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신문을 장식하는 오스트리아의 떠오르는 스타가 있습니다.
그를 처음 본 것은 몇 년 전 그라츠 시내의 한 골목에서 이었습니다.
친구와 길을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들리는 쿵쿵거리는 음악소리!
그 소리를 따라가 보니 한 젊은 청년이 작은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그 청년 주위로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대부분은 중년의 아줌마들이 그와 함께 노래를 부르며 춤도 추고 있었습니다.
그때도 오스트리아를 1년 반 동안 떠나 있다가 다시 들어갔던지라 오스트리아에서 어떤 일이 났었는지 전혀 모르는 상황 이였습니다.
그의 음악을 들으며 입이 귀에 걸리는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이 동네잔치 있어? 웬 거리의 가수야?”
“요새 한참 떠오르는 샛별인데, TV에도 자주 나와.”
친구가 말했던 “떠오르는 샛별”이라는 가수는 “Andreas Gabalier 안드레아스 가발리에”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는데, 내가 처음 본 그의 첫인상은..
“무슨 연예인이 얼굴이 저렇게 커? 몸매 관리는 안 하남? 연예인치고는 뚱뚱한디!”
사실은 뚱뚱한 것이라기보다는 한 덩치 하는 몸매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안드레아스 가발리에”라는 이름의 젊은 청년을 봤습니다.
그리고 잊었습니다.
TV를 자주 보지도 않고, 본다고 해도 쇼프로는 안보니 만날 일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가 어떤 노래를 부르는지 들어본 적도 없고 말이죠!
이 청년은 조금씩 더 유명해져 갔고, 어느 날 제가 일하던 일터에서 농담 아닌 농담을 들었습니다.
“너, 안드레아스 가발리에 속바지(팬티)만 입은 거 봤어?”
완성한 럭셔리 도자기난로 배달을 다녀온 직원에 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엥? 웬 팬티? 이 인간이 지금 나한테 성적인 농담을 하나? “
이런 생각을 하면서 대답했습니다.
“난 안드레아스 가발리에 가죽바지 입은 것만 봤는디!”
Österreich 신문에서 발췌했습니다.
(안드레아스 가발리에는 노래를 오스트리아의 토속적인 풍으로 부르는 관계로 오스트리아 전통 의상인 가죽반바지를 유니폼처럼 입고 다닙니다. 사진 속에 보이시죠?)
“우리 오늘 안드레아스 가발리에 엄마네 오븐 배달 갔었는데, 안드레아스 가발리에가 팬티(아마도 트렁크 종류인 듯)만 입고 우리 앞을 왔다 갔다 하는 거 있지!
우리는 안드레아스 가발리에 팬티만 입은 거 봤다~~^^”
직원들은 자기들이 연예인 속옷차림으로 집에 있는 걸 봤다고 자랑하고 싶었던 거죠!
유명한 연예인의 얼굴만 봐도 고마운데, 속옷차림이라니요!^^
(아쉽게도 배달 간 직원들은 둘 다 남자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안드레아스 가발리에”를 익혀갔습니다.(뭘 삶남? 익혀?)
그리고 몇 달이 지나고 시내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집 바로 건너편에 있는 슈퍼마켓 주차장에서 잘생긴 청년을 봤습니다.
멀리서도 훤해 보이는 얼굴이라 누군가 싶어서 쳐다보니...
“헉^^; 니는... 내가 아는 ”안드레아스 가발리에!“
내가 아는 그 유명한 연예인이 바로 내 앞에 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가서 아는 체하고 사인이라도 받고 싶지만, 선뜻 나설 용기는 내지 못했습니다.
그 잘생긴 청년이 저를 빤히 쳐다보기까지 했는데도 말이죠!
이런 상황이 될 때마다 짧은 순간에 고민을 합니다.
“영어로 할까? 독일어로 할까?”
전에 남편이 해준 조언이 있었습니다.
“상황이 불편하거나 당신의 권리를 주장해야하는 상황이면 영어로 말 해. 엉성한 독일어로 말하면 상대방이 무시하고 들어오지만 영어로 하면 상대방이 긴장하니까!”
저는 우리 집 앞 슈퍼마켓에서, 그 옆 카페에서 그 후 몇 번이나 더 안드레아스 가발리에를 만났었습니다. 그때마다 용기를 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야 했죠!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
안드레아스 가발리에는 다른 나라의 대스타들과 나란히 서서 노래를 할 만큼 대스타가 되었습니다. 매일 신문에 나는 그의 기사를 볼 때마다 생각합니다.
“그때 가서 인사하고 사인도 받고 같이 사진 한 장 찍어둘껄!”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때 아는 체했다가 면박을 당했으면 두고두고 그를 “개XX" 취급했을 테니 안한 것이 더 나은 것 같기도 합니다.
이건 다른 이야기이지만..
독일의 여가수가 오스트리아에 콘서트를 왔던 모양입니다.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60대의 아저씨는 불편한 몸으로 그 가수의 콘서트를 갔었고, 콘서트가 끝난 후에 밖에서 그 여가수에게 줄 선물(책)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밖으로 나오면서 그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팬을 본 여가수는 깔깔 웃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근육위축이 되는 병이니 정상인 같지 않게 몸이 틀어지고 웃기게 보였나봅니다.
팬의 한사람으로 그녀에게 줄 책을 선물하려고 기다렸던 아저씨는 그 여가수의 행동에서 치욕을 느꼈고, 그 여가수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중입니다.
최고의 변호사를 선임해서 재판을 진행 중인 것이 요즘 일입니다.
스타라고 해서 다 공손한 것도 아니고, 제가 그 청년(안드레아스 가발리에)를 아는 체했다가 괜히 무시당했다면 두고두고 억울했을 테니 안했던 것이 더 나은 결정이었다 싶다가고, 혹시나 그 청년이 정말 매너 좋게 외국인 팬(볼품없는 중년여성?)이라고 다정하게 대해줬을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유럽에 사는 것이 그렇습니다.
나는 분명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도 자랑스러운 한국인인데..
유럽 속, 백인들에 파묻혀서 사는 나는 자꾸만 작아집니다.
내가 동양인이라고 무시하고, 내 독일어 발음이 정확하지 않다고 무시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눈에 보이는 차별을 당하다보면 나는 자꾸만 작아집니다.
그래서 “나는 외국인”이라는 자격지심도 생기는 거 같고 말이죠!
저는 여전히 당당히 어깨를 펴고 살고 있지만, 가끔씩 소극적으로 움츠려드는 나도 내속에 있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 내가 아무리 오래 살아도 나는 외국인이고, 내 독일어 발음이 현지인처럼 될 수는 없겠지만, 살다보면 자격지심도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고, 공감 버튼을 눌러주시면, 제가 글을 쓰는데 아주 큰 힘을 주신답니다.
로그인하지 않으셔도 공감은 가능합니다.^^ 눌러주우~↓↓↓↓^^;
'내생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실망스러웠던 이주여성을 위한 파티 (13) | 2014.10.11 |
---|---|
내가 해 주지 못한 이야기. (6) | 2014.10.01 |
아이스버킷의 기부금은 어디로 갈까? (21) | 2014.09.25 |
머리로 한 스코틀랜드 선거 (4) | 2014.09.23 |
반평생 살아도 외로운 타국살이 (23) | 2014.09.18 |
사촌오빠의 “피라미드 회사”로의 초대 (4) | 2014.09.07 |
한국인만 이용 불가능한 공항의 “만들기 체험코너” (7) | 2014.08.17 |
고향으로 돌아간 내 친구, (6) | 2014.08.14 |
드라마 “별그대”와 중국인 관광객 (6) | 2014.07.10 |
비행기 안에서의 매너와 민폐 차이 (11) | 2014.07.0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