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옆집에 사시는 시부모님과
같은 마당을 쓰고 있지만
두 분을 매일 뵙지는 못합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시부모님께
문안 인사를 드리는 문화가 아니어서
일부러 시부모님이 사시는 건물에 찾아
들어갈 필요가 없는 것도 있고!
내가 활동하는 시간과 두 분이 활동하시는
시간이 조금 다르기 때문이죠.
시아버지는 봄에서 가을까지는
해가 뜨기 전에 마당에 나오셔서
해가 진 다음에 집에 들어가시니
밖을 나다니면서 마당에서
일하시는 시아버지는 거의 매일 뵙지만,
시어머니는 집안에서 자주
안 나오시니 며칠에 한번 정도 뵙습니다.
4월인데도 해가 안 뜨면 쌀쌀한 날씨라
거의 매일 흐리고 꾸물꾸물한 겨울 날씨의 연속!
그러다 해가 뜨면
간만에 빨래 하는 날이 되죠.
마당에 있는 빨랫줄에 우리 빨래에
시어머니가 해서 널어 놓으신 세탁물까지
주렁주렁 빨래 풍년입니다.
화창한 날 오후에 빨래를 걷으러
나갔다가 시어머니를 만났습니다.
한 집에 살아도 며칠에 한번씩 보게 되는
시어머니는 간만에 만난 며느리에게
할 말이 많으셨나 봅니다.
며느리를 붙잡고는 이런저런 말씀을 하십니다.
“네 시아버지가 이번에
코로나 백신 1차 주사를 맞았다.”
“그건 아빠한테 들었어요.
아빠가 아까 테오한테 말씀하시더라구요.
그런데 왜 두 분이 같이 안 맞고
아빠 먼저 맞으셨어요?”
부모님께 반말하는 독일어 문화인데
계속 존대말로 쓰려니..
그냥 엄마와 주고받는 반말로 하겠습니다.
“네 아빠는 기저질환자 잖냐.
그래서 먼저 주사를 맞았고,
나는 다음주에 맞게 된다.”
그렇게 백신 주사 이야기를 하시는 거 싶더니만..
갑자기 화제 전환!
“나 어제 치과에 가서 어금니 뽑았다.”
며느리에게 갑자기 입을 벌려서
입 안을 보여주시는 시어머니.
“꿰맨 자국 보이지?
찢고 뽑아서 나중에 꿰매더라.”
위에는 양쪽 어금니가 하나도 없는 상태.
“엄마, 임플란트나 부분 틀니 해야 할 거 같은데?”
“안 그래도 이번에 어금니를 빼면서
의사가 그러더라. 다음에 이야기 하자고!”
안 그래도 치아가 약하신 엄마가
양쪽 어금니까지 뻥 뚫려 있는 거 보니
마음이 짠합니다.
남편은 모를 엄마의 치아 상태라
후딱 방에 가서 남편에게 얼른 나오라고
손짓을 해 봤지만 남편은 그냥 웃기만 합니다.
“남편, 빨리 나와봐.
엄마가 이번에 어금니를 뽑았다는데,
양쪽에 다 어금니가 없어.”
“그래서?”
“당신이 아들이잖아.
와서 엄마 상태를 한번 보라고!”
“왜 어금니는 뽑았는데?"
"잇몸에 염증이 있어서 뽑아야 했나봐. 나와봐!”
“싫어.”
“내 엄마 아니고, 당신 엄마거든?
왜 그렇게 관심이 없니?”
“……”
남편은 끝내 마당에 있는 엄마를
보러 나오지 않았습니다.ㅠㅠ
70대 초반이라고 해도 위,아래
다 틀니로 사시는 분들도 많은데,
제 시부모님은 아직도 당신들의
치아를 소유하고 계셨는데..
이번에 시어머니는 부분 틀니를
하시게 되지 싶습니다.
간만에 만난 며느리가 반가우신건지
시어머니는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십니다.
“너도 알지?
내 언니중 하나가 요양원에 들어갔잖아.
면회를 가야할 거 같은데, 아직 못 가고 있다.”
“이제는 보호자들이 1주일에 4회까지 면회가 가능하니
엄마도 시간 내서 이제는 다녀와도 될 거 같은데?”
“그래? 코로나 테스트를 해야하지 않아?”
“요양원 입구에 가면 테스트 받고
입장이 가능하니 한번 갖다 와도 되지.
아빠 차 타고 가면 되겠네.”
“네 아빠는 안 가려고 한다.”
“왜? 같이 가서 간만에 처형 얼굴도 보면 좋지.”
“아무래도 자기가 건강하지 않아서 그런가,
누가 아픈 거 이야기하면 질색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엄마와 마당에서 보낸 시간 30분.
빨래만 후딱 널고 돌아올 생각이라
불 위에 병아리콩 조림을 만든다고
냄비를 올려놓고 나갔었는데..
30분 지나서 돌아와 보니
냄비 속 병아리콩은 반은 시꺼멓게 된 상태.
주방에 연기랑 탄 냄새 빼느라고
창문 다 열어놓고 부산을 떨었습니다.
마당에서 시부모님을 만나면
필요한 시간 30분.
갈 곳도 할 일도 없는 날은 마당에서 만난
아빠,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드리지만!
내가 가야할 곳이 있고, 해야할 일이 있을 때는
가능한 두 분과 대화를 시도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지만 어쩔수 없는
상황들이 일어나기는 합니다.
장보러 나가다가 마당에 있는
시아버지랑 대화를 시작하면 30분 넘게
수다를 계속 떨어야 하고,
시어머니와도 마당의 빨랫줄 아래서 만나면
오늘처럼 예정에 없던 30분 이상의 수다를
떨다 보면 불 위에 올려놨던 냄비가
홀라당 타는 부작용도 있지만..
시아버지도 시어머니도
며느리를 만나서 신나게 말씀 하시는걸 보면
“혹시 외로우신가?” 싶기도 하죠.
앞으로 볕 좋은 날 마당에 빨래를 널러 갈 때는
불 위에 올려놓은 것은 없는지
잘 보고 갈 예정입니다.
그래야 마당에서 만난 시아버지
혹은 시어머니가 말씀을 하시는데,
빨리 집안에 다시 들어와야 해서
하시는 말씀을 얼른 끊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테니 말이죠.
간만에 시어머니의 근황에 대해서
알게 된 건 좋았습니다.
시아버지에 이어서 시어머니도
“화이자 백신주사접종”을
받으신다고 하니 안심이 되고,
어금니 없는 시어머니의 입안은 조금 짠했고,
작년말 동네 요양원에 들어가셨다던
시이모님 방문은 꼭 가시라 했습니다.
요양원에서 살면 그리운 것이
“날 찾아와 주는 사람”이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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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초에 마당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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