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출신의 남편은 계획적으로 사는 인간형입니다.
좋게 말하면 철두철미한 형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무섭고 뒤끝작렬입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충청도 양반처럼 조용히 입 다물고 있고, 체면(=부끄럼) 때문에 대놓고 앞에 나서는 건 싫어하지만, 뒤에서는 뭐든지 철저하게 관리합니다.
특히나 마눌의 (모든)일에는 뒤에서 거의 총 매니져 역할을 하십니다.
이번에 가정의에서 한 건강검진의 결과에 마눌이 “지방간”으로 나왔습니다.
바로 2주 전에 병원에 입원 했을 때 나온 결과에는 간은 정상이었는데,
어찌 2주 만에 지방간으로 뻥튀기가 된 것인지..
두 곳에서의 결과가 다르니 남편이 바로 가정의에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병원의 결과서와 가정의에서 보낸 결과서를 나란히 첨부하고, 어찌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를 물어본 거죠. 사실 가정의가 검사를 한건 아닌데 말이죠.^^;
가정의에 “병가” 때문에 방문하니 가정의가 흥분한 상태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검사에 따라서 다르게 나올 수도 있고, 간에 지방이 많이 꼈으니..
그렇게 결과가 나온 것이고.. 어쩌고저쩌고~~”
남편이 보낸 이메일로 받은 스트레스를 변명으로 풀어내고 계십니다.
지금의 가정의는 쿠바에서 온 여의사인지라 독일어 발음도 조금 웃기고,
환자들이 보낸 문서용 독일어 이메일을 읽는 것도 은근 스트레스일거라는 생각은 했었습니다.
그리고 검사결과가 다른 것을 가정의에게 물어본다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죠.^^;
“내가 뭐랬어? 가정의한테 이메일 보내지 말라고 했지? 원래 환자보다 말이 많은 의사인데 당신 이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변명이 이어지는데 피곤하더라.”
“...”
언제나처럼 남편은 무언으로 대답을 합니다.^^;
마눌의 건강이 걱정되는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이렇게 제대로 된 대답을 듣지 못할 걸 알면서 왜 이렇게 여러 사람 스트레스 받는 짓을 하는 것인지..^^;
탈장수술을 하면서 꿰맨 2군데는 잘 아물어서 이제는 꿰맨 자리만 남았는데..
꿰매다가 본드로 붙여버렸던 곳은 딱지가 앉나 싶더니만,
소독을 할 때마다 딱지 아래로 고름이 나오는 하더니 결국은 딱지가 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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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남편은 저녁마나 딱지가 떨어진 상처를 소독 해 주면서 매일 사진을 찍으라고 했죠.
수술한지 시간이 꽤 지났고, 꿰맨 자리는 이미 아물었는데,
딱지가 떨어진 곳은 상태가 별로 나아지지 않습니다.^^;
마눌의 상태가 이런데 가만히 있을 남편이 아니죠.
병원의 외과를 맡고 있는 부서장 의사에게 날짜별로 찍은 사진을 동봉한 이멜을 보냈습니다.
“상처가 나아지는 거 같지 않아서 병원에 갔더니만 의사는 만나볼 수도 없었고,
간호사가 소독만 해 주고는 집에서 소독만 하면 된다고 했었고..“
동봉한 사진을 보시다시피 내 눈에는 내 마눌의 상처가 나아진다기보다는 더 악화되는데..
선생님이 보실 때는 어떠신지?
뭐 이런 식의 이멜을 주말에 보냈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은 월요일 오전에 병원의 관련부서장인 의사 비서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약을 걸어도 며칠이 걸리는 것이 정상인데,
관련부서장의 비서는 바로 의사를 만날 수 있게 조치를 했습니다.
남편의 깐깐한 이메일이 병원의 관련부서장인 의사를 당황하게 한 모양입니다.
비서가 직접 전화해서 예약을 잡아온걸 보면 말이죠.
담당비서가 정한 날짜에 남편과 나란히 가서 의사를 만났습니다.
원래 병원은 오전 9시가 훨씬 넘어야 병동에 있던 의사가 외래환자를 진료하러 내려오는데..
이때는 이른 시간임에도 수련의 과정의 의사에게 진료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아직 아물지 못한 상처는 “며칠 후에 다시 본 후에 꿰매는 것으로 하는 것이 좋다.“ 는 남편이 원하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남편이 이렇게 시시때때로 보내는 이메일이 여러 사람들 스트레스를 주는 거 같습니다.
병원 측에서는 이렇게 상처를 비교 해 가면서 깐깐하게 이메일을 보낸 고객이 혹시나 병원을 법정소송까지 끌고 갈까봐 겁이 나는 것인지 아님 “진상고객“으로 규정을 짓고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심정으로 이렇게 빨리 조치를 취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남편이 이메일이 여러 사람을 떨게 하는 건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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