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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 안 되는 시아버지의 행동

by 프라우지니 2014.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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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번에 오스트리아에 들어오면서 들깨를 사가지고 왔습니다. 남편이 깻잎을 좋아하기도 하고, 마당이 넓은 시댁의 마당 한 귀퉁이에 깻잎을 심어서 가을쯤에 깻잎으로 간장 장아찌를 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말이죠!

 

몇 년 전에 마당을 야채밭으로 가꾸시는 시아버지께 들깨를 선물 해드린 적이 있었는데, 잎이 흐드러지게 핀 깻잎 나무(제 키를 훌쩍 넘어서까지 컸습니다.)를 그해 가을이 가기 전에 시아버지는 몽땅 뽑아버리셨습니다. 시아버지 입맛에는 쓴맛이 나는 깻잎이 별로이셨던 모양입니다.

 

지금까지 시아버지께 여러 가지 한국산 야채 씨앗을 선물해 드렸었지만, 지금까지 해마다 씨를 뿌려서 심으시는 건 “오이”뿐입니다.

 

이 오이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 날씬+ 길쭉=오이가 아닌 5배정도 뚱뚱하고, 길이는 1/3정도 짧은 한국국적을 상실한 오이입니다. 이제는 어디 가서 한국산이라고도 말 못 할 정도로 형편없는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지금도 한국산임을 알 수 있는 것 하나 있습니다.

 

오이 꽁지가 쓰다는 것! 한국을 떠난 지 꽤 오래됐는데, 오이는 여전히 자신이 한국산임을 잊지 않고 있는 듯 합니다. (뭐래?)

 

시아버지는 별로인 깻잎을 내가 직접 심어서 먹겠다는 생각은 완전 좋았습니다.

문제는 심어야할 시기를 놓친 거였죠. 여름이 가기 전에 빨리 심었어야했는데, 이사 오고, 이런저런 일들을 처리하고 나니 벌써 한여름! 그래도 일단 심어봐야 하는 거죠!^^

 

 

 

 

이곳에 심었던 콩을 뽑아내고, 아버지는 무씨를 뿌리셨습니다.

아버지가 무씨를 뿌리시던 그날, 저도 화분에 키운 깻잎 모종들을 땅위에 분가시켰습니다.

 

그리고 모종들이 땅에 굳건하게 서기만을 매일 기다렸고, 매일 대화도 했습니다.

건강하게 빨리 커야 한다고 말이죠! (그럼 먹어 버릴꺼면서..^^;)

 

비가 하도 많이 온 여름이라 따로 물줄 필요가 많지는 않았지만, 잠시 해가 나오면 엄청시리 뜨거운지라 땅이 바짝 마르기도 했죠. 시아버지의 넓디넓은 야채밭 전부에 물주는 건 무리였지만, 내 깻잎에 물주면서 옆에 심어놓는 시아버지의 무에도 물을 가끔씩 주었습니다.

 

그런데 게으른 며느리가 물주는 걸 게을리 하는 동안 이상한 현상 한 가지를 발견했습니다.

 

“시아버지는 내 깻잎에는 물을 안 준다?”

 

다른 것들은 분명히 다 촉촉하게 물을 줬는데, 이상하게 내 깻잎만 땅이 말라있습니다.

 

처음에는 착각인가 싶어서 며칠 동안 유심히 관찰하니 정말로 시아버지는 내 깻잎에는 물을 안주셨습니다. 그래서 옆에 무씨가 싹이 나서 무럭무럭 자라는 동안에도 내 깻잎은 땅꼬마로 있었던걸 까요?

 

그렇다고 해서 며느리된 입장에서 시아버지께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는 일이죠!

 

“아빠, 내 깻잎에 물 안주셨어요? 왜 다른 건 다 주면서 내 깻잎만 빼놓으셨어요? 다른데 물주면서 쪼매만 주면 되는데..^^; 나는 내 깻잎에 물줄 때 옆에 아빠 무에도 물 줬는데..^^;”

 

이렇게 물어보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며느리의 책임감을 기르기 위해” 혹은 “내 것이 아니면 손 안대는 서양인의 생활태도”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결국 입 밖으로 그 말을 내지는 못했습니다.

 

시부모님을 별로 어렵게 생각하지도 않고, 하고 싶은 말 다하고 살면서도 이런 부분에서는 또 말을 못하고 맙니다. 아마도 내가 심은 깻잎이니 내가 책임지고 물주고 사랑주고 하라는 시아버지의 생각이 아니셨나 싶기도 합니다.

 

시아버지는 마당에 키우시는 야채들과 하루를 보내시는데, 저는 달랑 심어만 놓고 물도 안 주면서 빨리 자라기를 바라는 완전 염치없는 농부였으니 시아버지 눈에 곱게 보였을 리 없었겠죠.

 

다행이 자주 들여다보고 물도 빼먹지 않고 자주 준덕에 내 깻잎은 많이 자랐습니다.

아직 깻잎을 따먹기는 조금 무리가 있지만 말이죠!

 

더 크길 기다리다가 서리 맞아 얼어버리면 먹지도 못하게 될까봐 날씨가 서늘해지는 지금은 매일 깻잎을 보는 마음이 조급합니다.^^;

 

저는 내년에는 깻잎을 심지 않을 생각입니다. 저희가 마당이 있는 혹은 뭔가를 심을 수 있는 땅이 있는 곳으로 이사 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심으려고 합니다. 모르죠! 심기는 하려는지..

 

내 깻잎만 빼놓고 물 주신 아빠가 조금 섭섭하기도 했지만, 내가 할 일을 하지 않는 내 게으름도 컸다는 걸 배웠고, 뭔가를 심어서 가꾸는 건 내 취향이 아닌 거 같다는 결론도 있고요.^^

 

 

지금도 아빠께는 이런 마음에 죄송합니다.

 

“내가 깻잎 심은 자리에 아빠가 무를 심으셨으면 가을에 넉넉하게 수확하셨을 텐데..

쓸데없이 제대로 키우지도 못할 깻잎을 시기도 놓친 때에 심는 바람에 아빠 땅만 뺏었구나.. 다음에는 절대 아빠 땅에 뭐 심지 말아야지..^^;”

 

항상 다정하시고, 내 편의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해주시는 시아버지셨는데, 이번 기회에 전에 알던 것과는 또 다른 모습의 시아버지를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궁금합니다. 왜 아버지는 내 깻잎에만 물을 안주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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