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 3주간의 휴가 중입니다.
제 휴가가 시작된 첫날, 제가 제일 처음 한 일이 결혼반지를 다시 끼는 일이였습니다.
무슨 결혼반지를 휴가 가는 날 끼냐구요?
결혼하고 한 번도 뺀 적이 없는 결혼반지를 요양원에 갈 때는 빼야했거든요. ^^;
결혼반지를 끼고 갔다가 요양원에서 빼게 되면 혹시나 잃어버릴 수도 있는지라,
요양원에 매일 일하러 갈 때는 반지를 빼고 살았습니다.
보기에는 싸구려 은반지같이 보이지만..
백금에 코딱지만 하기는 하지만 다이아몬드도 달려있는 결혼반지입니다.^^
레스토랑의 주방에서 설거지하는 일을 할 때는 구정물에 손을 담구는 일이라 반지를 빼고 다니려고 했더니만, 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반지는 절대로 빼지 말라는 엄명(?)이 떨어진지라 그 날 이후 항상 반지를 끼고 다녔었습니다.
제 결혼반지에 남편이 보이는 반응은 “내 아내”라는 증명인거 같습니다.
“이 여자는 결혼반지를 낀 임자 있는 사람이오니 간격을 유지하시오!”
뭐 이런 의미도 잔뜩 가지고 있구요.
하긴, 제가 40대 중반의 중년아낙이기는 한데, 서양인이 보는 나이는 30대 초반인지라..
(뭐시여 15년이나 젊게 본다고?)
결혼반지까지 안 끼고 다닌다면 따라다니는 남자가 있을 거 같기도 합니다.
(뭔 뻥을 이리...^^;)
요양원의 실습생은 모든 이의 감시(?)를 받는 신분으로, 뭐하나 잘못하면 그 다음날 요양원 전체에 소문이 쫙~ 나는 단점도 있고, 공식적으로 하지 말라는 일은 절대 하면 안 됩니다.
가령, 늘어지는 귀걸이를 한다던가, 손꼽을 길게 기른다던가, 손목시계도 안 되고, 손톱에 매니큐어를 바르는 일 따위는 절대 하면 안 됩니다. 기존의 직원들은 다 하는 일이지만 말이지요.
액세서리 반지도 아니고 결혼반지는 껴도 되는 줄 알고 며칠 근무를 했었는데..
어느 날 직원 중 한명이 지나가는 투로 한마디 했습니다.
“너 반지 꼈네? 우리는 반지 끼면 안 되는데...”
“이거 결혼반지인데 이것도 안 돼?”
“내가 알기로는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어.”
이렇게 대화를 하고 있으니, 같이 근무하는 또 다른 직원이 묻습니다.
“정말로? 나는 결혼반지도 안 된다는 건 몰랐어.”
반지를 끼면 안 된다는 걸 기존의 직원들도 몰랐다니,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아무튼 저는 남들 눈에 확~ 들어나는 실습생이니 눈에 띄는 행동은 절대 하면 안 되고,
따라서 결혼반지도 이 소리를 들은 순간부터 얼른 뺐습니다.^^
요양원에서 반지를 끼면 안 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요양원에서 하는 일이라는 것이 어르신들의 시중을 들거나, 어르신들을 씻겨드리고, 기저귀(라는 단어를 쓰면 안 되지만)도 갈아드리고, 볼일(?) 보신 어르신들 뒷동네도 닦아드리고 등등등.
인간의 분비물 중에의 하나인 대변에는 엄청나게 많은 균들이 있는지라, 작업에 들어갈 때는
항상 고무장갑(우리가 생각하는 빨간 고무장갑이 아니고, 의료용 장갑)을 끼고, 작업이 끝난 후에는 장갑을 벗고, 혹시나 손에 묻어있을지도 모를 균들은 알코올로 잡죠.
가끔씩 장갑을 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을 때, 기존의 직원들은 맨손으로 일을 합니다.
저는 아직 실습생이라 장갑 없이 일하는 것은 무서워서, 조금 더디더라도 장갑은 꼭 끼는데, 기존의 직원들은 바쁠 때는 장갑도 없이 그냥 어르신의 뒷동네를 닦습니다.
(뭐시여? 이 아낙은 결혼반지 이야기하다가 왜 뒷동네 이야기를 하누?)
요양원도 병원처럼 온갖 잡균이 버글거리는 곳인지라, 항상 조심을 해야 하는데, 생각 없이 낀 결혼반지 사이에 요양원의 잡균이 껴서 집으로 왔다면..
집에 있는 가족들에게까지 병을 옮길 수 있는 이상한 상황이 되는 거죠!
그런 이유로 반지는 끼면 안 되는 거죠!
이런 타당한 이유 때문인지라 마눌이 반지를 안 껴도 아무 말도 안했던 남편 이였는데..
마눌이 다시 반지를 끼는 것을 곁눈으로 본 남편이 얼굴을 돌리면서 씩 웃는 걸 봤습니다.
역시 마눌은 결혼반지를 끼고 있어야 안심이 되는 것인지, 아님 “내 여자”라는 증표를 다시 찾아서 좋은 것인지..말을 안 하니 알 수는 없지만, 마눌은 반지를 끼면서 무소속에서 소송 정당을 찾은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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