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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오스트리아 이야기

시 할머니의 무덤

by 프라우지니 2013.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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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편의 특징은..

본인의 “안 좋은 추억”은 절대 입 밖에 내지 않습니다.

 

잊고 싶은 일에 대해서 말하게 되면 또 생각이 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게되니 아예 그 일에 대해서는 아예 말을 안 하죠!


저는 남편에게서 “할아버지,할머니”에 대해서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본인에게는 별로 즐겁지 않은 추억이거나, 기억하고 싶지 않는 일이라는 얘긴거죠!


남편에게는 잘 듣지 못했던 어린시절의 얘기도 (시)엄마 옆에서 하루를 보내다 보면..

주어 듣는 얘기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외국에는 시집살이가 없는 걸로 알고 있지만..

며느리로서 시어머니와의 갈등이 없는 건 아닌 모양입니다.

 

울(시)엄마 말씀 듣고 있다보면 같이 울게 됩니다.

서러워서 말이죠!


제 (시)아버지는 3남2녀중 둘째아들인데, 결혼 후에 분가하지 않고, 할아버지가 사시는 집옆에 집을 지어서 사셨습니다. 한 지붕 두 가족으로 사신거죠!


문제는 시할아버지, 시할머니는 엄마를 별로 좋아하시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시아버지가 인물은 좀 뛰어나시기는 하지만 그 외 학벌이나 직업, 경제력은 그 당시로 비교해 봐도 썩 좋은 상황은 아니셨는데, 왜 그리 (시)엄마를 안 좋아하셨는지 원...^^;


같은 마당을 쓰면서 사셨던 (시)엄마는 할머니께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셨던 모양입니다.


아버지의 형제분들이 집에 오실 때, 데리고 온 아이들(남편의 사촌)이 마당에서 사고 치고,

부셔놓고 하는 것들을 할머니는 다 남편이 했다고 남편만 혼냈다고 합니다.

같이 사는 손자가 젤 만만해서 였을까요?


내 자식이 혼나는 것이 내가 혼나는 것보다 더 가슴이 아픈 것이 부모 맘이죠!

엄마가 지금까지 가슴 아파하시는 얘기 중에 하나는..


제 남편이 아주 어릴때 마당에 있는 사과나무에 자전거를 기대서 놨던 모양인데..

사과나무에 자전거를 기대놨다는 이유로 할아버지한테 따귀를 맞았었다고 합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4~5살 꼬맹이 때릴 때가 어디 있다고???


남편이 대학을 간다고 했을 때도, 할머니는 결사 반대를 하셨다고 합니다.

 

대학 나와서 취직 못 하면 말짱 헛 일이라고, 그냥 중학교 졸업해서 기술이나 배우라고..

(우리나라도 예전에 이런 사고방식 가지신 분들이 계셨죠!)


할머니가 남편의 대학 학비를 대줄 것도 아니면서 왜 그리 결사 반대를 했는지..

아들은 엄마 편이라고, 아빠도 남편의 대학진학을 그리 탐탁지 않게 여기셨던 모양입니다.


남편은 엄마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서 대학에 들어갔고,

석사학위 엔지니어가 되어서 번듯한 직장에 월급도 남 부럽지 않게 받고 있습니다.

(얘기가 또 이상한 쪽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시댁에 잠시 머무는 며느리가 심심할까봐 (시)아빠는 시시때때로 데이트 신청을 해오셨습니다.

 

“나 자전거 타러 갈껀데.. 같이 갈래?”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자전거타는 사람)은 저와 아주 많은 관련이 있는 아빠이십니다.^^)

 

아빠를 따라서 호수를 지나고, 강변을 따라서 자전거를 타던 날!

아빠는 며느리를 데리고 공동묘지에 갔습니다.

 

시집와서 처음으로 시 할아버지, 시 할머니는 만나뵙게 된 날입니다.


남편은 한번도 할아버지,할머니에 대해서 말 한 적이 없고,

무덤이 어디쯤에 있다고 한 적도 없습니다.

 

(시)엄마는 시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시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두 분의 무덤을 찾은 기억이 별로 없다고 하셨지만, 아빠는 아주 자주 그곳에 들려서 무덤을 관리하신다고 하셨는데..

오늘이 그 날이였던 모양입니다.


열심히 무덤에 난 잡초를 뽑고 청소 하시는 아빠옆에서..

저는 무덤속의 두분께 혼자서 한국말로 궁시렁 거렸습니다.


“할머니! 할머니는 왜 그리 울(시)엄마를 구박했어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왜 그리 제 남편을 구박했어요?”


“그렇게 같이 사는 며느리,손자 구박하시다가 지금은 무덤도 안 찾아오니 좋으세요?”


“살아계실 때 조금 만 더 친절하시지 그러셨어요?”


시할아버지 내외분의 무덤 앞에 처음 찾아온 외국인 손자며느리는 참 오래도 궁시렁 댔습니다. 그러면서 약간 걱정이 되기는 했습니다.

 

혹시나 제가 투덜거렸다고 두 분의 영혼이 노여워하시지는 않으실까 하는...


(시)엄마가 힘들게 하신 시집살이여서 일까요?

엄마는 외국인 며느리를 정말 딸처럼 챙겨주십니다.


당신이 하셨던 그 눈물겹던 시댁살이를 며느리에게는..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 고 하시지만..


며느리는 압니다. 당신에게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아픈상처라는것을..

며느리에게 똑같은 상처를 안 주시려고 하신다는 것도!

 

항상 며느리를 배려해주시고, 사랑해주시는것을 며느리는 항상 느낀답니다.

엄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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