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320시간의 실습중간쯤에 제 멘토에게 중간평가를 받았습니다.
항상 방실거리고,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무슨 일이 생기면 뛰어가서 도우려고 하고, 뭐든지 더 배우려고 묻고.. 등등 좋은 점이 많다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감사하게도 말이죠!
제가 이 지역의 사투리를 몰라서 못 알아듣는 단어들도 있고, 잘못 알아들어서 본의아니게 코메디를 만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 긍정적인 평가였습니다. 제가 하루종일 따라다니는 다른 직원들도 저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들을 글로 남긴지라 제 나름대로 만족스럽고 말이죠!^^
아시죠? 이 평가에서 부정적인 결과가 나오면 다시 처음부터 실습(320시간)을 하던가, 아니면 아예 직업교육을 포기해야 합니다. 평가서에 “이 사람은 이 직업으로 가기에는 성격도 그렇고 모든 것이 적당치 않다!”라고 내려지면 가고 싶어도 더 이상 갈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새내기일때 얼른 진단을 해 주는 거죠!
23개의 문항중에 11개는 “그렇다”의 결과를 받았지만 12개는 “대충 그렇다”의 결과를 받았습니다. “대충 그렇다”도 사실 “그렇다”에 가깝기는 하지만, 그래도 제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한지라 조금 아타까웠습니다.^^;
중간 평가를 받던 날 아침 남편에게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나, 오늘 중간 평가 받는 날이야.
근디..나는 최선을 다했거든, 못 알아듣는 말도 있지만, 눈치껏 알아서 처리했고, 하루종일 미친듯이 이리뛰고, 저리뛰고 하면서 땡땡이 안 치고 열심히 일하는 거 보여주려고 노력했고!
물론 사투리 몰라서 내가 잘못 알아듣는 경우도 있었고, 상대방이 몇 번씩 설명해야 했던 때도 있었고, 내 발음이 쪼매 이상해서 상대방이 몇 번씩이나 나에게 물어볼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내 딴에는 최선을 다한거 당신도 알지? 독일어 때문에 혹시라도 부정적인 평가가 내려진다고 해도 할 수 없어! 나로서는 할 수 있는 걸 다 했으니..”
어찌 듣고보니 최후의 변론 같은데..이것이 진실이고 그때 내 마음이였습니다.
멘토는 “중간평가에서 다 ”그렇다“를 줄 수 는 없다! 너도 320시간이 끝날 때 까지 더 배워야 하고, 더 발전해야하니..“라고 했지만, 나름 최선을 다한지라 쪼매 섭섭했습니다.^^;
한 문항에서 제 멘토가 제가 아직 모르는 걸 지적 해 줬습니다.
“너는 아직 개개인의 경계를 잘 모르고 있는 거 같아. 손이나 어깨는 괜찮지만, 얼굴 같은 경우는 만짐을 당하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런 것은 조심해야 해!”
이쯤되는 “아니, 왜 어르신들 얼굴은 주무르남?”하시는 분들이 계시려나요?
제가 손,발은 물론이거니와 온몸을 닦아드리는 어르신들이 저에게는 제가 돌보는 아이 같은 느낌이랍니다. 식사하고 난후 입가에 묻은 음식물도 닦아드리면서 예쁘다고 얼굴도 쓰다듬어 드리죠!
씻겨드리는 동안에 투정 안부리고 조용히 계시면 “잘했다”고 칭찬도 해 드리고, 당신의 몸이 움직일 수 있는 수준까지는 스스로 하시게 시간을 드리고, 혼자서 하셨을 경우에도 “장하다” 해 드리죠!^^
멘토는 제가 이해 못 할 이야기를 했습니다.
“네가 다가갈 때 사람들이 어깨를 뒤로 빼면 확실하게 너를 거절한다는 의미이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확실하게 거절하지 않고, 단지 눈으로 거절해!”
제가 초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상대방의 눈을 어떻게 읽나요?^^;
“상대방이 눈을 자세히 보면 거절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으니, 앞으로 어르신들에게 다가갈 때 상대방을 봐가면서 그들이 정한 경계를 찾아봐!”
참 어렵습니다. 눈빛으로 거절을 한다니..
처음에는 “눈으로 이야기 한다”는 그 말이 너무 어려웠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무슨 말 인줄 알 듯도 했습니다.
나도 그들의 메시지가 담긴 눈빛을 읽은 적이 있었거든요.
같이 일하는 직원 중에 성의 없이 대충 일하는 직원이 있습니다. 어르신들을 그냥 씻기는 것이 아니라, 온몸에 새로 생긴 증상은 없는지, 덧난 곳은 없는지..등등을 살피는 것이 매일 어르신들을 씻어드리면서 봐야하는 중요한 사항들입니다. 이런 것들은 기록으로 남겨서 조금 더 커질 수 있는 상처들을 방지하거든요.
매일 점심시간 전에 하는 “근무인계”에서는 자신들이 맡았던(씻겨드린) 어르신의 (건강)상태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회의시간입니다. 저는 실습생이지만, 저도 제가 맡았던 어르신의 증상에 대해서 이곳에서 말을 해야 하는 직원입니다.
“오늘 Fr.xxx xxx부인 왼쪽 아래 종아리에 피멍을 발견했는데, 아프다고 하시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몰라서 연고를 발라드렸어요. 이건 기록해서 남겨야 할까요?”
저는 제가 본 증상들을 설명하고, 이것이 기록해야 할 만큼 중요한지를 물어야 하는 실습생입니다만, 성의 없이 일하는 직원은 출근해서 하루 10시간 후딱 일하고 가는 것이 목적인지라 모든 일도 대충대충! 자기를 귀찮게 자꾸 화장실에 가자는 어르신에게는 성질도 내고, 근무인계에서도 자기가 맡았던 어르신들은 다 OK라고 합니다. 제대로 온몸 관찰도 하지 않고 말이죠.
이 직원이 “전부 다 OK" 할 때 마다 나머지 직원들이 눈빛 교환 하는 걸 본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니가 개판으로 일하는 거 다 알거든!”
사실 저도 그 눈빛에 동조의 눈빛을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배우고 있는 내 눈에도 “너는 내 선배 될 자격이 없는 인간이야!”로 낙인찍힌 직원이니 말이죠!
그리고 또 한 상황!
제 학교에서 선생님이 제가 실습하는 요양원에 “현장강의”를 하시러 오십니다.
이때 저는 요양원 거주민 중에 한분을 선택해서 선생님 앞에서 씻겨드리면서 선생님의 감독을 받게 되고, 선생님의 조언을 듣게 되는데.. 제 “현장강의”에 할 분으로 침대에 누워서 지내시는 한 60대 초반의 거주민을 선택했습니다.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은 오른손으로 스스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정도!
이 분 같은 경우는 침대에서 하체를 씻겨드린 후에 휠체어에 옮겨서 상체를 씻겨드려야 하는데, 선생님이 오신다는 날짜가 다가오는지라 제 선배님들이 저에게 미리 연습을 하게 시켰습니다.
저희 학교는 아니지만, 다른 교육기관에서는 이 “현장강의”가 일종의 시험이거든요.
그러니 제 선배들은 저에게 시험대비 교육을 시키시려고 노력을 하셨던 거죠!^^
원래 아침 식사를 하시고, 이동용 변기 위에 오래 앉아계시는 분인데, 그날따라 다른 날보다 훨씬 더 오래 앉아계셨습니다. 저는 그분이 말씀하시는 “더 기다려야 해!”를 그대로 믿었습니다.
“다른 날보다 조금 더 걸리네..” 뭐 이런 생각을 하고 말이죠!
그랬는데, 선배가 그 분에게 마구 짜증을 냈습니다. 원래 이런 분이 아니신데 말이죠! 저는 영문을 몰라서 어리둥절해 있으니 쉽게 한마디를 하셨습니다.
“지금 저 아줌마 니 ”현장강의“ 연습 상대하기 싫다고 이야기 하는 거야!”
“아니, 싫으면 그냥 싫다고 하면 되지. 그리고 저분 저번에는 자기 해도 된다고 했는데..”
“그새 마음이 변했나 부지. 원래 변덕이 심한 아낙이니..”
저는 정말 몰랐습니다. “더 기다려”가 “싫어”를 의미 하는 것인지..
제 멘토가 말한 “너는 아직 경계를 모른다.”를 받아들이게 된 계기도 됐습니다.
상대방의 눈을 보면서 거절의 의미를 읽어야 하고, “싫어”가 아닌 다른 단어로 나오는 거절도 알아채야 하는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일본인들보다 더 가까워지기 힘들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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