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실습생입니다. 한국의 시집살이처럼 눈 감고 3년, 귀 막고 3년, 입 막고 3년,
뭐 이런 비슷한 생활을 해야 하는 신분입니다.
다행인 것은 저는 9년이 아닌 2년만 하면 되는 거죠!^^
실습생은 모든 직원들이 평가를 받는 입장이다 보니, 왠만하면 입을 다물고 사는 것이 적을 만들지 않으면서 저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막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물론 내가 배울만한 행동을 하는 직원도 있지만, 안 그런 직원들도 있는지라..
좋은 것은 내가 배워서 내 것을 만들고, 나쁜 것은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뭐 이런 것을 배우고 말이죠!
제가 멘토들은 경력이면 경력(20년이상), 일하는 자세면 자세(어르신들을 배려하는) 모두 존경스러운 분들이십니다. 제가 일하는 모습을 칭찬 해 주시고, 잘하는 것, 못하는 것, 고칠 점들도 알려주시죠!
실습 3주차가 넘어가면서 저도 이제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도 생겼습니다. 거동이 가능하시고, 의사소통이 가능하신 어르신들의 시중은 멘토가 없이 저 혼자 하게 됐습니다.^^
멘토가 있기는 하지만 항상 멘토랑 동행하는 것이 아니여서 멘토가 없고,
제 할 일이 없으면 저는 직원이 있는 방(불이 켜진)으로 찾아들어갑니다.
누구에게나 배울 점은 있는 법이니 말이죠!
거주하시는 어르신들이 도움이 필요하신 경우는 직원들을 부르는 벨을 눌러서 직원들에게 신호를 보내십니다.
이럴 경우 호출벨이 눌러진 방앞에는 빨간색 불이 들어오게 되고, 직원들이 어르신들이 거주하는 방에 들어가면 녹색등을 켜서 자기가 그곳에 있음을 알립니다.
직원들이 복도에 없다고 해도 어디쯤에서 일하고 있는지 대충 행방 확인은 가능한 제도입니다.
그날도 생각없이 녹색등이 켜진 방에 들어가니 4년차 경력의 M이 혼자서 100kg이 넘는 여자 어르신의 기저귀를 갈아드리려고 하는지라, 저도 옆에서 도우면서 배우려고 그녀 옆에 서 있었는데..
기저귀를 가는 와중에 기저귀에 변이 묻어있음에도 그녀는 어르신의 궁디를 닦지않고 그냥 새 기저귀를 궁디에 갖다 대고는 얼른 마무리를 합니다.
저는 입이 있어도 왠만하면 말을 하지 않아야 할 실습생임을 잊고 얼른 한마디 했습니다.
“닦아야지!”
나를 힐끗보고는 돌아서면서 그녀가 한마디 하고 나갔습니다.
“이따가 닦을 꺼야!”
지금 주무실 준비인 저녁시중을 들어드리고 나가면 퇴근 할꺼면서 뻥을 치십니다.
나 혼자 였다면 닦아드렸겠지만, 저는 실습생인지라..
그녀 뒤를 따라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밖에 나오자마자 제 멘토인 소냐에게 달려갔습니다.
일단 물어봐야 하는 거죠!
“소냐, 나 질문이 있는데.. 기저귀에 변이 묻었으면 새 기저귀 갈 때 닦아야 하는거지?”
“물론이지. 누가 안 닦고 기저귀 갈았어? 누구야?”
“아니.. 그냥 궁금해서..”
“너 지금 누구랑 방에 들어갔다 왔어? 누가 그랬어?”
원래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이렇게 발끈하지 않는디..
소냐는 조금 별종입니다.^^;
“저기...있잖아...M이랑 갔었는데, 안 닦고 그냥 기저귀만 갈아주고 나왔어..^^;”
자꾸 따지니 실습생인 저는 말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그럴 줄 알았어. 그 인간은 항상 일을 그렇게 개판으로 한다니..
M 지금 어디있어?”
헉^^; 지금 삼자대면하러 나서니 실습생인 제가 아주 많이 당황했습니다.
“소냐, 그래도 이렇게 달려가는 건 아니지 않남? 내가 일러바친 꼴이 되잖아!”
“이르긴 뭘 일러? 넌 실습생이고, 실습생이 궁금한 거 물어본건데!”
결국 저는 소냐 뒤에 딸려서 M를 찾아서 나섰습니다.^^;
M을 보자마자 소냐가 마구 해댔습니다.
“너 기저귀 갈면서 안 닦고 갈았냐?
지금 지니가 나한테 묻는다. 그래도 돼냐고?”
당황한 M이 버벅이며 대답을 합니다.
“나중에 닦으려고 했어.”
“언제? 너 퇴근한 다음에?”
그건 그 어르신의 건강에 관련된 일이야! 당장 가서 닦아!”
저는 그 상황을 만든 당사자인지라 M에게 미안했습니다.소냐에게 등 떠밀려서 궁디 닦으러 가는 M 뒤를 따라가서 어르신의 궁디를 닦는 M 에게는 다시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설마 제가 정말 미안해서 미안하다고 했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시죠?^^)
저는 실습생이라 적을 만들면 안 되는 상황이고, M을 따라가서 궁디를 안 닦고 나온 것을 보면서도 저는 배우는 것이 있었습니다.
“나는 저 인간처럼 저런 식으로 일하지 말아야지!”뭐 이런거죠!
나중에 소냐가 우리병동 관리자(대장)와 이야기하는 걸 들어보니 M이 평소에도 개판으로 일하는 걸 잘 알고 있더라구요. 어르신들한테 공손하지도 않고, (변을 보면 봤다고 구박을 하기도 하는지라 남자 어르신의 M한테 주먹을 휘두르려고 하는 것을 제가 본적도 있었고..)
일도 대충~ 하면서 자기가 맡고 싶은 어르신만 맡고 하기 싫은 일은 싫다고 하고!
평소 행실도,근무태도로 불성실한 직원인데 실습생의 눈에도 보이는 실수까지 하다보니 “두고보자” 인 모양입니다.
하지만 정말로 저 때문에 M이 짤린다면... 저에게는 아주 치명적인 결점으로 모든 직원들을 적으로 만들 수도 있는 상황인지라 저는 가슴까지 조마조마 해야했답니다.^^;
그리고 다음날, 저는 다시 M과 같은 시간대에 일을 하게 됐습니다.
평소 같으면 M 이건 누구건 간에 일단 방에 들어가면 저도 따라 들어가서 도와주면서 배우는디.. 어제 제가 친 사고 가 있는지라 불 켜진 방에 갔다가 M이 있는 것이 보이면 그냥 나왔습니다.^^;
괜히 옆에 붙어있다가 또 뭐라도 제대로 안 하는 걸 보면 안될 거 같아서 말이죠.^^; 다른 직원들도 소문 듣고 나랑 같이 안 다니려고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조금 하기는 했었는데..
그 걱정은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내가 긍정적으로 배울 점이 있던 직원이건, 부정적으로 배울 점이 있는 직원이건 간에 저는 일단 직원과 함께 해야 하는데, M과 비슷한 부류(대충 일하는)의 직원들이 그날 저와 함께 일하는 직원으로 낙찰이 됐습니다. 제 멘토들은 하나도 없고..^^;
이틀동안 저는 왕따가 되어서 혼자 다녔습니다. 어르신들을 씻겨드려야 하는 오전시간에는 저 혼자 돌볼 수 있는 어르신들을 맡아서 일을 했고(그렇게 하라니..^^;),
점심시간 후에는 침대에 다시 누으시는 분들이나 기저귀를 갈아드려야 하는 분들을 2인1조로 다니면서 일 하는데, 제가 함께 가려고 하면 “너는 그냥 여기에 있어.”로 따돌리고,
혹시나 싶어서 다른 방에 삐죽이 얼굴을 들이밀면,
“여기는 우리 둘이서 하면 되니까 넌 딴데 가봐!”
실습생인 저는 많이 보는 것이 배우는 것인데, 저를 차단 해 버리니 참 답답했습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나니 그날은 저와 근무하시는 모든 분(3~4명)들이 제가 존경하는 멘토들이였습니다. 그리고 저의 공식적인 멘토인 라나(저보다 2살이 많다는)도 3주간의 휴양휴가를 마치고 다시 복귀하는 시기였고 말이죠!
그동안 멘토없이 보낸 시간이 서럽기도 했지만, 허리 때문에 3주간 휴양을 하고 온 멘토가 반가워서 달려가서 안겼습니다.^^
멘토가 없는 기간에 저희 학교선생님이 요양원에 오셔서 제가 일하는 오전동안 함께 하시며 제 근무하는 모습을 (현장)평가하게 되는데, 그날 제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는 것도 다른 직원을 통해서 그날 바로 연락을 받았다고 하면서, 자신이 없는 동안에도 제가 열심히 근무하고 있은 거 같아서 보기 좋았다는 아주 기운을 팍팍 돋게 안부 인사를 챙기십니다.
일단 이틀을 외톨이로 힘들게 보낸지라 있었던 일을 이야기 했습니다.
M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소냐한테 물어봤는데, 소냐가 3자 대면까지 했었고, 그날 이후로 직원들(물론 다는 아니지만)이 나를 조금 꺼리는 거 같고, 방에도 자기네들끼리만 들어가더라. 나는 실습생이라 많이 보고 배워야 하는데, 그렇게 이틀이 지나니 조금 답답하고 내가 실수를 아주 크게 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뭐 대충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 멘토이니 제 문제 상담을 해야 했거든요.
“그래서 너를 이틀이나 왕따 시켰단 말이지?”
에궁^^; 일이 더 커지는 것은 원치 않는데... 왕따시킨다고 관리자한테까지 이야기하면 정말로 내가 공공의 적이 되는 지름길이 되는 거죠!
우리병동은 1,2,3층으로 나뉘어있고, 거주하시는 어르신들은 대충 5~60여명에 직원들은 대충 50여명입니다.
숫자로만 보자면 1대 1 간병이 가능한 걸로 보이지만, 31분이 거주하시는 우리 1,2층에는 하루에 5명(실습생 포함) 정도의 직원들이 근무를 한답니다.
50여명의 직원들 중에 적어도 80%정도는 일을 제대로 하는, 존경할 만한 사람들이고,
10% 이상은 대충 일하는 종류입니다.
제가 공공의 적이 된다는 것은.. 적어도 10여명의 적을 만드는 행위이니 절대 일어나면 안 되는 상황입니다. 물론 비 공식적(뒷담화)으로는 제가 한 행동이 모든 직원에게 빠르게 전달이 된 상태지만 말이죠.
요즘 저는 출근하면 젤 처음 제가 누구랑 근무를 하게 되는지 얼른 현황판을 봅니다.
처음에는 누구랑 근무를 해도 항상 즐거운 하루였는데,
이제는 누구랑 근무를 하느냐에 따라서 천국도 지옥도 될 수 있는 상황이고,
그 지옥도 제가 만든 일이다보니 참 많이 조심스럽습니다.^^;
제가 지옥을 만들었지만 했지만, 저는 제 행동이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멘토들도 나의 행동이 틀리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런 상황이 “너는 말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또 다시 그런 상황이 온다면 ”닦아야지.“하지는 않을 예정입니다.
또 다시 그런 상황이 온다면.. “내가 닦을께!” 할겁니다.
저는 모든 것을 배워야 하는 실습생의 신분이고, 내가 집에 가서 발 뻗고 마음 편하게 자기 위해서도, 내 몸의 편의를 위해서 해야 하는 일 앞에서 눈감는 행동은 하지 않을테니 말이죠.
눌러주신 공감이 저를 춤추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로그인하지 않으셔도 공감은 가능합니다.^^
'오스트리아 > 오스트리아 직업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금은 산을 넘고 있는중 (20) | 2015.06.11 |
---|---|
잠자리 쟁탈전 (8) | 2015.06.09 |
무사히 마친 심리학 시험! (12) | 2015.05.31 |
지금은 심리학 시험준비중 (14) | 2015.05.27 |
나의 첫 프레젠테이션 (12) | 2015.05.20 |
우리 요양원 권력자, 청소부 (10) | 2015.05.17 |
카리타스 참교육 (14) | 2015.05.03 |
오스트리아의 요양보호사 직업교육과정 (12) | 2015.05.02 |
컨닝페이퍼가 돌았던 인체학 시험장 (26) | 2015.04.30 |
너무나 감사한 내 Mentor멘토 (10) | 2015.04.1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