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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 헌옷 입으시는 시어머니

by 프라우지니 2014.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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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시댁으로 이사를 들어오면서 남편은 자신의 옷들을 정리했습니다.

뉴질랜드의 길 위에서 몇 벌 안 되는 옷으로 2년을 보내고 다시 돌아오니 입지도 않으면서 가지고 있는 옷들이 많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마눌도 옷 정리하는 남편 옆에서 덩달아 이런저런 옷들은 꺼내놓았습니다.

1년에 한 두 번입는 옷들은 사실 없어도 되는 옷들이니 버려야 하는 옷들에 분류를 해 버렸죠!^^

 

 

 

 

사실 다 입을 수 있는 옷들인데도 내 놓은 옷들입니다.

 

사 모은 옷들이 꽤 되는 마눌이야 그렇다쳐도 남편은 가지고 있는 옷들도 얼마 없으면서 무슨 베짱으로 옷을 버리는지 마눌은 도통 이해불가였습니다.^^;

 

나중에 추가로 내놓은 옷들도 꽤 되는지라 커다란 쓰레기봉투에 한가득 옷이 담기고, 거리에 서있는 어느 단체에서 내놓은 “옷 기증” 통에 가져 가려고 하니 어머니가 한마디 하셨습니다.

 

“그거 버릴꺼냐? 나둬라! 내가 확인하고 추려서 내가 아는 단체에 보낼테니!”

 

그렇게 부부가 내놓은 옷들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습니다.

 

어머니가 대뜸 며느리에게 하얀 뭔가를 보여주시면서 한마디 하십니다.

“너, 이거 정말 버릴꺼냐?”

 

며칠 전 며느리가 내놓은 양말들입니다.

 

“네, 이 양말은 평상시에 신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등산용이라 평소에는 잘 안 신거든요.

그리고 한 번에 몇 컬레를 산지라 몇 개 아직 남았어요!”

“그래? 그럼 이거 빨아서 내가 신는다!”

“네? 그러세요.^^”

 

 

 

 

그 다음날, 내가 버린 양말은 세탁기에 90도로 삶겨서 마당 빨래줄에 걸렸습니다.

발바닥 부분에 있던 보푸라기도 깨끗이 잘라내셨는지 양말은 새것이 되어있었습니다.

 

며느리가 버린 옷가지중에 입을만한 것은 어머니가 몇가지를 더 챙기셨습니다.

 

“너, 이거 정말 안 입냐? 내가 빨아서 깨끗하게 다림질해놨으니 가져가서 입어.”

“엄마, 저 이거랑 똑같은 거 또 있어요.

어차피 사이즈도 큰 것이니 어머니가 입으셔도 될거 같은데요.”

“아니다, 이거 니 시누이 줄까 생각중이다. 니가 버린 거라고는 하지 말아라!”

 

그렇게 며느리가 버린 옷가지들은 자연스럽게 시어머니, 시누이도 나눠입게 되버렸습니다.

 

우리 나라 같으면 아무리 며느리가 버린다고 내놓은 옷들이 멀쩡하고 입을만하다고 해도 그걸 선뜻 “이거 버릴꺼면 내가 입는다!”하시는 시어머니는 안 계실거 같은데, 제 시어머니는 조금 다르신거 같습니다.

 

 너무 알뜰해서 그러시는 것인지, 며느리도 딸이라고 생각하셔서 그러시는지, 아님 “아니 멀쩡한 옷을 왜 버려? 입을만하고 예쁘면 입으면 되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계셔서 그런 것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남편이 버린 옷중에 십년도 더 된 하늘색 추리닝은 시어머니의 오빠이신 시외삼촌(저는 본적이 없는)이 어머니가 주신다던 자전거를 가지러 오셔서는 얼른 챙겨가셨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손 아랫 사람”의 것은 아무리 좋아보여도 버린다고 넙죽 받아챙길 “손 윗 사람”이 드물지 않나요? 뭐라고 해야 하나? “손 윗 사람의 자존심”?

 

아들과 며느리가 버린 옷들중에 부모님은 몇 가지를 챙기셔서 직접 입으시고, 주변에도 나눠주시는 것을 보니 조금 충격적이면서도 기분은 좋았습니다.

 

요즘 어머니는 며느리가 버렸던 양말을 신고 다니십니다.

 

“봐라! 깨끗하지? 내가 준다고 할 때 다시 챙기지 그랬어! 이젠 내꺼다!”

 

며느리의 양말 신으셨다고 자랑까지 하십니다.

며느리가 버린 양말인것을 뻔히 아시면서도 말입니다.

 

한국이 시어머니였다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내가 명색이 시 엄마인데, 며느리가 버린 것이 아무리 좋아보여서 내가 입으면 며느리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겠어? 며느리가 버린 옷 주어 입는 시어머니라고 깔볼 거 아니야!”

 

시어머니가 외국인이여서 좋은 것은 이런 거 같습니다.

 

시어머니가 가지 실 수 있는 그런 “권위의식”이 없습니다.

“애, 너 이거 해라!” 식으로 명령을 하지 않으십니다.

“며느리는 이런 거 해야 한다.” 식의 강요도 없으십니다.

 

며느리가 주방에서 조금만 거들어도 “감사”하다고 하시고, “내 아들과 살아줘서 고맙다”고 하시는 시어머니가 계시다면 한국의 며느리들도 참 행복할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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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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