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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오스트리아 직업이야기

어르신 하늘나라 가신 날

by 프라우지니 2015.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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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길이 예 있음에 나는 가노란 말도 다 못하고 가노라.”

 

오래 전에 국어시간에 배운 싯귀 구절이 저절로 읋어지는 날입니다.

 

제가 가고자 하는 직업의 길이 죽음을 동반하는 직업이라는 걸 알고는 있지만, 삶과 죽음의 사이가 정말로 가깝게 느껴지는 날은 생각이 더 많아집니다.

 

오늘은 제가 모시던 어르신중 한 분이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제가 근무했던 주말(토,일)에도 멀쩡하게 밖에 나오셔서 식사까지 하셨었는데..

월, 화요일 쉬고 출근했던 수요일, 그 어르신이 편찮으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르신이 조만간 (하늘나라로) 가실 거 같다는..”

 

그리고 수요일과 목요일에 어르신은 아무것도 안 드시고 그냥 누워계셨고...

금요일, 휴가를 가기 전 제 마지막 근무 날 오후, 어르신은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제가 일을 하면서 그분의 시중도 들어드렸었고, 그분과의 추억도 있었지만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늘나라 가실만큼 연세도 있으신 분이시고, 고통 없이 가시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네 인생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아픔없이 하늘나라에 가신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도 없으니 말이죠. 하늘나라 가는 순간에 사고 나서 피투성이가 아닌, 살만큼 살고 조용히 삶을 마감하는 것도 좋은 생이였다고 생각합니다.

 

금요일 아침에 그분의 방에 들어가서 콧등과 손에 송송이 맺힌 땀을 닦아드렸었는데...

 

 

 

우리 요양원에서 돌아가시는 분들의 방앞에 차려지는 고인의 사진과 장식입니다.

 

오후에 다시 찾아뵌 어르신은 콧등이 싸늘하게 식어가고 계셨고, 오후 3시쯤에 어르신은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사실 아픔이 없다는 건 사실이 아니고, 어르신의 고통을 줄일 목적으로 모르핀주사를 맞았다고 했습니다. 하늘나라에 가시는 동안에 고통 없이 가실 수 있게 말이죠.

 

치매로 매일 면회 오는 당신의 딸을 “흰머리 아줌마”라고 칭하신 어르신은 미국에 사는 손녀가 보내온 가족사진을 매일 보셔도 그들이 누구인지 모르셨지만, 매일 마주하는 저를 보고 항상 웃어주시고, 내가 예쁘다고 내 손을 잡아서 자주 뽀뽀를 해주셨었습니다.

 

바쁜 오후를 보내는 동안에 어르신은 돌아가셨고, 마지막 인사를 드리려고 그분의 방에 갔는데..

 

그 방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담담했던 저였는데, 돌아가신 어르신의 얼굴을 보니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르신이 건강하실 때는 그저 일상이던 것이, 그분이 돌아가시니 그분과의 일이 내 추억 속에 한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이제 다시는 어르신이 제 손등에 뽀뽀를 해 주는 일은 없을 테니..

더 이상 그런 일이 없을꺼라 생각하니 눈물이 났습니다.

 

싸늘하게 식어버린 어르신의 얼굴에 가까이 얼굴을 대고 마지막 인사를 드렸습니다.

 

“XX 부인, 당신을 알게 되서 정말 좋았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다음에 뵈요!”

 

매일 엄마를 면회 오던 어르신의 “흰머리 딸”에게도 조의를 표했습니다.

유가족은 어르신의 흰머리 따님 한 분이였습니다.

 

“어르신은 이미 연세가 많으셨고, 고통 없이 가셨으니 마음 편하게 드시라”고 하는 저에게 그분의 따님은 오히려 감사인사를 해 왔습니다.

 

“우리 엄마 매일 쓰다듬어주고, 옆에서 말 걸어주고 한 거 너무 고마워요!”

 

어르신의 따님은 실습생인 저에게 아주 많이 고마웠다는 인사를 하십니다.

 

난 정직원도 아닌 실습생인데, 그들이 보는 저는 실습생이 아닌 “내 엄마를 돌봐준 고마운 직원”중이 한 명이였나봅니다.

 

제가 이 직업교육을 받는 동안에 얼마나 많은 분들을 하늘로 보내 드리는 일이 생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이 하늘나라로 가시는 순간에 “조금 더 잘 해 드릴 껄! 하는 후회는 들지 않게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게 됐습니다.

 

이제 XX 부인은 답답한 요양원이 아닌 곳에서 편안히 날아다니고 계실 거 같습니다. 더 이상 그분의 영혼이 93살 늙은 몸에 갇혀 있지 않을테니 더 가볍게 날 수 있을 거 같기도 하구요.

 

제가 떠나는 XX부인 앞에서 울었던 것은 슬퍼서 운 것은 아니였던 거 같습니다.

그분이 가시는 분에게 드린 저의 인사가 아니였나 싶습니다.

 

“Auf Wiedersehen 아우프 비더제엔”

 

“안녕히 가세요” 정도로 해석되지만, 글자 그래도 해석하면 Wieder(다시) sehen(만나요)입니다.

독일어는 헤어질 때 “안녕히 가세요” 대신 “다시 만나요”로 인사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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