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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오스트리아 직업이야기

눈물나는 학교생활

by 프라우지니 2015.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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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보이는 저는 에너지 120% 발산하는 상대방을 설득시키려는 어투로 말을 하는 아낙입니다.

 

전직이 선생님이였어요?

 

저를 처음 본 제 친구의 (오스트리아인)남편이 저에 대한 첫인상의 평이였습니다.

 

에너지 120% 발산하면서도 상대방을 설득시키듯이 말을 하는 어투가 바로 자기네 동료 선생님을 보는듯 하다고 말이죠. 네, 친구의 남편이 현직 중학교 교사였습니다.

 

그것이 칭찬인지 아닌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타인에 눈에 비친 저의 모습에 대해 처음 들은 평인지라 조금 신기하기는 했습니다. 그날 저녁에 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냥 웃더라구요.

그것이 동의를 뜻하는 것이지 아닌지는 묻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부정적이라고 한다고 해도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생활습관이나 말하는 습관을 고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고, 제가 오스트리아에 살면서 주변에 외국 아낙들을 계몽(?) 시키는 일들이 많다보니 본의 아니게 설득조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제가 모르는 바도 아니거든요.^^;

 

위에서 열거한 내용이 이해 불가하신 분들은 아래를 클릭하시라~^^

 

http://jinny1970.tistory.com/1467

남편도 안 가르쳐주는 정보

 

겉으로는 참 씩씩 해 보이고, 전투적으로 에너지를 발산하면서 사는 당당한 아낙으로 보이지만, 제 가족들이 알고 있는 저는 아주 많이 다르답니다.

 

특히 남편이 보는 마눌은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남편이 알고 있는 마눌은 툭하면 웁니다.^^;

 

영화 보다가도 울고, 길가다가 노래하는 맹인에게 동전 던져주고 돌아서면서도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당당하게 스스로 돈을 벌고 있어서 너무 자랑스럽다고) 울고, 카리타스 (요양보호사) 학교에 있는 구내식당에 일하는 직원들이 장애우들이고, 장애우 청년들이 직업 교육받으면서 실습하는 장소이니 거기가서 매일 점심을 먹어야 그 돈으로 장애우들에게 월급을 줄테니 꼭 먹어야 한다면서도 울고.

 

마눌은 씩씩하게 잘 살아가는듯이 보이면서도 이유도 다양하게 아주 자주 웁니다.

제가 린츠에 사시는 제 블로그 단골방문객께 선물을 받은 날도 울었습니다.

 

감사해서 눈물도 났고, 따뜻한 편지도 눈물이 났지만, 한참 힘든 때 였던지라 더 그랬습니다.

울면서 방에 있는 남편에게 갔습니다.

 

선물을 받았노라고, 편지도 있었노라고!

날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나에게 많은 힘이 되었노라고!

 

영문를 모르는 남편은 “또 울보 마눌 울음보가 터졌군!”하는 눈치였지만..

마눌이 얼마나 힘들게 학교에 적응하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오늘 이야기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우리반 사람들입니다.

 

울면서 마눌이 입을 열었습니다. 얼마나 적응하기 힘든 학교 생활인지..

 

“내가 외국인이여서 차별하느라 나를 자기팀에 안 들이려고 하는것도 알겠고, 독일어 잘 못해서 바보 취급 당하는 것도 알겠는데..날 무시하는 것은 정말로 못 참겠어..엉엉엉~”

 

별일없이 학교생활 잘하는듯이 보였던 마눌이 쏟아놓는 말들을 대충 주어들은 남편이 마눌을 안아줍니다. 마눌의 학교생활이 쉽지 않는 것은 대충 알았지만, 마눌이 심리적으로 이리 힘든지는 몰랐던 모양입니다.

 

“서네명이 한팀을 뭔가 아이디어를 짜내거나 토론 할 때면, 내가 투명인간도 아닌데, 날 제외하고 자기네들만 서로 쳐다보고 의견을 주고 받고 해! 물론 완벽치 않은 독일어 실력인지라 단어의 뜻을 몰라서 어떤 것에 대한 것을 토론해야 하고 아이디어를 내야하는지 조금 지나서 깨닫을 때도 있지만, 나 바보 아니거든! 나도 배울만큼 배웠고, 나대로의 신념과 생각이 있는 인간인데, 단지 내 독일어가 조금 딸린다는 이유로 나를 무식하고 아는것 없는 외국인 취급하고 없는듯이 행동할때가 젤 자존심 상해!”

 

학교생활 3주째에 들어섰던 때라 스트레스가 3주동안 쌓였었나봅니다.

 

현지인들이 외국인들와 한 팀을 안 하려고 하고, 짝꿍 또한 안 하려고 해서 그래서 저는 본의 아니게 (현지인들 틈으로 악착같이 들어가려는 노력하는)인도아낙과 한 팀이 됩니다.

 

저는 자랑스런 한국인지라 저혼자 꿋꿋하게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제가 멍청하지 않고, 그들이 나와 함께 팀을 이루서 공부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하면 언젠가는 나에게 손을 뻗을테니 말이죠.

 

나를 제외한 현지인들은 모여서 다니는데, 제 옆에 앉는 인도아낙은 그들틈으로 들어가려고 엄청 노력을 하고 그들과 어울리고 수다를 떨고, 그들 곁에 있으려 발버둥을 치지만 둘이 짝 지워서 뭔가를 해야하는 상황이 되면 그들은 서로 짝이 되는지라 홀로된 인도아낙은 항상 제 차지가 되죠!

 

학교에서 현지인들이 외국인들을 왕따시킨다는 이야기를 처음 한 날 시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그럴줄 이미 오래전에 알고 있었다. 단지 너에게 말하는 것이 미안해서 말 못했다.”

 

“니가 말을 안 하길레 같이 잘 공부하는 줄 알았더니만....”

 

이렇게 힘들게 저는 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차별을 당하면서, 제가 현지인 학교에 홀로 떨어진 한국 아이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서 이민이나 유학을 결정합니다.

어느 날 아이들은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인들만 버글거리는 학교에 뚝 떨어지게되죠.

 

말 못한다는 이유로 외국아이들은 날 무시하고, 인간취급 안하고 때로는 못사는 동남아인취급합니다.나는 그들보다 더 나은 환경이고, 더 나은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물론 어느 순간이 지나면 그들과 친구과 될 수도 있겠지만, 그 “어느 순간”이 될 때까지가 아이에게는 정말로 하루하루가 견디기 힘든 지옥같은 나날이라는 것을 아는 부모는 몇이나 될까요?

 

물론 제가 극단적으로 표현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제가 그랬습니다.

 

“남편도 ”당신이 하고 싶으면 해!" 했는데 그냥 그만 둘까?“

 

“나보다 더 무식하면서도 날 무식하고 멍청한 인간 취급하는 이 인간들과 함께 있을 필요가 있나?”

 

정말로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열두번 들었었습니다.

 

나도 나름 내가 잘났다고 자부하면서 살아온 인생인데, 중년의 나이에 나보다고 한참 어리고, 

나보다도 덜 배운 사람들이 하는 무시와 차별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보다 더 치욕적이였거든요.

 

한바탕 울고나니 다시 새로 전진할 힘은 얻었습니다.

이왕에 시작했으니 내가 갈수 있을때까지는 전진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내가 그들과 2년동안 직업교육을 함께 끝낸다고 해도 그들이 나를 그들의 친구로 인정 해 주는것은 바라지도, 현실로 이루어질리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그들과 나란히 갈수 있을때까지 가면서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독일어 못한다고 그들이 무시했던 그 동양아낙이 얼마나 더 그들보다 똑똑하고 우월한 인자를 가진 인간인지를.. (지금 독기를 품은겨..맞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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