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요양원에 10명 내외의 실습생이 있습니다.
2년 혹은 3년간의 직업교육을 받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실습요양원이 있어야 합니다.
요양원에서는 저렴한 인력을 확보할 수 있으니, 실습생이 오겠다고 하면 대환영이죠.
실습생중 절반은 3년 과정의 간호사 직업교육을 받고 있고, 나머지는 2년 과정의 요양보호사 직업교육을 받고 있는데...
실습생들이 들어온 시기도 다양해서 직업교육이 끝나가는 사람도 있고, 중간쯤인 사람도 있고, 이제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실습생 시절에는 무조건 열심히 해야 합니다.
지정된 멘토외에도 함께 근무하면서 직원들이 실습생의 일하는 태도 등등을 관찰하고, 일하는 태도가 영 아니다 싶으면 “직업교육”중에 실습생을 잘라버리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직업교육을 이어갈 수 없는 거죠.
내가 발음이 튀는 외국인 직원이라 동료 직원들이 차별을 받는다고 날 은근히 대놓고 무시하는 듯 한 태도를 취하는 실습생들은 쳐다봐도 인사도 안하고 그냥 쓱 지나칩니다.
(나는 그들의 멘토도 아니니 그들이 나에게 인사를 안한다고 뭐라고 할 처지는 아니지만..)
현지인들도 어려워서 중도 포기하는 그 직업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마쳤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외국인인) 내가 그들(실습생)보다 더 나은 위치에 있음을 인정하기 싫은 걸까요?
저도 2년 동안 실습생 생활을 하고 정 직원으로 넘어온지라..
실습생들에게 잘해주려고 노력하고 나름의 노하우도 알려줍니다.
사실 노하우까지는 살짝 귀띔을 해준 거죠.
“무조건 몸 사리지 말고 열심히 일해.
우리병동에서 직업교육 중에 탈락시킨 실습생이 이미 둘 있으니..”
이 정도의 귀띔이면 굉장히 큰 정보입니다. 실습생 주제에 어설프게 몸 아끼면서 일하다가는 직업교육 중간에 고생만 하다가 그만두게 되는 사태가 벌어지니 말이죠.
몇 되는 실습생 중에 하나인 J.
내 귀띔 때문인지 직원들 사이에 일을 참 잘하는 실습생으로 칭찬을 듣습니다.
실습생인데도 자기 몸 아끼려고 이리저리 일을 피해가는 정직원보다 훨씬 일을 잘합니다.
요새는 예전보다 훨씬 적은 수의 직원이 근무를 하는데, 실습생이라도 하나 같이 일하게 되면 직원들은 조금 더 수월해집니다. 해야 하는 일은 나눠서 할 수 있으니 말이죠.
물론 직원들 중에는 자기들은 수다만 떨어대고, 호출 벨이 울리면 실습생을 뺑뺑이 돌리는 왕재수들도 있지만, 이런 것들도 실습생이 다 겪어야 하는 일중에 하나죠.
J와 근무를 하는 날이었는데..
근무 중 잠시 짬이 나서 그녀의 “학교생활”을 물어봤습니다.
제가 나온 카리타스 학교를 다니고 있고, 내가 배웠던 과목의 선생님도 같다는 그녀. 시험이 낼 모래인데 아이가 아파서 돌봐야했고, 요양원에 실습도 와야해서 공부를 못했다고 걱정을 했습니다.
일 열심히 하는 J가 내 맘에 들었던지라 그녀에게 약간의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녀가 제일 어렵다고 하는 과목의 (내가 봤던 답이 있는)시험지를 보내줬죠.
내가 학교를 다닐 때 우리 반에 이런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보다 한 두 학기 더 빨리 시작한 (선배)반을 찾아다니면서 그들이 이미 본 시험지를 얻어옵니다.
게으른 선생님들은 매번 다른 시험문제를 내는 것이 아니라 한번 낸 문제들을 반복해서 내니 선배 반에서 얻어온 시험지에 나온 답만 알고 있음 시험을 수월하게 볼 수 있거든요.
그렇게 컨닝하면 따로 공부할 필요 없이 점수가 잘 나오겠지만, 나중에 졸업을 앞두고는 더 힘든 거죠.
졸업시험은 제비뽑기로 내가 풀 문제를 내가 뽑는데, 머릿속에 든것이 없이는 불가능한 시험이죠.
선배 반들을 돌면서 시험지 구걸을 다니는 사람들이 한심하게 느껴진 적도 있었지만,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거라 생각했습니다.
난 선배의 시험지 도움도 없이 매번 죽도록 외워서 시험을 봤습니다.
그렇게 내 노력과 시간이 들어있는 시험지는 직업교육이 끝난 지금도 소중하게 가지고 있죠.
그녀가 필요한 과목의 시험지를 보내주니 그녀는 시험지에 없는 다른 기출문제를 요구했습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을 찾느라 일부러 컴퓨터 파일을 다 뒤져야 했지만...
애초에 내가 먼저 주겠다고 한 도움이여서 감수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녀가 원하는 정보를 나는 일부러 찾아서 보내줬는데,
그녀는 고맙다는 말도 없이 정보만 챙겨갔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죠. 요양원에서 봐도 나와 근무가 같은 층에 걸리지 않는 한 일부러 찾아와서 인사하지는 않습니다.
오가다 얼굴이 마주치면 “안녕~”하는 정도입니다.
그렇게 요양원에서 봐도 별 말을 안 하고 지냈는데..
어느 날 그녀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너 혹시 트롬보제(혈전증), 콘트락투어(경직), 체온“에 관한 정보(기출문제)있니? 우리 시험이 있어서.”
나에게 뭘 맡겨놓은 사람처럼 요구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어느 날 갑자기 문자를 보내서 “보내줘!”하면 보내줄 만큼 친하지도 않는데..
나는 아이가 아파서 공부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그녀를 도와줄 생각으로 한번 준 도움인데, 그녀는 지금 나에게 달라고 손을 벌리네요.
내가 전에 보내준 기출문제에 대해서도 고맙다는 인사도 없더니만,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기출문제를 달라니..
그녀가 얄미운 것도 있었지만, 공부는 직접 해야 머릿속에 남는 것도 있는 거죠.
그래서 없다고 답변을 보냈죠.
“미안해. 컴퓨터 파일들을 다 지워버렸어.”
J는 아쉽다는 답변을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동안 카리타스 학교에서 배운 것들은 다시 보고, 또 봐야하는 것들입니다. 까먹는 것들은 다시 찾아보고 공부도 꾸준히 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모든 기출문제나 책들은 버릴 수가 없는 자료들입니다.
아마 그녀도 알지 싶습니다.
내가 자료가 없어서 안 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공부는 누구에게 의지해서 하는 것이 아니죠.
어떤 문제가 나올지 모르고 다 공부하면서 머릿속에 들어가는 것이 있는 것이고!
타인의 친절(도움)을 감사하게 받을 줄 모르는 사람에게 두 번째 기회는 오지 않습니다.
그랬다면 내 마음을 움직였을수도 있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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