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퍼즐 맞듯이 딱 맞는 부부는 없습니다.
이건 순전히 제 생각입니다.
싸우지 않고 잘사는 부부들도 있겠지만,
저희 부부는 거의 매일이 충돌이고
때로는 심하게 삐그덕 거립니다.
마눌을 심하게 챙기고,
(걱정하는 마음에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잔소리를 달고 사니 남편 덕에
마눌은 가능한 남편과의 거리를
유지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남편이 주방에 오면 나는 방으로 내빼고,
남편이 방으로 오면
얼른 주방으로 도망치죠.
남편 얼굴이 다가오면 수염 때문에 따갑고,
남편의 손길도 때로는 무섭습니다.
남편이 귀엽다고 때리는 궁디팡팡인데,
여자인 내가 감당하기에는
조금 쎈 강도라 때로는 나도 모르게
남편의 배에 주먹을 날립니다.
내가 아프니 “너도 아파봐라” 하는 거죠.
매일이 치고 받고, 투닥거리면서도
사이 좋게 잘 살고 있는
우리는 15년차 중년 국제 부부.
평소에도 조용하지 않는 일상이지만,
서로의 감정이 격해지면
상대에게 상처가 되는걸 알면서도
뱉어내는 말들이 있습니다.
부부싸움을 할 때라도 서로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는데..
우리 부부는 상대방이 싫어하는
말인 것을 알면서도 그냥 뱉습니다.
아무리 화가 나도 마눌에게 하지 말라고
내가 남편에게 부탁한 말은..
“나가!”
전에 부부싸움을 할 때 내가
“집을 얻어서 나가겠다”, “한국 간다”고
한적이 있기는 했지만,
격한 감정이 지난 다음에 남
편에게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나는 당신이랑 싸워도 갈 친정도 이곳에 없고,
친구도 없어서 집 나가면 갈 곳이 없어.
그러니 집 나가라는 말은 제발 하지마.”
이런 부탁을 했음에도 남편은 화가 나면
컨트롤이 안되는 것인지
마눌에게 “나가”라는 말을 하죠.
남편 딴에는 (일단 보기 싫으니)
밖에 나가라고 한 뜻일수도 있지만,
그 말을 듣는 나는 서럽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우리부부의
부부싸움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시작합니다.
같이 장을 봐와서는 냉장고에 넣어야 하는
요거트나, 치즈 종류를 씻고 닦아서
냉장고에 넣어놨는데,
그걸 다시 다 꺼내서는 다시 씻는 남편.
씻어서 넣어 놨다는 마눌을
믿지 못해서 자신이 직접 하는 거죠.
마눌이 씻기는 했는데, 뜨거운 물에
세제를 풀어서 씻어야 하는데,
마눌은 찬물에 씻어서 헹구니
마음에 안 드는 것도 있겠고,
남편은 뭐든지 자신이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입니다.
싸움의 시작은 마눌이 씻어서
넣어놓은 것들을
다시 꺼내서 씻는 남편이었고,
열 받은 마눌은 방에 와서는
침대 위, 마눌의 자리까지 넘어와 있던
남편의 잠옷을 바닥에 던져 버렸습니다.
잠자고 나면 꼭 잠옷을
침대 위에 널어놓는 남편.
널어 놓을거면 자기 자리에 놓던가,
남편 옷인데 항상 내 자리에 놓여있죠.
남편에게 잠옷은 “당신 자리”에 놓으라고
몇번의 부탁도 했었는데 여전히
마눌 침대 위의 남편 잠옷.
열 받는 김에 내 자리에 있던
남편 옷가지들을 바닥에 팽개치고 나니
이번에는 남편이 열 받을 차례.
바닥에 버려진 옷을 보고
열 받은 남편이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을 합니다.
“방 얻어서 나가,
집에서 나가라고!”
남편의 이 말에 나는 침대에 앉아서는
스마트폰으로 근처에 나온
방들을 검색했습니다.
월 300유로 이하면 좋겠는데,
주변에 있는 집들은 400유로선.
혼자서 살기에는 조금
과한 월세인 듯도 하고!
사실 화가 나면 “집 나간다” “방 얻는다”는
말은 내 입으로 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집을 나갈 생각은 절대 없죠.
사실 집을 얻어서 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침대부터 냉장고에 장롱까지
몽땅 다 사야 하는데,
차도 없이 그런 것들을
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또 오스트리아는 전기도 이사온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새로 개통을 해야합니다.
이보다 더 번거로울 수 없는 시스템이죠.
마눌보고 집을 나가라는 말은
남편이 격한 감정에
한 말인 것을 알고 있고,
화가 풀어지면 “가기는 어딜 가냐”고
마눌을 꼭 안아줄 것도 알지만
그래도 속이 상한 건 사실.
물론 마눌도 잘못한 것은 있습니다.
아무리 화가 나도 남편의 잠옷을 바닥에
내팽개치면 안 되는데 해놓고는
미안하다는 말은 안하죠.
(나중에 화가 풀리면 미안하다 하지만,
지금은 화가 났으니 이런 말이
입에서 나올 수는 없는 시간.)
그래 놓고 남편의 “나가”라는
말에는 괜히 슬프고 우울하고..
말을 안 하는 마눌을 가장 무서워 하는
남편이 오후 내내 마눌을 이리 보듬고,
저리 보듬어도 마눌은 입을 열지 않았죠.
그리고 다음 날!
저는 아침에 늦으막히 일어나서
옷을 입고 집을 나왔습니다.
갈 곳이 있는 건 아니지만,
동네 쇼핑몰로 출동.
쇼핑이라는 것이 뭘 살 것이
있어서 가는 것이 아니죠.
다니다 보면 필요한 물건도
눈에 띄 이는 법이고!
신발가게에 갔다가 눈에 띄는 신발 발견!
앵글 부츠의 밑창이 조금 닳은 상태라
“바꿀까?” 싶었는데,
마침 세일도 심하게 하는 제품 발견!
60유로짜리 가죽 부츠가 파격적인
가격이니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마침 신발도 살 생각이 있었으니
얼른 맞는 사이즈를 찜 하는 걸로!
기분이 꿀꿀할 때는 뭔가를 사면서
푸는 스트레스도 있는 법이니..
하나를 사면 하나를 버리는
“미니멀 라이프”를 사는 남편의 마눌답게
신던 신을 거기에 두고 새 신발을 신고
가게를 나와서는 삐까번쩍하는
새 가죽 구두를 신고
쇼핑몰을 누볐습니다.
새 신발은 원래 발이 아픈 법인데,
이 신발은 내가 신던 신발처럼
발이 아프지도 않고 편하고!
그래서 쇼핑몰을 좌우로,
위아래로 누비고 다녔죠.
심심해서 갔던 H&M에서도
눈에 띄는 제품 구매.
크리스마스도 다가오고 있고 해서
“근무 용으로 하나 장만할까?” 했었는데,
마침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귀걸이가
5개나 되니 안 사면 손해!
오늘 쇼핑을 하면서 꿀꿀한
내 기분을 풀라는 계시인것인지
신발에 이어서 귀걸이까지 득템 하고 보니
쇼핑하러 오길 정말 잘한 거죠.^^
정가 10유로짜리 귀걸이 5세트는
단돈 1,59유로에,
정가 60유로짜리 가죽 부츠는
60% 세일된 24유로에.
그렇게 좋은 제품 싸게 사서
기분 좋게 집에 오니 현관이 열리는 소리에
남편이 빠끔히 얼굴을 내밀면서
마눌의 눈치를 살핍니다.
눈치를 살피니 내가
뭘 하다 왔는지는 알려줘야죠.
“새로 신발이랑 샀어.”
마눌이 뭘 샀다고 하면 평소의 남편이라면
잔소리부터 늘어놓겠지만,
지금은 마눌은 심히 우울한(=말 안함)
상태이니 말없이 배시시 웃더니만 한마디.
“그럼 헌 신발은 버릴거지?”
사실 새 신발을 신고 헌 신발을
쇼핑몰에 버리고 온 것은
내가 새 신발 샀다는 걸 남편이
인지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지만
아무튼 버리고 온건 이야기 해야죠.
“헌 신발은 거기서 버리고 왔거든?”
다시 입 다물고 마눌의
새 신발을 쳐다보는 남편.
이쯤에서 한마디 하면
먹힐 거 같으니 일단 던져보기.
“이 신발 반값 할인해서 겁나게 저렴하게 샀더든,
당신이 30유로를 내주면
내 기분이 쪼매 좋아질 것도 같고!”
마눌의 한마디에 눈이 반짝이며
남편이 다가오지만 대답은 안하니
다시 확인사살하기.
“그래서 낸다고 만다고?”
“음..생각 해 보고!”
남편이 생각 해 본다는 이야기는
긍정이라는 이야기죠.
안될 것은 애초에
말꼬리를 잘라버리거든요.
그렇게 저는 생각지도 못한 신발을 얻었습니다.
사실 저렴하게 득템한 제품이라
내 돈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지만,
마눌의 심기를 심히 불편하게,
특히나 하지 말라고 부탁했던 말까지
열 받는다고 뱉어낸 남편이니
이 정도로 저렴하게 끝난 것은
남편에게도 감사할 일입니다.
내 마음에 상처를 냈는데,
“그깟 30유로에 용서를 해주냐?”
하실지도 모르지만,
계속 내 마음이 불편한 상태로
있어봤자 부부관계에 도움이 되지는 않죠.
덕분에 새 신발 얻어 신어 기분이 좋으니
이번에도 용서하는 걸로!
물론 남편에게 “잘못했다”는
사과는 따로 받았습니다.
나 또한 남편의 잠옷을 바닥에
팽개친 건 잘못한 일이니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죠.
살아가는 세월이 길어 길수록
서로를 이해하고, 조금씩 조심하면
이런 싸움이 조금 덜 일어날 것도 같은데..
아직 철들지 않는 부부라
우리 부부는 이런 일을 반복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서로 약 올리고, 화내고, 말 안하고,
보복에 들어가고 나중에 사과까지!
다들 이러고 사는 건가요?
그렇다면 우리도 정상 범주에
들어가는 중년부부라 믿고
싸울 일이 생기면 열심히 더
전투적으로 살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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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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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업어온 영상은 오늘의 이야기에 나오는 남편이
열나게 팔운동 한 할슈타트 카약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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