로는 부족합니다.

가봤자 불꽃놀이는 이미 끝났을 테니 말이죠.

 

가도 못 볼 것을 아는데, 굳이 걸어갈 필요는 없는지라,

골목을 나섰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면서 괜히 눈물도 나서 성질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혼자서 천천히 걸어갈걸, 그럼 마음 편하게 걸어갔다 올수 있었는데..

내가 왜 그 말을 믿고 기다렸다가 보고 싶은 불꽃놀이도 놓치는 것인지..”

 

집에 다시 돌아오니 그사이 남편은 열쇠를 찾아서 문을 잠갔네요.

(남편 열쇠꾸러미에 자동차, 문 열쇠가 다 있습니다.)

 

열이 확 받았습니다.

 

마눌이 걸어가도 시간은 이미 부족한 상태라 못 볼 것을 알고 있을 남편인데, 열쇠를 찾았으면 마눌에게 전화를 해서 “열쇠 찾았으니 차를 몰고 나갈게, 어디쯤 있어?” 하는 것이 정석이건만, 이 인간은 찾은 열쇠로 문을 잠그고 방에 있습니다.

 

안에 열쇠가 걸려있으면 밖에서 문을 열수 없는 구조의 문!

열심히 두드리니 남편이 나오면서 하는 말.

 

“열쇠 찾았어.”

 

마눌이 아무 말도 안하니 다시 하는 말.

 

“요양원에 갈까?”

“...”

“내가 열쇠 찾아서 뛰어나갔는데 당신이 벌써 가고 없더라?”

“나 골목도 벗어나지 못하고 돌아왔는데 어디를 뛰어?”

“차 (마당) 있는데 까지 갔었어.”

 

차타고 요양원에 불꽃놀이 간다는 그 말을 믿고, 비도 오는데 자전거타고 장보는데 따라갔다 왔구먼, 열쇠가 안 보인다고 궁시렁, 주차할 곳이 없을 거라고 궁시렁 하던 남편.

 

다시 돌아온 마눌에게 “요양원 갈래?”를 묻고 또 묻습니다.

아까 이미 둘이서 합의를 본 사항인데 왜 이리 묻는 것인지..

 

이미 열받은 마눌의 입에서 순순히 "그래!"는 안 나옵니다.^^;

 

내년에는 보지 못할 불꽃놀이인지라 전문가가 만든 불꽃놀이는 얼마나 근사한지 보고 싶었는데..

요양원에 가지 못한 모든 상황에 짜증이 났습니다.

 

시간은 흘러서 불꽃놀이는 이미 끝났을 시간!

마눌이 화가 난 것을 나는 남편이 납작하게 엎드려서는 “미안해”를 연발합니다.

 

“내가 열쇠를 찾을 때 조금 기다리지. 당신이 가버려서 1시간 있다가 올줄 알았어.”

“내가 걸어가도 이미 시간이 늦어서 못볼것을 알고 있었잖아.”

“그러게 조금 기다리지 왜 먼저 가서는..”

“왜 나 때문에 열쇠를 못 찾는다고 짜증을 낸 거야?

쇼핑몰 갈 때는 내가 서둘러서 간 것이 아니라 이미 당신이 먼저 나가있었잖아.”

“그건 내가 잘못했어.”

“그리고 내가 다시 돌아왔음 빨리 차를 몰고 요양원에 출발을 해야지 왜 가겠냐고 묻고 또 물었어?”

“당신이 가자고 했음 갈려고 물어본 거지.”

“아까 장보고 자전거 타고 갈 때 우리가 뭐라고 약속했어? 장보고 와서 차타고 요양원 간다고 했었잖아. 그런데 뭘 자꾸 물어?”

“그 사이 당신이 마음이 변했을까봐.”

“약속을 했음 지켜야 하는 거야. 물을 필요가 없는 거지.”

 

사실 남편은 가기 싫으니 다시 돌아온 마눌에게 정말로 갈 것인지를 묻고 또 물었던 거죠.

 

"내가 누굴 탓하니? 멍청한 내 탓을 해야지.“

“....”

“내가 자전거 타고 장보고 오면 차타고 가자고 해도 그냥 혼자 천천히 걸어갔음 제대로 구경할 수 있었을 텐데, 괜히 그 말을 믿어서 이렇게 된 거지.”

“미안해, 내가 가려고 했는데, 열쇠를 못 찾았었고, 열쇠를 찾았을 때는 당신은 이미 없었고, 다시 돌아온 당신에게 물어도 당신이 대답을 안 하니 안 간 거지.”

 

남편 입을 꿰매고 싶은 순간이었습니다.

이미 성질이 있는대로 나있는 상태인데 자꾸 “갈래?”만 묻는 남편.

 

이미 성질이 머리끝까지 나있는데..

불꽃놀이이고 뭣이고 이미 물 건너 간거죠.

 

제가 성질이 나면 헐크가 됩니다.

그래서 남편이 아주 많이 조심을 하죠.

 

남편은 항상 이런 식입니다. 마눌이 안 간다고 해도 자신이 가는 곳은 마눌을 꼭 끌고 다니죠.

물귀신처럼 쇼핑몰에 장보러 가는 것도 꼭 마눌을 달고 가려고 합니다.^^;

 

고치려고 해도 잘 안 되는 것 중에 남편의 못된 버릇이 하나있습니다.

열쇠든 다른 물건이던 안 보이면 항상 마눌 탓을 먼저 합니다.

 

“당신이 열쇠를 어디다 뒀는지 찾을 수가 없잖아.”

 

“당신이 서두르는지라 나도 덩달아 그러다보니 열쇠가 어디 있는지 못 찾잖아.”

 

마눌은 열쇠를 만진 적도 없는데, 항상 이런 식으로 마눌에게 짜증을 냈었습니다.

 

“잘 찾아봐, 바지 주머니도 보고, 재킷 주머니도 보고, 가방도 보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남편이 놓아둔 곳에서 열쇠를 찾곤 했습니다.

 

시어머니가 뭐든지 시아버지 탓을 하는데, 남편은 뭐든지 마눌 탓을 합니다.

시어머니의 가장 안 좋은 성격을 남편이 고스란히 빼다 박았습니다.^^;

 

이번에도 그런 순간이었던 거죠.

마눌은 열쇠를 만지지도 않았는데, 마눌이 서둘러 나가느라 열쇠를 잃어버렸다니!

 

“당신 안 좋은 버릇 중에 마눌 탓하는 거 있는데 그거는 매번 지적을 해도 안 고쳐지네.

이번에는 열쇠를 어디에서 찾았어?”

"내가 나뒀던 테이블 모퉁이에서.“

“그런데 왜 나 때문에 열쇠를 못 찾는다고 했어?”

“그건 잘못했어.”

“그리고 사람이 한번 약속을 했음 지킬 일이니 왜 그래?”

“그건 열쇠를 찾는 중에 당신이 먼저 나갔고, 열쇠를 찾았을 때는 당신이 이미 가고 없었고, 당신이 돌아 왔을 때 요양원 가겠냐고 물었을 때 당신이 가자고 했음 가려고 했어.”

“이미 약속을 한 일이고, 내가 다시 돌아왔음 빨리 열쇠를 챙겨서 나왔어야지.”

“....”

 

가끔은 내가 행복한줄 알았는데, 이런 상황을 만나면 온갖 짜증이 다 올라옵니다.

 

요즘은 남편이 출퇴근을 시켜주는지라 감사하지만, 퇴근길에 슈퍼에 들러서 구경도 하고 물건도 사면서 힐링하는 마눌이 슈퍼에 잠시 들리자는 요청을 무시하고 그냥 집으로 직진 해 버리는 것도 은근히 짜증이 납니다.

 

퇴근 무렵에는 야채들을 절반가격에 살 수 있는 지라,

은근 그걸 즐기는데 못하니 이것도 스트레스가 되기는 하더라구요.

 

마눌이랑 요양원에 불꽃놀이 보러가는 것이 싫었음 그냥 마눌혼자 갔다오게 두던가,

가겠다고 약속을 해놓고 마눌도 못 가게 만든 상황도 짜증이 나고!

 

성질 나 있는 상태인데 시어머니가 전화를 해 오셨습니다.

안 받았더니만 문으로 열쇠를 따고는 며느리가 있는 주방까지 오셨습니다.

 

“넌 왜 내 전화 안 받았냐?”

“화장실에 있었어요.”

 

사실은 남편 때문에 성질이 난 상태라 시어머니의 짜증스럽게 높은 톤의 목소리도 듣기 싫었습니다.

 

늘 누구탓을 하는 시어머니의 안 좋은 성격을 그대로 닮은 남편이 미우니 당근 시어머니도 밉죠.

 

“낼 점심을 먹으러 올 것인지 물으려고 했는데, 왜 전화를 안 받아서리...”

 

그러면서 시누이가 있는 방문을 여시려고 하십니다.

 

“지금 당신 아들은 테니스 치러 나갔고, 당신 딸도 파티하러 친구 집에 가서 둘 다 없어요.”

“그럼 물어보고 알려다오.

내일 점심을 먹으러 올 것인지 말 것인지, 안 먹으러 오면 안 해야지.”

 

연휴라 시누이가 집에 와있고, 덩달아 우리부부의 점심까지 챙겨야 하는 시어머니는 부담스러운 기간이지만, 그렇다고 며느리에게 짜증을 내면 안 되는 거죠.

 

항상 남편을 맞춰주려고 노력을 하고, 왠만하면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고 노력을 했었는데..

마눌이 착하니 남편이 못되지는 거 같아서 새해에는 조금 못되질 생각을 해봅니다.

 

평소에는 그러려니 하는 일들이 지금은 다 짜증스럽기만 한 날입니다.

 

근무 끝나서 퇴근해서 뜨거운 욕조물에 몸 좀 담가볼까 싶어 욕실에 가보면 하루종일 집에서 휴가를 즐기는 시누이가 샤워할 물도 안 남기고 물을 다 써버려서 나를 황당하게 만들고,

(도대체 배려는 전혀 모르는 듯) -평소에는 우리부부가 다 목욕을 해도 남는 온수의 양인디..-

 

왠만하면 자정에 자면 좋겠는데, 새벽 2시까지 TV보면서 휴가를 즐기는 남편은 마눌 잠 못 들게 TV를 틀어놓고, 근무가 없는 날은 조금 늘어지게 잘까 싶은 아침, 7시에는 라디오가 자동으로 켜지면서 시끄러운 뉴스가 내 잠을 깨우고..(오늘도 5시간도 못잔 날입니다.^^;)

 

이 빌어먹을 연휴가 빨리 끝났음 좋겠습니다.

 

시누이도 얼른 돌아가고, 남편도 다음날 출근을 위해서..

자정에는 TV끄고 잠자리에 드는 일상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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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18.01.02 01:16

 

사람은 자신이 타고난 팔자보다는..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과 노력한대로 살아지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자신의 삶을 조금 더 행복하게 바꿀 수 있음에도 그런 시도는 접어놓고 그냥 사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제 주변에는 그런 사람들이 보이는걸 보면 말이죠.

 

오스트리아 시집와서는 내내 남편의 양아버지를 돌보느라 집안에만 있어서, 독일어도 기초에 가깝고, 사는 낙도 없는 내 친구. 가까이 있을 때는 만날 때마다 푸념을 듣느라 내가 스트레스를 받았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이야기를 해도 내말을 듣기보다는 매번 만날 때마다 같은 불평만 하던 친구.

아마도 그녀에게 필요한건 그저 그녀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사람이었나 봅니다.

 

고향으로 돌아가서 “잘 지내고 있나?“했던 친구는,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오스트리아로 돌아왔습니다.

 

엄마 병간호를 간다고 하더니만, 다시 돌아온 건 이유가 있어서 왔겠지요.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은 아래를 클릭하시라.

 

http://jinny1970.tistory.com/1636

친구가 돌아왔다.

 

다시 돌아와서도 그녀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남편의 양아버지인 백인 할배를 돌보는 24시간 간병인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할배의 친딸은 외국에서 온 전문 요양인보다 더 싼 가격으로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셈이죠.

지금은 하루에 50유로정도를 받으면서 한 달 일을 하면 1500유로정도 월급을 받습니다.

 

원래 일을 하면 고용주가 4대 보험 따위는 내주는 것이 맞지만, 그녀는 “불법”으로 일을 하고 있는지라 고용주가 내줘야 하는 보험료 혜택도 못 받고 있습니다.

 

나중에 직업교육을 받으려면 4대 보험은 내고 있어야 하는데, 그녀는 불법으로 일을 하는지라 그런 혜택을 받을 수가 없어서, 나중에 직업교육을 받을 목적으로 그녀가 받는 월급 1500유로중 500유로를 투자해서 “4대 보험”을 내는지라 실제로 그녀 손에 쥐는 돈은 천유로 남짓입니다.

 

 

그녀와 그녀가 돌보는 남편의 양아버지.

 

다시 돌아와서도 남편의 양아버지를 돌보고 있는 친구는,

해마다 그분의 생일에는 사진을 찍어서 페이스 북에 올립니다.

 

0대 중반이시 할배는 아직 정정하시지만,

언젠가 그분이 돌아가실 때면 친구는 어떻게 자기 인생을 펴나갈지 궁금합니다.

 

다시 돌아온 친구에게 내 딴에는 중요한 조언도 했었습니다.

 

“간병하는 할배가 돌아가시면 네 남편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빨리 네 국적부터 바꿔놔.”

“그것이.. 남편이 회사에서 떼어놔야 하는 서류를 안 떼어다 줘!”

“그럼 그것 말고는 다 준비가 되어있고?”

“아니, 서류가 워낙 복잡해서..”

“나머지는 네가 다 준비해놓고 남편에게 서류를 달라고 해야지. 그리고 남편이 안 주면 네가 남편 회사에 가서 필요한 서류를 떼어달라고 하면 되잖아.”

 

아무래도 국적을 바꾸는데 필요한 서류 중에 남편의 월급명세서 따위가 들어가고, 국적을 바꿀 때 내야하는 금액도 만만치 않은지라 남편이 흔쾌히 응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러면 그녀라도 열심히 수속을 진행해야 할 텐데..

그녀 또한 하는 일이 바빠서 그런지 오스트리아 국적취득은 계속 미루고 있는 듯이 보였습니다.

 

그녀에게 묻지 않았지만 그녀가 다시 오스트리아로 돌아온 이유는 알만합니다.

 

오스트리아에서 산 7년 세월이 그녀를 많이 변화 시킨 거죠.

 

다시 돌아간 동남아의 가난한 나라인 자신의 모국과 오스트리아를 비교하니..

그곳에서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 싶습니다.

 

이곳 생활이 힘들어서 고국으로 돌아갔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돈 버는 것이 그곳에서 저렴한 일자리를 찾는 것보다는 더 좋은 방법이었던 것인지 그녀는 다시 돌아와서 다시 24시간 간병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런 경우를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악기를 배워 40 평생 악기를 연주하고, 오스트리아 국내 정상의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활동을 했던 일본 아낙.

 

어느 날부터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아서 연주를 더 이상 할 수가 없었답니다.

 

10대 후반에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와서 40대 중반까지 학교를 다니고, 직업 연주인이 되어서 살았는데, 연주를 못하니 당연히 실업자가 된 거죠.

 

그렇게 일본으로 돌아갔는데, 그곳에서는 아무도 만날 수가 없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답니다. 자신은 일본인인데 일본 밖에서 살아온 삶이 더 긴 그녀는 외모만 일본인이였던거죠.

 

자신이 연주인으로 살 때 자주 다녔던 유기농 야채가게의 주인(남자)와 연락을 하고 지냈던 모양인데, 그분이 “그렇게 힘들면 그냥 여기 와서 같이 사는 것이 어떠냐?”고 했답니다.

 

그렇게 그녀는 유명 연주인으로의 삶을 놓고 다시 오스트리아로 들어와서 지금은 유기농가게를 하는 남자의 아내로 살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자신이 살수가 없어서 다시 오스트리아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말이죠.

 

 

 

 

24시간 간병하는 그녀는 가끔 휴가를 내서 짧은 여행을 가기도 합니다.

 

같은 도시에 사는 그 나라 사람들(교포)들은 다 남편을 좋게 보는 사람들인지라,

어디 가서 남편의 이야기를 해도 믿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래도 여행은 같이 다니는 모양입니다.

 

마음은 터놓지 못하지만 혼자 가기 힘든 여행을 같이 가주는 사람들은 많은 모양입니다.

 

 

 

그녀가 이렇게 페이스 북에 그녀의 여행 사진을 올릴 때쯤엔 항상 나에게 부탁을 해옵니다.

 

“지니, 혹시 주변에 24시간 간병할 사람 없을까? 한 3일정도.

일당은 하루에 50유로고, 여기까지 오는 왕복차비는 내가 부담하고.“

 

그녀는 나를 겨낭하고 이런 부탁을 해오는지 모르겠지만..

제 주변에는 이런 일을 할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하루 10시간 근무를 하면 100유로가 넘는 일당을 받는 전문 요양보호사가,

24시간 간병하면서 달랑 그 반도 안 되는 일당을 받는 일을 할리도 없거니와!

 

그녀가 너무 안타까워서 내가 도와주려고 한다고 해도..

다른 도시에 가서 생전 처음 보는 할배를 24시간 간병한다면 허락할 남편이 아닙니다.

 

“그냥 외국에서 오는 ”24시간 간병인“을 부르지 그래?”

“그렇게 부르면 하루 70유로도 넘게 줘야 하거든.”

 

아무래도 하루 50유로정도의 일당을 받는 자기 일당보다 더 주기는 부담이 되는 모양입니다.

 

지금은 멀리 있어서 그녀가 사람이 필요할 때만 연락을 해오는 정도입니다.

 

이번에는 1월 초순에 고향에 2주 동안 휴가를 간다고 “일당 55유로짜리 24시간 간병인”을 물어왔습니다. 내 주변에는 다 오스트리아 공식 “요양보호사”들인지라 이런 헐값에 일할 사람들도 없고, 더군다나 1월 초순이면 휴가철인지라 사람 구하기도 쉽지 않는데..

 

매번 그녀의 부탁에 “미안, 내가 아는 사람이 없고, 나도 시간이 안 되네”합니다.

 

나도 정해진 근무일에는 근무를 하러 가야하는지라, 들어주고 싶어도 들어주지 못하거든요.

 

그녀의 삶이 행복 해 보이지는 않지만, 그녀가 선택한 최선의 삶인 것 같기도 하면서도,

그녀가 돌보는 할배가 돌아가시면 오스트리아살이 10년차 아낙의 초보 독일어 실력으로 그녀가 원하는 직업교육을 받으면서 홀로서기를 잘할 수 있을지도 걱정입니다.

 

양아빠가 돌아가셨으니 그녀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는 그녀의 남편이 “이혼“을 요구하면 그녀는 이곳에 법적으로 머물만한 조건이 안 되는지라 쫓겨날 수도 있는데..

 

그녀의 남편이 그렇게 나쁜 인간은 아니길 바래보지만 사람일은 모르는 것인지라...^^;

이왕이면 좋은 쪽으로 결론이 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불행해진, 아니 어쩌면 행복의 시작일지도 모를 아낙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남편 회사 동료, 이태리 출신 박사 학위 엔지니어.

이태리 사람들이 다 바람둥이는 아니겠지만, 내가 아는 그는 쫌 그런(?) 바람둥이입니다.

 

여자를 만나면 첫날은 뽀뽀하고, 1주일이면 대충 다 즐기고 정리 끝~

그런 그가 그 당시 만나던 20대 초반의 러시아 아가씨가 임신했다는 들었을 때 우리끼리 했던 말.

 

“아니, 그 친구는 어쩌다가 그런 실수를 했을까?”

 

워낙 다양한 국적의 아가씨들을 주 단위로 바꿔가면서 만나온 그의 다양한 여성편력으로 봐서는 그는 “특 바람둥이”인데, 그가 러시아 아가씨를 임신시켰다니 놀라울 수 밖에 없었죠.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러시아 아가씨의 노력이었을 수도 있고 말이죠.

 

이 당시에 러시아에서 “오페어(아이 보러 오는 학생)“로 유럽에 입성한 아가씨들이 본국에 돌아가지 않기 위해 현지인 남성과 아이를 낳고 동거를 하다가 결혼을 해서는 합법적으로 눌러앉는 경우가 꽤 많았거든요.

 

그녀도 이런 류의 “오페어” 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어쩌다 이태리 바람둥이를 만나서 아이를 낳고 함께 살았습니다.

 

아이를 낳고 살면서도 이태리 바람둥이는 끊임없이 바쁘게 다녔습니다.

 

주말 저녁에 연락 없이 그의 집에 살짝 들리면 아이엄마인 러시아아가씨가 하는 말.

 

“장보러 갔는데?”

 

그녀 앞에서는 말을 안 했지만 우리끼리는 알고 있었죠.

 

“또 샜구먼, 주말에 어디 가서 장을 본다고?”

 

아이를 낳고 살면서 러시아 아가씨는 이태리 바람둥이가 자신과 결혼해주길 바랬습니다.

 

학생신분이니 그냥 계속 학생비자로 합법적인 신분을 만들어주려는 남자의 마음과는 다르게,

여자는 배움에는 뜻이 없는지라 그냥 이곳에 살면서 일하고 싶어 했었죠.

 

러시아 아가씨가 결혼을 너무 원하는지라.. 같은 여자인 내가 보기에 참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이태리 남자와 친한 관계의 사람들만 모였을 때 제가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태리 친구는 왜 결혼을 안 하려고 하는 거야? 아이 낳아서 잘 키워주고 있잖아.

집에서 살림하는 마눌 노릇까지 다 하는구먼. 결혼은 왜 안 되냐고?”

“결혼을 하면 러시아아가씨가 원하는 것이 더 늘어나지.”

“뭐?”

“지금은 밖으로 나돌아 다녀도 아무 말 않지만 결혼을 하고나면 그런 것까지 단속하려고 들 거 아니야. 그것 때문에도 그렇고, 지금도 밖으로 나돌아 다니면서 여자들 만나는데, 나중에 더 좋은 여자 만났을 때 발목 잡히면 곤란하잖아.”

“그런 이유야?”

“일단 발목 잡히는 것이 싫어하지. 자유로운 영혼이잖아.”

 

뭐 이렇게 결혼을 원하는 그녀와, 결혼을 원하지 않는 남자의 줄다리기는 몇 년째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둘 사이에 태어난 딸은 너무 이뻐라 하는지라,

그녀와 아이 하나쯤은 더 가질 줄 알았습니다.

 

미국으로 파견 나가면서도 아이와 아이엄마까지 데리고 가서 2년을 보낸지라,

조만간 결혼을 하겠지 했었습니다.

 

그렇게 잘살고 있는 줄 알았던 그 커플의 소식을 최근에 들었습니다.

이태리 남자에게 새 여자가 생겼다고!

 

라틴댄스를 추러 다니던 그에게 새로운 파트너가 생긴 모양입니다.

그래서 아이엄마인 러시아아가씨와 헤어지려고 하는데, 아이 때문에 소송까지 들어갔다고!

 

이태리 법정에서 난 판결이 “아이 양육권을 엄마에게 주고, 양육비를 지급하라.“ 이었는지, 아님  ”아이는 네가 키워줘 (난 바빠서 아이 키울 시간이 없으니) 내가 돈줄께!“이었는 모르지만. 최근에 이태리 남자는 러시아 아가씨에게서 자유로워졌습니다.

 

남자는 월급에서 아이 양육비를 떼어줘야 하는 손해(?)는 보겠지만 나름 만족스런 지난 날일 테지만. 처음부터 “결혼”을 원하지 않는 남자를 만나서 몇 년을 결혼하려고 노력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잃어버린 러시아 아가씨의 지난 세월은 어디서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인터넷에 보면 남자가 결혼하고 싶게 만드는 방법이 있더라고.

거기에 있는 건 다해 보려고!”

 

마지막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가 했던 말입니다.

 

20 초반에 15살 연상의 남자를 만나서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면서 가정을 꾸려보려고 노력했었던 그녀는 처음부터 잘못된 선택을 했었던 걸까요?

 

그저 이태리 남자의 의도대로 하룻밤 사랑으로 끝났던 사이라면 지금쯤 그녀는 제대로 학교를 졸업해서 커리어우먼으로 지금보다는 더 당당한 자신의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나도 그녀와 같은 여자여서인 모양입니다.

 

처음의 내 친구도 두 번째 러시아 아가씨도 자신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대도 그들의 삶이 조금 아쉽고 애처롭고 그들의 시간이 조금 아깝게 느껴지는 건 왜인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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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17.12.30 00:30

 

남편은 경상도 남자라 참 무뚝뚝합니다.

 

남편을 “경상도 남자”라 칭하면 사람들은 제 남편이 정말 경상도 출신인줄 알지만..

아시는 분들은 아시죠? 제 남편은 오스트리아 사람입니다.^^

 

무뚝뚝하고 말도 별로 예쁘게 안 하지만 마눌을 챙기는 마음만은 살뜰한 남편.

문제는 그 마음이 보이지 않아서 마눌에게는 항상 “투덜거리고 무뚝뚝한 남편”이죠.

 

언젠가 저는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남편의 모습을 지인을 통해서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같이 있다가 제가 잠시 자리를 비웠던 모양인데..

남편은 앉아 있었지만 남편의 눈은 이동하는 마눌을 따라다니고 있더랍니다.

 

“그냥 따라 가지. 왜 앉아서 그렇게 눈으로만 쫓고 있누?”

 

보다 못한 지인이 이런 핀잔을 주니 남편은 그냥 웃기만 하면서,

눈은 여전히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마눌을 열심히 쫓고 있더랍니다.

 

어쨌거나 마눌이 느끼는 사랑보다 남들에게 보이는 마눌에 대한 사랑이 유난히 돋보이고 깊은 조금은 특이한 인간형이 바로 제 남편입니다.^^;

 

평소에는 “다정”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안 보이는 남편인데..

이번 휴가에서 마눌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남편의 모습을 봤습니다.

 

그래서 남편 뒤를 따라가면 마눌이 히죽거리면 혼자서 웃었답니다.

“내 남편이 날 이렇게 챙기네..”하는 마음에 말이죠.^^

 

 

 

우리는 눈신발까지 챙겨서 눈이 엄청 내린 산속을 걸었더랬습니다.

 

눈신발이 없었다면 허벅지 이상 빠져서 걸을 수 없는 상태였겠지만,

눈신발을 신으니 웬만한 곳은 다 무릎 아래정도의 깊이에서 마무리가 됩니다.

 

눈신발이 더 깊게 빠지지는 않거든요.

 

 

 

뒤 따라오던 마눌이 앞서가는 남편에게 한마디 했습니다.

 

“남편, 눈신발이 자꾸 벗겨져~”

 

벗겨진 신발을 다시 신으려는 마눌에게 남편이 가까이 와서는 눈 신발을 고정해줍니다.

 

고정하는 부분이 고무인데 영하의 날씨인지라 고무는 얼었고,

고정하는 부분을 열어서 작게 줄인 후 다시 끼우는 작업이 힘들고 더뎠습니다.

 

평소 같으면 마눌이 신발이 벗겨진다고 하면 “다시 신어~”했을 남편인데..마눌이 걷기 불편할까봐 장갑까지 벗고는 언 손으로 마눌 신발을 고정하는 남편을 내려다보면서 마눌 입이 귀에 걸렸습니다. 너무 좋아서 말이죠.

 

오해마시라~

 

남편이 고생하는 것이 쌤통이어서 좋아한 것이 아니고,

마눌이 생각하는 남편의 마음이 보여서 좋아한 겁니다.^^

 

 

 

눈길을 걸을 때도 절대 마눌을 앞서게 두지 않습니다.

 

“남편, 내가 앞에서 걸을까?”

“아니야, 당신은 그냥 뒤에 따라와.”

“앞에서 걷기 힘든데..당신이 힘들면 내가 조금 걸으면 되잖아.”

“아니야, 됐어.”

 

무거운 눈신발을 신고 걷는 것이 생각보다는 조금 더디고, 힘이 듭니다.

 

남편 뒤를 따라가는 마눌이야 남편이 만들어 놓은 발자국에 다시 발을 편안합니다.

하지만 처음 발자국을 찍은 남편은 힘이 들죠.

 

 

 

마눌에게는 그냥 “내가 찍어놓은 발자국만 밟으라”는 남편인지라..

너무 편안하게 눈길을 걷는 거 같은 마눌이 남편의 발자국을 벗어나봤습니다만,

몇 걸음 걷지 못하고 다시 남편의 발자국으로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눈 위에 발자국을 내는 것이 생각보다는 온몸에 힘이 들어가는 작업인지라,

몇 걸음 걷고 나니 숨도 차고, 다리도 아프고..

몇 걸음 안 걸어도 이리 신체적인 변화가 바로 오는 것을..

남편은 한 시간을 넘게 앞에서 묵묵히 걷고 있었습니다.

 

마눌은 조금 편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자신이 찍은 발자국만 따라오라고 하고,

마눌이 앞서서 발자국을 남기며 걷겠다고 해도 힘드니 말렸던 거였죠.

 

뽀드득 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아무도 없는 산길을 걸으면서 마눌은 참 많이 행복했습니다.^^

 

눈신발이 벗겨졌다고 타박하지 않고, 마눌 크기에 맞게 고정을 해주고.

마눌이 힘들까봐 자신의 발자국만 밟고 따라오라던 남편.

 

오늘 마눌은 (마눌을 끔찍하게 챙기는)남편의 마음을 봤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힘든 눈길을 걸어도 투정하지 않고 조용히 따라다녔습니다.

 

“매일 이런 마음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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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17.12.18 00:30

 

거의 3년 만에 그녀를 만났습니다.

 

3년 전 카리타스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다녔던 Maiz에서 만났었죠.

 

Maiz에서 배운 것이 많지는 않았지만,

6개월 동안 독일어나 배우자 하는 마음에 다녔던 곳입니다.

 

마이스가 궁금하신 분은 아래를 클릭하시라.

 

http://jinny1970.tistory.com/1418

지금은 Maiz 교육중

 

거기서 만난 나와 동갑내기 2명중 한명입니다.

 

Maiz의 강의가 끝나기 전에 저는 카리타스 학교에 입학을 하느라 나왔지만, 나와 동갑이던 태국아낙(대졸), 티키와 아르헨티나 아낙인 마리아는 “중학교 과정”을 배우겠다고 했었습니다.

 

태국에서 미대를 나왔지만 독일어가 유난히 어눌했던 티키는 독일어를 배울 생각으로 오스트리아 (무료) 중등과정에 등록을 했고, 아르헨티나에서 학교를 다니지 않았던 마리아는 오스트리아에서 학력을 만들려고 중등과정을 등록한다고 했었습니다.

 

출신국도 다르고, 학력도 다른 두 아낙은 그렇게 오스트리아의 중학교과정을 1년 동안 다녔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난 후에 두 사람 다 중학교 과정을 마쳤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서로 소식이 없었던 2년 동안 저는 카리타스 학교를 졸업해서 “요양보호사”가 되었고,

그녀 또한 중학교 과정을 1년 동안 잘 마쳤고, Heimhilfe 하임힐페(도우미) 직업교육을 받으려고 시도는 했었지만 입학시험에 떨어져서 아직도 (불법)청소 일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임힐페는 일종의 가정도우미로 이론200시간/실습 200시간의 소정의 시간을 마치면 요양원이나 일반가정의 “(살림)도우미”로 취직이 가능한 나름 전문직종입니다.

 

하임힐페 입학시험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을 텐데..

그녀의 독일어나 일반상식 수준이 조금 빈약했던 모양입니다.

 

 

채식을 한다던 그녀와 함께 먹은 슈니츨과 샐러드

 

간만에 만나니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묻고, 또 할 말도 많았습니다.

 

전에 그녀의 남편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 본 나에게 “전직이 선생님이냐?”고 했던 직업이 정말 선생님이었죠.^^;

 

이제는 거의 3년 전이 되가는 그때 만났던 마리아는 정보가 아주 많이 부족한 아낙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서 항상 웃고 긍정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귀고 싶은 아낙이었죠.

 

오래전 그녀와의 사이에 있었던 일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를 클릭하시라.^^

 

http://jinny1970.tistory.com/1467

남편도 안 가르쳐주는 정보

 

오스트리아에서 남자들의 정년퇴직은 65세인데,

이제 환갑을 거의 넘긴 그녀의 남편이 벌써 은퇴했다는 소식에는 조금 황당했습니다.

 

보통 환갑 전에는 자기 집을 가지고 있어야 은퇴 연금으로 사는 것이 수월한데,

월세를 내고 사는 환경에 은퇴라..^^;

 

“아니, 너 남편 올해 61세 아니야? 원래 65세가 정년이잖아.”

“번 아웃 증후군으로 거의 1년 동안 일을 못하고 병가상태였는데, 이번에 은퇴하게 됐어.”

“그럼 네 남편은 요새 집에만 있어?”

“응, 자기 방에 짱 박혀서 지내거나, 사우나를 가거나 이번에는 미국에 2달 동안 여행을 가자고 했는데, 난 안 간다고 혼자 가라고 했어.”

“남편이 정상도 아니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상태인데 마눌인 네가 같이 가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난 여기서 일(청소)도 다녀야 하고.”

“회사를 다니는 것도 아니고, 청소일이 2달 후에 다시 온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지금은 남편 옆에서 남편을 지켜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

“너희가 사는 집 월세가 900유로 아니었어?”

“맞아, 아직도 내고 있어.”

“네 남편은 시부모님께 물려받은 집이 없어?”

“시부모님 집은 막내도련님한테 물려주기로 했다나봐.”

“그럼 너 남편 은퇴연금 받아서 그걸로 월세내고 살아야겠네.”

“그렇지.”

“그럼 월세가 부담이 되겠다.”

“응?”

“보통 공무원이면 손에 쥐는 연금이 월 1500유로라고 쳐도 월세 900유로내면 남는 것이 별로 없잖아. 이런 이야기는 남편이랑 안 해?”

“우리는 그런 이야기 안 해. 집세랑 세금 같은 건 남편이 다 내고,

난 식료품비를 계산해서 딱 반만 내거든.”

 

내 집 마련이 한국 사람들만의 꿈인 줄 알았었는데, 전 세계인들이 공통적으로 “내 집 마련”이 그들이 꿈이라는 걸 여러 나라 사람들을 만나보고 알았습니다.

 

실제로 집 마련을 위해서 2세 계획까지 미루는 오스트리아 사람도 봤고,

최근에 “내 집 마련”에 성공한 내 동료의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린츠에서 50km떨어진 곳에 혼자 살기 아담한 크기의 아파트를 장만했다는 50대 후반의 아낙.

나도 집 사는 것에 관심이 많아서 살짝 물어봤었습니다.

 

“네가 산 그런 아파트는 얼마면 사?”

“둘까지 살 수 있는 크기인데 6만 유로 정도 줬어.”

“전에는 어디서 살았는데?”

“전에는 린츠 근방에서 한 달에 700유로 월세를 내고 살았거든.”

“왜 그렇게 멀리 이사 갔어?”

“이제 은퇴하면 연금으로만 살아야 하는데, 월세내면서 사는 건 부담이 되지.

그래서 은퇴하기 전에 내 집 마련을 하려고 노력했지.

돈이 부족해서 은행에서 빛내서 샀는데, 이제 은행이자 많이 갚아가고 있어.”

“그럼 지금 이사 가서 이자내면서 살고 있는 그 집에 들어가는 돈은 얼마나 돼?”

“지금은 이런저런 세금해서 한 달에 100유로 내고, 은행에 내는 이자랑 원금은 월세 사는 셈치고 갚아가고 있지. 10년 후에는 다 갚으니 그때는 정말로 내 집이 되는 거지.”

“그럼 10년 후에는 한 달에 100유로정도가 집에 관련된 지출로 나가게 되는 거네?”

“그치, 내 집에 없이 월세를 산다면 연금이라고 1200유로 받는다 치면 집세 700유로 내고 나머지 500유로로 한 달을 살아야 하는 그런 처지가 될 뻔했지.”

 

오스트리아의 최저 연금은 760유로입니다.

 

만약이 이 연금을 받는 사람이 700유로짜리 월세를 산다면..

월세를 낸 나머지 60유로가 한 달 식료품가격이 되는 거죠.

 

물론 이런 열악한 환경이면 복지청에서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만,

아무튼 연금을 타서 월세를 내고 산다는 건 힘든 환경입니다.

 

만나자마자 그녀 남편의 병 때문에 이른 퇴직, 그리고 아직도 월세를 내야하는 상황.

거기에 그녀는 아직도 불법으로 청소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왕에 하는 일 등록된 업체에서 일하면 아파서 일을 못가도 돈이 나오고, 모든 보험같은것이 다 적용되니 더 안정적이지 않을까?”

“난 괜찮아. 안 아프면 되지 뭐!”

 

전에는 긍정적인 그녀의 모습이 좋아보였는데, 긍정도 초긍정이 되니 이것도 문제입니다.^^;

 

그녀와 집에서는 스페인어로 대화를 한다던 그녀의 오스트리아 남편.

정년퇴직을 하면 아르헨티나에 가서 사는 계획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녀는 제대로 취직해서 일을 하지 않아서 오스트리아 정부에서 나오는 연금은 못 받거든요.

하지만 남편이 정년퇴직을 했음에도 아르헨티나로 돌아가지 않고 그냥 오스트리아에서 살 예정이라고 합니다.

 

남편이 남미에 가서 살 계획을 세우면 남편 혼자 보낼꺼라고 했습니다.

자신은 그냥 이곳에서 살겠다고 말이죠.

 

이곳에 계속 살 계획이었음 아무도 없는 빈집만 찾아가서 청소를 하는 대신에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를 하면서 사교성과 독일어 능력을 더 키우고, 제대로 된 직장을 다니면서 4대 보험도 제대로 냈어야 했는데, 그래야 나중에 연금이라도 바라볼 수 있는데...

 

갑자기 그녀의 미래가 걱정이 됩니다.^^;

오스트리아는 남편 혼자의 연금으로 부부가 사는 것이 조금 버거울 텐데..

 

우리 집의 경우도 평생 자영업을 하셨던 시아버지가 받으시는 연금액 900유로 남짓,

시어머니가 받으시는 최저 연금액 760유로입니다.

 

시어머니가 받으시는 금액이 없으셨다면 시아버지 연금으로 두 분이 사셔야 하는데, 집이 있어서 집세는 따로 안낸다고 쳐도 두 번이 900유로정도면 사실 살기는 빡빡한 상황이 되죠.

 

나 같은 경우는 남편이 결혼초기에 제대로 “계획”을 잡아준 경우죠.

 

“오스트리아는 15년 이상 일을 해야 최저 연금을 받을 수 있어. 그러니 당신은 일을 해!

당신이 일을 하는 이유는 연금보험 때문이야.

그러니 풀타임이 아닌 주 15~20시간 정도만 일을 해."

 

그렇게 얼마 안 되는 연금이라도 꾸준히 들어가면,

나중에 최저연금(2017년은 760유로 정도)이라도 받을 수 있으니..

 

(이래저래 따져보니 전 이미 5년 정도 연금보험을 납부한 상태입니다.^^

 -직업교육 받는 2년 동안에도 노동청에서 제 연금보험을 납부해줬거든요.^^)

 

오스트리아 정부는 연금보험의 금액에 상관없이 일단 15년 이상 일을 하면 최저연금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주어진다는 이야기죠.

 

물론 월급 액이 많은 사람들은 높은 금액을 받겠지만, 저처럼 소일거리로 일을 해서 내는 연금보험 액수도 쥐꼬리만 한 인간들에게도 최저 연금은 지불합니다.^^

 

그녀를 만나서 헤어질 때까지 그녀의 환경이 걱정이 되고, 그녀 남편의 건강이 걱정이 되고,

아무 계획도 없는 그녀의 미래가 걱정이 돼서 잔소리하는 잔소리만 하다가 헤어졌습니다.

 

원래 이러려고 그녀를 만난 것은 아니었는데..

오지랖이 지나쳐서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는 인간이 된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입니다.^^;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이놈의 성격은 조금 고쳐야 하는디..

이 넘치는 오지랖은 어떻게 줄일 수 있는지 그 방법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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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17.12.16 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