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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길위의 생활기 2014

뉴질랜드 길 위의 생활기 902- 나루로로 강, 수렁에서 건진 내 남편,

by 프라우지니 2018.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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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장한 남편은 항상 마눌을 지켜줘야 하고, 나또한 남편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남편 또한 나약한 인간이고 때로는 심적으로는 의지할 누군가가 필요하고, 갈 길이 불분명 할 때는 앞에서 가이드해줄 사람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우리부부에게 일어난 드라마 같은 이야기입니다.

 

이름하야 “한밤에 일어난 남편 구출작전”입니다.

절망에 빠진 남편에게 용기를 줘서 안전한 길로 인도한 장한 아내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나루로로강의 상류 쪽으로 이동하던 중에 낚시 포인트 하나를 만났습니다.

Whanawhana Road 와나와나 길에 있다는 나루로로 강 낚시 포인트 4번.

 

낚시하는 남편의 습관대로 낚시가 길어지면 이곳에서 노숙을 하고, 아니면 다시 또 이동하고.

가끔 장소가 맘에 들어서 그냥 그곳에서 늦게까지 낚시를 하다가 노숙을 할 때도 있습니다.

 

 

구글 지도에서 캡처했습니다.

 

우리가 찾아온 나루로로 강 4번 낚시 포인트가 마음에 쏙 드는 노숙 장소였습니다.

 

숲이 우거져서 밖에서도 안 보이고 강 바로 옆이니 자기 전까지 낚시를 하고,

또 아침에 일어나서 모닝낚시를 할 수도 있고 말이죠.

 

 

 

낚시 포인트로 들어가는 길도 하늘높이 솟은 미루나무들이 양옆으로 나란히 있는 것이,

남편이 좋아하는 이태리 토스카나 지역 같은 느낌도 납니다.

 

미루나루 양옆으로는 철망이 쳐져있고, 소나 양들을 방목하고 있는 곳입니다.

 

낮에는 근사한 이 키 큰 미루나무들이 깜깜할 때는..

불어대는 바람과 함께 얼마나 귀신스럽고 으스스하게 변할 수 있는지 이때는 몰랐습니다.^^;

 

 

 

우리가 노숙하려고 찜해놓은 곳에서는 이렇게 나루로로강이 제대로 보입니다.

 

강의 크기는 상당한데 물은 띄염띄염 있어서 강만 건널 수 있는 깊이라면,

저 건너 보이는 Gorge 고지(골짜기)까지도 갈수 있을 거 같습니다.

 

이곳이라면 강의 위로, 아래도 맘대로 낚시를 갈수 있으니 남편에게도 맘에 드는 장소입니다.

 

 

 

이곳이 오늘 밤 우리의 노숙 장소입니다.

 

차는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출발할 수 있게 나갈 수 있는 방향으로,

혹시 또 다른 낚시꾼이 와서 노숙을 할 수 있으니 우리 차는 한쪽으로,

이렇게 주차를 하면 남편이 할 일은 끝입니다.

 

 

 

우리가 주차한 곳으로는 바로 강으로의 진입이 가능하지만 왼쪽으로는 이렇게 강물이 들어와서 생긴 웅덩이가 있는데, 얼마나 깊은지는 확인이 불가능한 웅덩이입니다.

 

낮에 본 이 웅덩이는 예쁘기만 했습니다.

이 웅덩이 건너편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전혀 몰랐었죠.^^;

 

 

저기 보이는 하얀셔츠가 남편.

 

주차를 해놓고는 이내 강으로 사라지는 남편.

 

저렇게 사라져서는 2시간 후쯤인 저녁6시에 와서 간단한 저녁을 챙겨먹고는 이내 또 나갔습니다.

 

"어둡기 전에 돌아와!”

 

마눌이 단속하는 소리에 손까지 흔들면서 사라진 남편 이였는데..

 

 

 

해도 지고, 석양도 지고 날씨가 어둑해져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남편은 강을 걸어 다니면서 낚시를 하는지라 너무 멀리 걸어간 경우라면 다시 돌아오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죠.

 

아마 이날도 너무 멀리 걸어간 상태라 다시 돌아오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더 지체된 거 같습니다.

 

 

 

이미 깜깜해졌는데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후레쉬 같은 것도 챙겨가지 않아서 오직 달빛에만 의지해야 할 텐데..

혹시나 싶어서 가지고 있던 무전기를 켜놨습니다.

 

남편이 낚시 갈 때는 하나를 챙겨가고 나머지는 차에 있지만 건전지 때문에 항상 켜놓지는 않고, 둘이서 약속한 시간에만 잠시 켜놓는 용도인데, 남편이 안 오니 일단 켜놔야 하는 거죠.

 

깜깜해지고 저녁 9시가 넘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무전기에서 남편이 목소리가 들립니다.

 

“마눌, 지금 후레쉬 들고 미루나무 길로 나와 봐.”

“지금 어디 있는데?”

“차 근처에 오기는 왔는데, 길을 잘못 들었나봐.”

 

 

 

남편이 길을 못 찾는다니 마눌된 도리로 빨리 찾아나서야 하는 거죠.

 

평소에 꺼놓는 스마프 폰의 강력한 LED 후레쉬를 켜고는,

남편이 말하는 미루나무 길로 미친 듯이 뛰어갔습니다.

 

깜깜한 밤에 바람도 엄청 부는지라 미루나무들이 좌우로 흔들거리는 그림자는 충분히 무서웠지만, 지금 남편이 길을 잃어서 헤매고 있다고 생각하니 무서운 생각도 쑥 들어갑니다.

 

“남편 나 지금 미루나무 길에 나왔어. 어디야?”

“후레쉬 여기서 보이거든, 나 지금 웅덩이 건너편에 있어.”

“후레쉬 보고 찾아 나올 수 있어?”

“안 돼, 못 나가.”

“왜?”

“여기 다 가시덤불이라서 더 나갈 수가 없어. 너무 아파”

“어떻게 해?”

“나.. 여기서 그냥 날 새야 할 거 같아..”

 

가시덤불 안에 있어서 조금만 움직여서 가시들이 계속 살을 긁어대고 있는 모양입니다.

남편의 목소리에 절망이 담겨있습니다.

 

남편이 숲에 서서 저렇게 날밤을 새는데 마눌은 차안에서 두 다리 뻗고 편하게 못자죠.

마눌도 길에서 날밤을 새게 생겼습니다.^^;

 

남편은 포기를 했으니 이제 마눌이 수습해야 합니다.

 

미루나무 쪽으로는 가시덤불도 문제지만, 중간에 웅덩이가 있어서 어차피 못 나올 테니..

남편이 나올 수 있는 곳은 들어간 강 쪽으로 만 가능합니다.

 

바람 부는 미루나무 옆에서 남편과의 무전연락을 끝내고는 미친 듯이 다시 차 쪽으로 뛰어왔습니다.

 

남편은 조금만 움직여도 가시들이 찔러대니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이지만,

내가 강 쪽에서 불빛만 잘 비춰주면 다시 나올 수 있을 거 같기도 합니다.

 

마눌이 한밤에 허벅지까지 강에 담그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지금은 응급사태이니..

강으로 들어가서 웅덩이 옆쪽으로 스마트폰 후레쉬를 남편이 있을 거 같은 방향으로 비췄습니다.

 

“남편, 지금 이 불빛 보여?”

“응, 근데 못 나가. 아파. 나 그냥 여기서 날 샐래.”

“서서 어떻게 몇 시간을 버텨.”

“.....”

“남편, 이 불빛보고 천천히 걸어 나오도록 해봐.”

“알았어.”

 

어둠속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나나 싶더니만 남편이 드디어 얼굴을 드러냅니다.

 

30여분 마눌을 미친 듯이 뛰어다니게 만든 남편의 얼굴을 보니 반갑습니다.

남편을 찾았다는 안도감보다 잔소리가 먼저 나옵니다.

 

“그러게 내가 깜깜해지기 전에 돌아오라고 했지!”

 

 

 

저도 복분자 따다가 몇 번 긁혀서 팔뚝에 생긴 상처들이 아물어 가고 있는데..

남편은 내 팔뚝보다 훨씬 더 많은 피맺힌 상처들이 종아리, 허벅지에 가득입니다.

 

상처 난 남편 다리에 약을 발라주고는 부부가 나란히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남편도 마눌도 바람 부는 밖에 서서 밤을 새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한 날입니다.^^

이렇게 저는 수렁에서 내 남편을 건져냈습니다.

 

마눌이 시켜도 남편이 고집을 부리고 말을 안 들었음 전혀 소용이 없었겠지만, 마지막에 마눌을 믿고 의지하고 따라준 남편 덕에 남편 구출작전은 성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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