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새해를 저는 감기와 함께 시작했습니다.

 

12일 새해 첫 출근.

 

감기 걸려 콜록거리시는 어르신 두어 분 점심, 저녁을 먹여드리려 그분들의 방을 들락거렸더니만.. 그 다음날부터 감기 증상이 하나하나 나타났습니다.

 

13일은 목이 아프고, 가래가 끼이는 듯 한 증상에.

14일은 목 아프고, 콧물도 떨어지고, 머리도 띠잉~

15일도 위의 모든 증상을 동반한 감기를 달고 있었지만, 가족 동반 행사가 있었습니다.

 

32녀를 형제, 자매 분들을 가지신 시아버지.

 

형제/자매간의 우애가 좋으셔서 같은 단지에 사시는 시삼촌은 매일 오시고,

린츠에 사시는 시 큰 아버지 내외분은 매주 일요일에 오십니다.

시고모님들은 시삼촌들보다는 왕래가 뜸한지라,

1년에 서너 번 정도 시고모 내외분이 함께 하시는 정도입니다.

 

제가 이 모든 분들을 부르는 호칭은 딱 2개입니다.

남자 분들은 Onkel 엉클(삼촌), 여자 분들은 Tante 탄테.

 

독일어는 우리나라처럼 촌수에 따라 호칭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백부/숙부/고모부/이모부/삼촌의 구분이 없이 무조건 Onkel 엉(옹)클.

백모/숙모/이모/고모 등의 구분 없이 Tante 탄테.

 

저에게 있는 시아버지 쪽의 형제분들중 시고모부인 Onkel엉클 한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시아버지의 형제/자매 내외분들 중에 제일먼저 남편을 떠나보내신 분이 시아버지의 여동생이십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서 돌아가셨고, 미리 화장을 한 후 한줌의 재가 되어 항아리에 담긴 시 고모부의 유골함을 교회 앞의 공동묘지에 묻는 장례(매장)식이 있었습니다.

 

장례식이 새해 연휴인지라, 시아버지 형제/자매님들의 아들/딸들이 다 총출동을 했습니다.

출근도 안하고 집에 쉬고 있는데, 시고모부의 장례식에 참석을 안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죠.

 

며느리인 저는 당연히 장례식에 참석 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정작 남편은 갈 생각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나중에 마눌에게 날리는 뜬금없는 한마디.

 

우리도 엉클 장례식에 가야 할 거 같아.
당연히 가는 거 아니었어? 안 갈려고 했어?

...

그런데 왜 마음을 바꿨어?

다들(남편의 사촌들) 가는 분위기인거 같아서..

 

그렇게 시부모님, 집에서 휴가를 즐기는 시누이, 그리고 남편과 감기를 달고 있는 며느리까지.

우리가족은 모두 총출동했습니다.

 

 

장례식 사진을 찍지 않는 관계로 인터넷에서 그 동네 것을 캡처

 

시고모님이 사는 곳이 Salzburg 잘츠부르크의 도시 근처인지 알았었는데..

멀리 설산이 보이고, 집들도 옹기종기 모여 있는 시골마을치고는 꽤 큰 동네였습니다.

 

시고모부님이 공무원이셨다는 말은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오랫동안 Gemeinde 게마인데 (작은 행정단위/동사무소)에서 근무를 하시면서,

나중에는 동장까지 하셨던 모양입니다. 이 동네를 적자 없는 마을로 만들기도 하셨답니다.

 

해마다 겨울에는 여동생이 사는 이곳에 시아버님이 혼자서 스키휴가를 오시곤 하셨었는데..

겨울에는 이 동네를 지나는 노르딕스키 코스가 있는지라 겨울 휴가지로 딱이었던 모양입니다.

 

시고모부는 그림 같은 마을의 한복판에 있는 성당에서 미사를 드린 후에 성당묘지에 묻히셨는데.. 전에 한번 가봤던 시어머니의 오빠 장례식과는 또 다른 장례식을 보고 왔습니다.

 

 

장례식 사진을 찍지 않는 관계로 인터넷에서 그 동네 것을 캡처

 

장례식을 위해서 참석한 사람들의 규모에 놀란 장례식입니다.

우리가 성당에 도착한 시간이 2시가 안된 시간.

 

가족들의 입장후에, 한 시간 동안 끊임없는 사람들의 행렬이 성당 안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시작된 성당 미사. 작은 성당에 파이프 오르간의 소리에 맞춰 노래하는 성가대도 함께하는 굉장히 웅장한 대형 장례식이었습니다만, 난방도 안 된 성당에서 두어 시간 넘게 앉아있는 것이 감기 걸린 상태의 저에게는 많이 힘들었습니다.

 

나중에는 손, 발도 꽁꽁얼고 콧물은 계속해서 줄줄~^^;

경건한 미사를 보는데 코를 풀어대는 소리가 방해될까봐..

흐르는 콧물은 계속해서 휴지를 대고 있어야했죠.^^;

 

나에게는 길고, 추운 미사가 끝난 후에는 장례식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다 시고모부의 유골함을 따라서 마을 한 바퀴를 돌았습니다. 위의 사진처럼 말이죠.

 

 

장례식 사진을 찍지 않는 관계로 인터넷에서 그 동네 것을 캡처.

 

오스트리아 전통 복장을 한 어르신들은 마을의 원로들이셨나 봅니다.

이분들도 장례식 미사중에 앞쪽에 쭉 앉아계셨었는데..

 

시고모부님도 이분들중에 한분이셨나 봅니다.

한분의 마을의 존경을 받는 원로로 말이죠.

 

 

장례식 사진을 찍지 않는 관계로 인터넷에서 그 동네 것을 캡처

 

마을의 음악대도 시고모부님의 마지막을 함께 했습니다.

좋은 일은 아니지만, 마을의 모든 분들과 모든 행사진들이 총출동한 대규모 장례식이었습니다.

 

날씨도 추운데 맨손으로 악기를 연주하는 분들도 평생 공무원으로, 동사무소의 직원으로, 동장으로 마을에 헌신한 시고모부님의 마지막을 온 동네 사람들이 다 함께 하셨습니다.

 

시고모부님의 유골함 뒤로 시고모님과 딸 셋그리고 그들의 배우자와 그 자손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시고모님의 형제/자매들과 그 자손들.

그리고 그 뒤로 마을 사람들이 따라서 걸었습니다.

 

시고모부님은 이복형이 하나밖에 없는 관계로..

시고모님의 형제/자매님들이 가까운 친인척 자리를 채웠습니다.

 

저도 얼떨결에 가까운 친인척으로 분류가 돼서 함께 걸었는데..

제가 이곳의 유일한 까만 머리 외국인이었던지라 사람들이 눈길을 한 번에 받았습니다.^^;

 

집안에 한국에서 온 며느리가 있다더라.라고 알고 있었던 사람도 있었을 테고..

모르는 사람들은 동양에서 데리고 온 여자가 하나 있는 집안이라고 생각했겠죠.^^;

 

 

장례식 사진을 찍지 않는 관계로 인터넷에서 그 동네 것을 캡처

 

시고모부님은 이미 매장되어계신 (시고모부님의)어머니의 무덤에 함께 묻히게 되어 시고모부님의 유골항아리를 땅에 넣고 꽃을 던지는 순간 요란하게 울리는 대포소리.

 

깜짝 놀랐습니다. 축제도 아닌데 왠 대포를..

몇번을 쏴대는데 매번 깜짝 놀랄정도로 엄청나게 큰 소리였습니다.

 

뭔 장례식에 대포를 몇 방씩이나 쏘나 했었는데..

평생 이 마을에 헌신한 시고모부님의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던 거 같습니다.

 

그렇게 장례식은 끝나고..

사실 배가 무지하게 고팠습니다.

 

집에서는 1030분에 출발해서 시고모님 댁에 12시경에 도착했는데..

130분까지 시고모님 댁에 있으면서 우리가 먹은 건 차와 물.

 

성당에 도착해서 길고 추운 미사가 끝나고 마을 행진하고 성당 앞 묘지에 시고모님의 유골함을 넣고나니 오후 4. 춥고 배고픈 시간이 끝나고 드디어 식당에 갔습니다.

 

식당에 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가까운 친인척만 장례식이 끝난 후에 식사를 하는 줄 알았었는데..

장례식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다 식당에 온 듯 합니다.

 

우리가 시고모님 댁으로 이동을 하면서 시아버지께 여쭤봤었습니다.

 

아빠, 한국은 장례식에 갈 때는 조의금을 가지고 가는데, 여기는 어떻게 해요?

보통은 꽃을 가지고 가는데, 니 시고모가 꽃은 됐다고 해서 돈으로 조금 주려고..

 

옆에 계시던 시어머니가 끼어들어서 한마디 하십니다.

 

너희(아들과 딸)은 따로 낼 필요 없다. 너희 아빠가 넉넉하게 낸다.

 

이 부분에 헉^^; 했습니다.

짠내나게 알뜰하신 두 분이 넉넉하다신 금액이 설마 100유로는 아니겠지요?

우리는 5명이 가니 1인당 20유로씩 잡아도 밥값만 100유로인데 말이죠.

 

 

인터넷에서 캡처

 

장례식에는 소고기를 먹는다고 예전에 들었던 것 같았는데..

이번에는 프랑크푸르트소시지 2개가 나오는 국수스프를 먹었습니다.

 

국수스프는 인터넷에서 캡처한 사진과 동일한데 소시지는 사진처럼 썰어진 상태가 아니라,

긴 상태로 2개가 나왔습니다. 같이 먹을 수 있는 하얀 빵인 셈멜이 나왔습니다.

 

300명이 함께 먹는 저녁이라 조금 더 저렴한 메뉴를 준비한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장례식에 국수 스프를 먹는 것이 전통이라는 이야기도 들은 거 같고!!

 

국수로 끝나는 줄 알았던 메뉴였는데..

뜬금없는 디저트인 다양한 종류의 케이크에 커피까지 나옵니다.

 

우리나라처럼 문상을 가서 조의금내고 육개장 먹는 문화도 없는 오스트리아인데..

300여명이 먹은 음식 값은 누가 내는 것인지...

 

음료 3유로(맥주는 더 비싸고), 소시지 2개가 딸려 나오는 국수스프는 대략 6유로?

거기에 커피& 케이크는 아무리 싸도 5유로정도. 저렴하게 따져도 1인당 15유로.

 

음료도 잔이 비어있으면 웨이츄레스가 계속 추가할 것인지를 물어오는지라 금액은 더 올라가죠.

시고모님이 재벌도 아니고 300x 15유로만 계산해도 엄청나게 나올 금액.

 

도대체 이 금액을 누가 다 부담하는지 궁금했었는데..

시아버지가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하셨습니다.

 

가까운 친인척이 먹은 건 네 시고모가 부담을 하고, Gemeinde게마인데(동사무소)쪽에서도 온 사람들이 많으니 거기서도 조금 부담을 하는 거 같더라구!

 

나의 경제적인 추측은 여기까지!

 

장례식을 마치고 밥도 먹고, 시고모께 인사를 하고 우리는 식당을 나왔습니다.

 

시고모님은 한동안 매일같이 성당 묘지의 귀퉁이에 계실 시고모부님을 찾아가시지 싶습니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것은 슬프지만, 오랫동안 병으로 힘들고 아파하셨을 시고모부님이 이제는 편안해지셨지 싶은 마음도 드는 날입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이번 생이 다 했을 뿐이죠.

 

시고모부님은 가셨지만, 그분과 함께 했었던 우리의 기억 속에 계속 계시지 싶습니다.

우리들의 생이 다할 때까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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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18.01.10 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