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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생각들

쿠바출신 의사가 주는 부담스러운 동기부여

by 프라우지니 2018.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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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니던 “가정의 선생님”이 32년간의 의사생활을 마치시고 은퇴를 하셨습니다.

 

근무를 얼마 남겨두지 않는 시점에는 환자들이 꽃화분 같은 선물들을 들고 오는지라,

나름 동네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셨던 모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참 친절하고 좋으신 의사 샘이셨는데,

제 동료들은 무지 깐깐한 의사라고 했습니다.

 

요양원 어르신들의 요양등급도 다른 가정의와는 달리 엄청 깐깐해서 쉽게 올려주지도 않고,  요양원 동료들이 아파서 찾아가도 “병가”는 웬만해서는 잘 내주지 않는다고 말이죠.

 

대충, 얼렁뚱땅, 환자가 원하는 대로 “병가” 내주고, “요양등급”올리면서..

의사의 주관 없이 환자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시지 않는다는 이야기로 이해했습니다.

 

그분이 은퇴하는 얼마 앞 둔 시점에 새로운 의사선생님이 온다는 안내 글을 읽었었습니다. 쿠바에서 의사면허를 딴 후에 오스트리아에 와서는 간호사 면허를 취득 한 후...

 

어쩌고~저쩌고.

 

 

 

은퇴하시는 분은 오스트리아 분이신데, 새로 오신다는 의사는 쿠바출신 여의사.

 

“쿠바에서 온 의사면 오스트리아에서도 의사면허를 따야 했을 텐데.  왜 간호사 면허를 땄을꼬?”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냥 지나쳤었는데..

정말 쿠바에서 온 여의사에게 진찰을 받게 됐습니다.

 

남미식 튀는 독일어 발음으로 말하는 그녀는 오스트리아에 온지 20여년이 넘었다고 합니다. 오래 살아도 안 되는 발음은 여전히 있는 것이 외국인의 독일어입니다.^^;

 

은퇴하신 분은 환자가 증상을 이야기할 때, 귀를 기울이시고, 말도 나긋나긋, 조용조용히 하셨는데, 쿠바 여의사는 목소리도 크고, 환자(저죠!^^)가 한마디 할 때 두 세 마디를 합니다.

 

결론은 환자보다 더 수다스러운 의사였다는 이야기죠.

 

같은 외국인이여도 환자인 나보다 더 수다스럽고, 환자의 증상을 듣기도 전에 자기가 생각하고 판단하는 진단은 부담스러웠습니다.

 

내 증상 이야기는 제대로 듣지도 않아놓고..^^;

 

그래서 “가정의”를 바꿔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시어머니가 다니시는 몇 몇 의사 중에 “외국인 의사”가 더 친절하다고 하셨지만,

저에게는 이 수다스러운 외국인 의사는 조금 많이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러다가 “수다스러운 쿠바 여의사”가 휴가 간 기간에,

다른 가정의를 찾았습니다.

 

오스트리아 남자 의사 샘인데 참 친절하시고, 제가 증상을 이야기하면 경청하시고,

스스로 판단하시기보다는 짐작되는 진단에 맞게 병원으로 이송조치를 해 주십니다.

 

덕분에 오랫동안 불편하던 아랫배 쪽에 탈장이 된 것을 알았고,

병원에 가서 수술까지 했었죠.

 

그렇게 새로 만난 가정의 선생님이 맘에 쏙 들었었지만, 1년에 한 번 하는 “건강검진”을 이번에는 “쿠바 여선생”한테 예약을 걸었던지라, 간만에 그 여의사를 찾아갔습니다.

 

건강검진은 진료 없는 날을 따로 잡아서 하는 듯 했습니다.

 

예약 시간인 7시30분보다 먼저 가서 문 앞에 서 있으니 이미 출근해서 안에 있던 여의사가 문을 열어줍니다. 전에도 보니 진료시간보다 먼저 출근 해 있는 걸 봤었는데..

 

아직 진료 시간 전.

두 사람의 외국인 아낙이 서로를 마주보고 앉았습니다.

 

의사와 건강검진을 온 환자로 말이죠.

기본적인 검사를 한 후에 내가 궁금하던 것을 물어봤습니다.

 

같은 외국인이여서 살면서, 일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비슷합니다.

 

외국인 의사와 함께 일하는 현지인 간호사가 (환자인) 내 앞에서 대놓고 무시 하는 걸 전에 본적이 있습니다.

 

이곳 또한 (은퇴 하신) 의사 샘과 여직원 2명이 꽤 오랜 시간 근무를 했던지라,

새로 온 쿠바 여의사가 함께 일하는 것이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했었습니다.

 

 

 

자신들이 모셔야 하는 상사라고 해도 말이죠.

 

“여기서 일하는 건 어때요?”

 

나의 질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녀가 어려움을 이야기 합니다.

아직 직원들이 출근 전인지라 시간이 남아서 나온 수다였지 싶습니다.

 

여직원 2명이 은근히 텃세하는 지라 뭘 지시해도 금방 따라주지 않고,

알아들어놓고도 못 알아 들은 척 되묻기고 하고,

 

은퇴하신 의사 샘은 시시때때로 전화를 해서 감시 아닌 감시를 하신다고 합니다.

 

결론은 쿠바 여의사는 은퇴하신 의사 샘이 들어놓은 “월급 의사”라는 이야기죠.

 

월급 받는 처지인지라 사장인 의사 샘의 감독 & 잔소리를 들어야하고, 근무하는 여직원 2명 또한 시시때때로 사장인 의사 샘께 쿠바 여의사가 실수한 것들을 일러바치는지라 고달픈 신세인 모양입니다.

 

직업이 의사면 다른 직업의 외국인보다 조금 더 멋질 줄 알았는데..내가 만난 의사는 사장의 눈치와 팥쥐 같은 여직원 2명의 눈치도 봐야하는 불쌍한 신세입니다.^^;

 

그러면서 나에게 날리는 한마디.

 

“지금 요양보호사면 조금 더 공부해서 ”간호사“가 되는 건 어때요?

그럼 당신을 보는 사람들의 보는 눈이 달라질 텐데..”

 

(달라지기는.. 외국인은 어떤 직업을 가져도 외국인인 것을...^^;)

 

지금 일하는 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가 아닌 간호사로 근무하면 조금 더 당당하지 않겠냐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조금 더 나은 위치를 위해서 해보라던 “간호사 공부.”

 

그녀가 해준 충고는 참 감사했습니다.

 

조금 더 공부해서 조금 더 월급을 받는 위치가 되면 사회적으로 인정은 받을 수 있을지도 몰라도, 현지인 직장 동료들에게서 받는 차별은 포함되지 않지만 말이죠.

 

 

 

자비로운 수녀병원의 "간호사 직업교육과정 안내 웹사이트"에서 캡쳐

 

오스트리아에는 간호 대학이 아닌 큰 병원에 “간호사 직업교육”과정이 있습니다.

 

사설 직업교육을 하는 곳에서도 배울 수는 있지만,

취업은 아무래도 병원부설 시설에서 배운 학생들이 더 쉽죠.

 

병원에서 교육생을 받아서 이론과 더불어 병원의 각과로 돌리면서 실기 교육을 시키는 거죠. 그렇게 3년 과정의 교육이 끝나면 실기 중에 다녔던 각과에서 이미 찜해놨던 간호사를 데려갑니다.

 

제가 간호사 직업교육을 받는다면..

요양보호사 직업교육(이론 1200시간/ 실기 1200시간)에 간호조무사 과정(이론 600시간/실기 600시간)이 포함이 된지라, 간호사 직업교육 3년짜리를 받는다면..

 

저는 2년만 더 공부하면 됩니다.

 

간호사 직업교육(이론2000시간/실기 2480시간)중에 (이론 600시간/실기 600시간을 빼야하니.. 저는 이론 1200시간/ 실기 1880시간만 받으면 되죠.

 

앞으로 딱 2년을 투자해야 합니다.

 

 

 

우리 요양원에도 요양보호사로 시작한 후에 교육을 더 받아서 “간호사”가 된 직원이 있습니다. 요양보호사가 육체적으로 너무 힘든지라 간호사가 됐다나요?

 

간호사는 어르신들의 약이나 나눠주고, 상처나 봐주고, 의사가 왕진 오면 따라다니던가, 아픈 어르신 병원에 보내는 일등 육체적으로는 별 부담 없는 일을 합니다.

 

요양보호사로 시작해서 간호사 교육을 받았던 라오스 출신 아낙의 말을 들어보니..

 

“간호사 교육을 받는 2년 동안 주 2일은 요양원에서 직원으로 근무를 하면서, 학원에 가서 이론 공부를 하고, 거기에 실습까지 정말 빡쎈 2년이었고, 교육비도 노동청 지원이 안 되서 12,000유로를 지불했다고 합니다.”

 

이 아낙은 4살 때 오스트리아에 와서 독일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하는 아낙임에도 많이 힘들었다고 하는디..나는 독일어도 버벅대고 발음도 튀니 곱빼기로 어렵겠죠.^^;

 

나도 육체적으로 힘든 일보다 조금 편한 일을 하면 좋겠지만..

문제는 낼 모래 50을 바라보는 아낙에게 또 공부는 무리가 쫌 있습니다.

 

10년만 젊었어도 그녀가 주는 “동기부여”를 제대로 받을 수 있었을 텐데..

2년 화끈하게 투자해서 간호사 공부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이제 10여년만 더 일하면 연금을 받으면서 살 나이인지라,

그녀의 조언이 감사하면서도 참 부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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