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외출을 팍 줄여버린 요즘
우리부부가 마음편히 하는 외출은 산책.
주말이나 시간이 나면
차를 타고 산이나 들로 나가지만,
남편이 근무하는 평일에는
동네 들판 산책이 유일하죠.
산책 하는 중에는 조용히 앞만 보고
걷기만 하는 날도 있지만,
(워낙 수다스러운 마눌이라),
마눌이 입을 다물면 남편이 불안해하죠.
그래서 마눌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매일 수다를 떨어야 합니다.
어떤 날은 요양원에 돌아가신 분들
이야기일 때도 있고,
어떤 날은 동료 직원들의 이야기일때도 있고,
아낙의 수다는 엄청 다양하죠.
상대방의 흉내까지 내가면서 이야기를 하니
남편은 매일 산책하면서 마눌의 원맨쇼를 보죠.
어제는 최근에 읽고있는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독일어 공부에 완전히 손을 놓고 있는 것이 한심해서
“하루에 책 10분이라도 읽자!”하는 마음에
시작한 책 읽기.
두께가 얇은 책이라 집어 들었는데,
책 내용은 절대 얇지않죠.
Wenn Liebe haelt, was sie verspricht.
독일어 해석은 “사랑이 약속한 것을 지킬 때,“
결혼을 할 때 부부는 서약을 하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아플 때나,
행복할 때나 서로를 바라보고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바로 그 서약!
이 책은 그 결혼식의 서약을 끝까지
지킨 한 남자의 이야기죠.
혹시나 싶어서 이 책의 저자를 검색 해보니
한국에도 번역 출판이 된 책이네요.
한국에서 출판된 이 책의 제목은
“서약을 지킨 사랑“
이 책을 매일 저녁 조금씩 읽으면서
마음이 많이 무거웠고,
가끔은 우리 부부의 앞날까지 생각했었습니다.
엽기 발랄 하기만 한 마눌이
책을 읽으면서 우울 했다니
남편도 처음 듣는 이야기라
마눌이 이야기 하는 내내
마눌을 얼굴을 자주 쳐다보더군요.
내가 지금 읽고있는 책의 저자와 그의 부인입니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아내를 25년간
간병하면서 쓴 신학자의 글이죠.
모르는 사람은 “정말 감동적이다!”
“멋있다” “지고 지순한 사랑이다”라는 등의
온갖 미사여구로 이들, 아니 이 신학자의 사랑을,
헌신을 이야기 하겠지만!
요양원에 일하면서 치매의 여러 단계와
그들의 행동이나 성향을 잘 알고 있는 나는
글속에서 그의 절망을 순간순간 봤습니다.
한순간 눈을 팔면 금방 사라지는 아내를 위해서
집에 간병인도 둬 봤지만,
간병인도 견디지 못하고 그만 두고!
나중에는 출장 길에
아내를 데리고 다녔던 신학자!
일본의 한 호텔방에 아내를 잠시 두고,
일 보고 돌아오니 사라져 버린 아내.
대도시의 한 호텔에서 사라져 버린 아내를
찾기 위해서 여기저기 알아보고,
경찰서에 연락하는 등의 한바탕의 소란 후에야
다시 호텔에 나타난 그의 아내.
택시 운전기사가 다시 호텔에 데려다 주는 것으로
그날의 에피소드는 끝!
여기서 잠깐!
제가 이글을 독어로 읽고 있어서 모르는 단어 건너뛰고,
그냥 내 맘대로 해석해가면서 읽고 있어서
책 내용과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ㅠㅠ
나도 여러 번 겪어본 사라진 사람 찾아 다니기.
미친듯이 건물을 뒤지고 다니고,
경찰서에 연락을 하고,
어르신이 가신 것으로 추정되는 길을
자전거를 타고 열심히 달린 적도 있었죠.
결국 요양원을 탈출하신 어르신을
자전거 타고 열심히 달려가서
길에서 만나기는 했는데,
끝까지 안 가시겠다고 버티시는
어르신과 거리에서 실랑이도 해봤죠.
집 나간 치매 어른이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건
정말 행운이 따라야 가능한 일이죠.
거리에는 위험한것들이 엄청 많습니다.
3~4살짜리 아이가 혼자 거리를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면 딱 맞죠.
가장 위험한 것은 차 사고
그외 어디에서 넘어졌는데
그곳이 외진 곳이면
숨이 끊어질 때까지
발견이 안되는 경우도 있고,
겨울에는 거리에서 얼어 죽을 수도 있죠.
호텔방에서 사라진 아내를 찾는
신학자의 절망스러운 그 순간!
그가 아내를 돌봤던 25년간의 세월이
남들의 눈에는 얼마나 아름답게 보였는지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그의 힘든 시간들이 보였죠.
위에서 열거한 이런 일들!
요양원의 치매 어르신들에게 웃어가며,
말을 시켜가며,
뺨을 쓰다듬어 드리고,
입가에 흘러내린 국물을 닦아주면서
음식을 먹여드리는 것!
요양원에서 제가 하는 일중에 한 부분이죠.
치매 어르신이 아무리 황당한
소리를 하셔도 눈을 맞춰주고,
그러냐고 진심으로 들어주는 것이
치매 간병의 기본이죠.
“나는 네가 하는 이야기를 온몸으로 듣고 있다.”
“나는 네가 하는 말을 믿는다.”
치매어르신이 황당한 이야기를 하시고,
갑자기 침을 뱉거나
주먹을 휘두르면서 공격적으로 변해도
절대 거기에 반응을 하면 안되죠.
제 팔에는 근무중에 생긴 상처가 항상 있습니다.
손톱으로 길지 않아도
할퀴는 건 생각보다 쉬워서
어르신들이 할퀴신 흔적들이
제 팔 여기저기에는 항상 있습니다.
어떤 건 아물어 가고,
어떤 것 새로 생겨서 아직 붉은 색이고!
내게 상처를 줬다고 어르신들에게
화를 내지는 않습니다.
당신들도 나름대로 자신을 방어하려고
하다가 나에게 준 상처이니 말이죠.
그분들은 침대에서 안 나오려고 버티시고,
직원인 나는 그분들을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겨 드리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실랑이는 항상 있죠.
저는 직업으로 이 일을 하고 있고,
또 근무하는 곳이 요양원이고,
꽤 많은 분의 치매 어르신이 계시다 보니
이런 일들이 일상이지만!
집에서 이런 남편/아내/엄마/아빠/시어머니/시아버지를 모시고
사시는 분들에게는
자신이 살아내야 할 일상을 살면서
추가적으로 해야하는 일이라
힘에 부 칠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현직 요양보호사인
내가 생각한 가장 좋은 방법도 생각했었죠.
2021/01/01 -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 직업이야기] -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요양원,
25년간 아내를 돌본 신학자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늙어서 혹시 치매에 걸리면,
남편이 혹시 치매에 걸리면?
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오늘을 행복하게” 살고 있기는 하지만,
50줄에 들어선 부부에게
노년은 그리 멀리 있지않죠.
20년만 더 살면 우리는 70대가 되어있을 테니..
멀리 있을 거 같았던 우리의 노년이
바로 코앞에 있다는 걸
이 책을 보면서 알게 됐죠.
우리에게는 아이도 없으니,
남편과 내가 끝까지 사이 좋게
잘 살다가 가면 되는데..
아내를 헌신적으로 돌보는 신학자의
(시시때때로 절망에 빠지는 그)마음을 알기에
그걸 남편에게 책 이야기 하다가
결국 나는 울었습니다.
산책하면서 수다를 떨던 아낙이 울어버리니
남편도 조금은 당황한 표정.
“내가 아프면 당신이 날 돌봐줄거잖아. 그치?”
“응”
“당신이 아프면 내가 돌봐야 하는데,
나는 외국인이라 모든 것이 다 쉽지 않잖아. 엉엉엉~”
지금은 남편이 다 알아서 하고 있는
집으로 오는 온갖 (독일어)서류들을 비롯한
모든 것들을 내가 다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졌죠.
지금의 저는 남편이 품어주니
아무 걱정없이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막내 딸 코스프레 중인데..
이렇게 살다가 갑자기 엄마가 되어
아들이 되어버린 아빠 같던 남편을 돌봐야 한다니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인데도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죠.
내 주변에 형제가 친척이 있었다면
이렇지는 않았을 텐데..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죠.
남편만 보고 사는 타국의 삶에서
남편까지 책임져야 하는 타국의 삶으로 변하는
그 순간이 멀었다고 느끼고
별 걱정 안하고 살던 철없는 아내였는데..
책 한권 때문에 우리부부의 미래,
노년이 별로 멀지 않다는 걸 알게 됐죠.
남편은 이날 아주 슬픈
마눌의 원맨쇼를 봤습니다.
평소에 밝고, 명랑한 마눌이
말하다가 울어버리니
조금 당황한 듯 했지만,
그래도 마눌이 자신을 지켜줄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으니
조금은 감동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마눌도 “마눌이 아프면 끝까지 지켜주겠다”는
남편의 그 말에 감동했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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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업어온 영상은 우리부부의 겨울등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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