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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

만나도 안 반가운 사람

by 프라우지니 2018.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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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카리타스(요양보호사)학교를 졸업한지 딱 1년이 넘었습니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 저에게 정말 친절하셨고, 저를 응원해주셨던 들도 계셨지만..

저를 경멸이 담긴 삐딱한 눈으로 쳐다보는 인간들도 꽤 있었습니다.

 

외국인이라서 언어도 쉽지 않을 텐데 정말 최선을 다해서 노력한다고 진정으로 칭찬 해 주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외국인이여서 말도 버벅이면서 필기시험은 항상 만점을 맞는 재수 없는 인간”으로 저를 대하는 인간들도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저에게는 두 종류의 선생님이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를 진정으로 칭찬하고 응원 해 주시던 존경하는 선생님과.

선생이라는 직업인으로 나를 대했던 인간들.

 

카리타스 학교에서 “독일어” 과목을 가르치던 나에게는 “인간들”부류의 선생.

그 선생을 뜻하지 않는 장소에서 마주쳤습니다.

 

처음 그 선생의 뒤통수를 보고는 “뜨악”해서 얼른 고개를 돌려버렸던.

 

 

 

지난주에 연극을 보러 갔었습니다.

 

연극이 끝나고 연극을 관람한 앞좌석 쪽의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문으로 나가는 중에..

안 만나도 되는 사람의 얼굴을 보고 말았습니다.

 

앞서가던 사람이 얼굴을 살짝궁 돌리는데..

카리타스 학교에서 날 그렇게 경멸하던 눈으로 쳐다보던 금발의 단발머리 독일어선생.

 

교육 과정 중에 독일어가 있는지라, 어떻게 기록을 해야 하는지를 배우는 문법이나 일상에서 안 쓰이는 전문 용어들을 배우는 줄 알았었는데, 내 생각과는 전혀 달랐던 독일어 시간.

(특별하게 “독일어 향상이나 전문용어”를 배우지는 않았던 시간인거 같습니다.^^;)

 

얼른 그 선생이 가는 반대쪽으로 얼른 입구를 나오기는 했는데..

외투보관소에 가서 외투를 찾아서 나가야 합니다.^^;

 

극장을 방문한 사람들이 다 외투를 찾겠다고 외투보관소에 몰려듭니다.

 

극장은 안에 300여명 이상의 앉을 수 있는 구조인지라, 공연이 끝나면 외투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다 외투 보관소로 몰려드는 치열한 상황이 됩니다.

 

저는 그 선생이 서있는 반대 방향에 서서 외투를 찾아서 돌아서는데..

그 선생이 나를 본 듯한 느낌이 팍 듭니다.

 

물론 난 졸업한지 1년이나 됐고, 만나도 할 말이 없는 사이이지만,

서로 눈이 마주쳤다면 눈인사라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2년씩이나 학교 안에서 부딪혔던 사이이고,

나도 그녀를, 그녀도 나를 기억하고 있을 테니 말이죠.

 

서로 ‘재수 없게’ 서로를 기억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말이죠.

 

그렇게 나도, 그녀도 서로 다른 시간의 각자의 옆얼굴을 보는 선에서 지나쳤습니다.

서로를 알아보기는 했지만, 눈은 마주치지 않았으니 지나쳤다는 표현이 맞는 거 같습니다.

 

이런 생각을 잠시 해봤었습니다.

 

“이 공연은 50유로가 넘는 연극인데.. 저선생도 나처럼 무료티켓을 가지고 왔나?”

 

그런 생각도 했었습니다.

날 본 그 선생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저 어리벙하던 한국아낙이 이런 곳에 와서 연극을 독일어로 즐길 수준이 된건가?

아님 이런 곳(입장료 50유로)을 올 만큼 그렇게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나?”

 

그냥 우연이겠지 했습니다.

 

그 선생이 내 생각보다 저 럭셔리하게 사는지라 나는 무료로만 즐길 수 있는 고급 취미가 일상일수도 있고, 또 어쩌다보니 연극을 보러 왔겠거니 싶었죠.

 

 

 

그리고 이틀후,

 

내가 나간 다음에 퇴근한 남편을 위해서 훈제연어가 올린 빵까지 만들어놓고 나섰습니다.

 

달걀까지 삶고 그 위에 날치 알까지 올려 정성스런 저녁상을 봤습니다.^^

 

만들면서 하나 집어먹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위에 올린 양파 때문에 입에서 양파냄새 날까봐 먹지는 못했습니다.^^;

 

어쩌다 보니 이번 주에만 4개의 공연 스케줄이 잡혔네요.

연극 한 편에 오페라 2편, 뮤지컬 1편.

 

엊그제 연극을 보러갔다가 독일어 선생을 만나기는 했지만..

그건 선생이 독일어를 전공했고, 연극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보러 가는 건 오페라이니 설마 그 선생을 또 만나는 일은 없겠지요.

 

 

 

오늘 보게 되는 오페라는 공연 30분전에 작품에 대한 설명이 있는지라 일찌감치 갔습니다.

 

Unverhofftes Wiedersehen 운페어호프테스 비더제엔(기대하지 않았던(뜻밖의) 재회)

 

스웨덴의 한 지역에서 결혼을 8일 앞둔 예비신랑이 광산에 일하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고, 신부는 오지 않는 신랑을 기다리며 혼자서 50년을 살았습니다.

 

50년이 지난 후에 무너졌던 탄광에서 50년 전에 파묻힌 예비신랑이 발견됩니다.

 

예비신랑은 탄광속의 황산수염 덕에 썩지 않고 50년 전 청년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50년 만에 돌아온 (시체의)신랑과 결혼을 한다는 (죽음?) 결말의 사랑이야기입니다.

 

독일어 작가가 스웨덴의 실화를 소설로 만든 작품입니다.

 

설명을 다 듣고 이제 공연장으로 들어가려고 의자에서 일어서는데..

내 뒤에 앉아있던 사람은 엊그제 만났던 바로 그 독일어 선생.

 

옷도 엊그제 입었던 하얀 바탕에 파란색 줄무늬셔츠를 입고 왔네요.

 

“남들은 (정장) 빼 입고 오는 공연장에 웬 셔츠?” 했었는데..

오늘도 복장은 같습니다.

 

엊그제는 어떤 여성과 동행이더니 오늘은 남편인 모양입니다.

 

서로 눈이 마주친지라 얼떨결에 “Guess gott 그뤼스 고트”(=안녕하세요) 했습니다.

얼른 그곳을 벗어나면서 헉^^; 했습니다.

 

“이 양반이 나처럼 극장에서 하는 모든 공연을 다 봐서 치워버리겠다! 스타일이신가?”

 

잠시 생각을 해야만 했습니다.

 

내가 이번 달에 보는 공연 6편의 가격은 280유로가 넘는데.. 아무리 할인을 받는다고 해도 10%정도가 고작인 공연티켓인데, 정말 이 선생은 살만한 수준이여서 나와 자주 마주치는 것인지...^^;

 

 

 

소극장 공연이라 독일어 선생은 내 바로 앞줄 우측에 앉으셔서 공연 내내 선생의 뒤통수를 봐야만 하는지라 편하지 않았고,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에 감동할 준비가 되어있던 나는 완전 근사한 수준의 무대였지만 “뭐래?”하는 의문만 남았습니다.

 

배우는 무대 앞,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은 관객들 뒤에 자리를 잡은지라 나름 서라운드 사운드로 사랑이야기를 즐길 수 있을 줄 알았었는데, 내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무대는 정통 오페라가 아닌 퓨전이었나 봅니다.

 

오케스트라는 아름다운 선율이 아니라 뭐가 떨어지고 깨지는 소리를 내느라 깽깽거렸고,

배우들은 서로 이름만 불러대면서 무대를 뛰어다니는 마임 공연(오페가 가수인디..)을 했고,

중간에 등장한 해설자로 보이는 배우는 무대에서 삶은 달걀을 3개씩이나 까먹었습니다.

 

주머니에서 달걀을 꺼내 껍질을 깨서는, 작은 봉투의 소금까지 꺼내서 쳐서는 다 먹고,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물티슈를 꺼내 손을 닦는 것까지.

이것을 1시간 20분짜리 공연에 3번씩이나.

 

삶은 달걀을 3개씩 먹어대는 배우를 보면서 “입에서 닭똥냄새 나겠다.”싶었습니다.^^;

 

나중에 무대 인사를 할 때 보니 앞에 나온 배우는 5명이었는데..

무대 뒤에서 연주한 오케스트라, 합창단, 지휘자 등등 나오는걸 보니 60여명이 훌쩍 넘었습니다.

 

“아니, 왜 좋은 작품을 이리 봐도 ”내가 뭘 본걸까?”하는 작품을 만든 것인지..“

 

작품을 어떻게 손질하는가에 따라서 아름다운 순애보의 사랑이야기도 망가질 수 있다는 걸 이번에 알았습니다. 역시 너무 수술을 하면 안 되는 모양입니다.

 

공연이 끝나고는 독일어선생이랑 또 마주치는 불상사를 줄이기 위해서 얼른 그곳을 탈출했습니다. 두 번이나 마주치고 보니 다음 번 공연에도 만나게 될지 궁금해지기까지 합니다.

 

다음번 공연은 입장권이 70유로가 넘는 뮤지컬공연인데.. 나는 또 그 선생을 만나게 될까요?

 

에궁, 그 다음 번이 이글을 쓰는 오늘 밤이네요.

저는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공연을 보러 밤 마실을 나가야할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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