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요양원, 내가 근무하는 병동에서만 지난해 17명의 어르신들이 돌아가셨습니다.

 

연세가 많고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들만 계신 요양원인지라,

저는 죽음을  꽤 자주 목격합니다.

 

평균연령이 80대 중반이시고, 대부분은 90대이시지만..

사람의 명줄이라는 것이 나이와는 상관이 없이 참 오묘합니다.

 

아직 60대 중반인 젊은 청년에 속하는 거주민이 하루아침에 돌아가시기도 하지만,

 

낼 모래 100살을 바라보시는 분이 며칠 음식도 제대로 못 드시고, 죽음이 앞둔 사람에게

나타나는 신체적 증상도 나타나면 요양원 직원들도 마지막을 준비합니다.

 

가족들에게 당신의 어머님이 곧 돌아가실 거 같다고 연락을 해서 그분의 자식들이

34일 밤낮으로 돌아가면서 자리를 지키며 이제나 저제나 가실 시간을 기다렸는데..

금방 돌아가실 것 같았던 분이 다시 멀쩡하게 정상이 되시기도 하십니다.

 

자식들에게는 이제 백 살을 바라보는데 언제 가시려고 저러시나?

은 순간이었지 싶습니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종류의 자식들이 존재합니다.

 

우리 엄마가 조금 더 오래 내 곁에서 사셨으면 좋겠다하는 자식도 있겠지만,

이제 살만큼 사셨는데 왜 저리 빨리 안가시고 시간을 끄시나?하는 자식도 있습니다.

 

특히나 요양원에 들어와 계신 어르신이 재산이 있는 경우는 후자인 자식들이 더 많습니다.

요양원까지 와서는 엄마 통장의 금액을 확인하고는 뺏어가기도 하니 말이죠.

 

우리 요양원에 제법 차려입고 실내를 다니시는 할매가 한 분 계십니다.

진주목걸이에 이런저런 보석들도 여러 개 차고 다니시죠.

 

평생 돈 걱정 없이 사셨고 재산도 꽤 갖고 계시다는 할매가, 요양원에 들어오시면서 아들에게 재산관리를 맡긴 모양인데, 아들은 요양원에 계신 엄마가 필요하다는 물건을 항상  싸구려 물건으로만 사다 준다고 직원들끼리 이야기 하는걸 들었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시면 그 많은 재산을 혼자서 다 차지할텐데도..

살날이 얼마 남지 않는 엄마가 필요하다는 물건들 젤 싸구려로 사다준다고 욕하는 거죠.

 

오늘은 꼴불견 자식에 대한 포스팅이 아닌디..

또 삼천포로 가네요.

 

, 다시 방향을 돌려서 ...^^

 

 

 

카리타스 요양보호사 학교를 다닐 때 이런저런 곳으로 견학을 많이 다녔습니다.

공동묘지도 그런 곳 중에 하나였죠.

 

우리가 찾아간 시에서 운영하는 공동묘지의 이름은 기억(추모)공원

 

요양보호사로 일하면서 자주 접하게 되는 죽음도 빼놓을 수 없는지라,

죽음 후에 화장이나 유해가 안착이 되는 공동묘지도 알아두면 좋고 말이죠.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는 담당 선생님의 시아버지의 유골이 묻혀있다는 시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이 공동묘지는 화장해서 유해만 안치하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고인의 유해만 안치하는 공동묘지이지만, 안치하는 방법은 아주 다양합니다.

각자의 경제사정에 따라서 선택할 수 있죠.

 

여러 디자인으로 원하는 재료를 써서 비석을 세울 수도 있고,

나무를 중심으로 유해들을 안치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공동묘지라도 해도 우리나라의 공동묘지처럼 봉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 없이 걷는다면 공원이라고 착각이 가능한 곳입니다.

 

실제로 이곳의 이름도 기억 공원이니 공원은 공원이네요.^^

 

우리는 이곳에서 꽤 다양한 시설들을 견학했습니다.

 

 

 

실제로 담당선생님의 시아버지가 묻혀있는 곳은 나무 매장지

나무를 중심으로 여러 개의 돌이 있고, 그 안에 유해가 담겨있습니다.

 

사진에 말뚝같이 보이는 대리석에는 각각 4개의 유해까지 안치가 가능한지라,

선생님의 시아버지의 유해가 묻혀있는 곳에 나중에 시어머니의 유해를 묻고,

나중에 선생님 내외가 돌아가시면 이곳에 함께 묻히게 될 거라고 하셨습니다.

 

대리석 말뚝 4면에는 이곳에 묻힌 사람의 이름 및 생일 등을 적을 수 있는지라,

4인의 유해 안치가 가능한 이곳의 가격은 3,000유로입니다.

 

3,000유로(4백만 원 정도)에 이 자리를 영원히 차지하는 것이 아니고..

자리 값에 대리석 말뚝의 가격입니다.

 

여기에 해마다 내야하는 이용료는 별도죠.

 

 

 

우리가 방문한 화장(터를 겸비한) 추모공원.

이곳에 들어온 시체를 화장하는 가격은 500유로라고 합니다.

 

이 가격에 화장을 해서 유해를 우편으로 보내주는 가격까지 포함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어떤 방식으로 화장터에 오던 간에,

이곳에서는 이곳 차를 이용해서 사망자를 모셔온 운송료 500유로를 내야한다고 합니다.

 

개인이 돌아가신 분을 직접 모시고 이곳에 와서 화장을 해도 계산서에는..

운송료 500유로에 화장료 500유로 총 1,000유로는 내야한다는 이야기죠.

 

참 웃기는 계산방식이지만..

여기서는 그렇다니 그런가..부다 하면서 지나갑니다.

 

 

 

이날 추모공원 견학이 끝나고 추모공원에서 견학온 학생을 위해 틀어준

장례식에 관련된 다큐에서는 독일의 일반적인 장례비용도 알 수 있었습니다.

 

독일의 일반적인 화장비용은 다 포함해서 1500유로선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방문한 추모공원에도 이런저런 비용을 다하면 이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 보이는 기계는 화장이 끝난 유해를 빻는 곳.

 

사람의 몸이 타고나면 뼈만 남고, 쇠붙이라고 해봐야 금니정도라고 생각했었는데..

실제로 기계 옆에 쇠붙이가 모여 있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사람에 몸에서 나왔다는 크고 작은 크기의 쇠붙이.

 

골다공증으로 뼈가 쉽게 부러지는 나이 많은 어르신 같은 경우는..

부러진 어깨나 고관절을 잇는 수술을 하신지라 쇠붙이 한 두 개씩은 가지고 계십니다.

 

화장하고 나오는 몸의 쇠붙이들은 망자의 가족들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으면..

 

모아 팔아서 도움이 필요한 기관에 기부한다는 것이 추모공원측이 말입니다.

 

 

 

현대는 대부분 화장을 해서 유해를 추모공원에 모시는 추세이지만,

아직도 망자의 시체를 관에 넣어서 묘지에 묻는 장례식도 있는 모양입니다.

 

이렇게 장례식을 하는 경우 비용은 30,000유로(4천만원선)

 

화장해서 모시는 추모공원에 비해 겁나게 비싸지만 이렇게 하는 장례식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각자의 경제사정에 따라서 선택이 가능한 모양입니다.

 

 

 

다큐에서 본 묘지사용료는 같은 독일이라고 해도 지역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연방마다 각기 다른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지라, 같은 나라여도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같은 묘지 사용료인데..

 

본은 2,200유로 상당, 퀼른은 1500유로 상당, 함부르크는 1200유로 상당인데 반해,

드레스덴이나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은 500유로상당으로 저렴한 편입니다.

 

(보통 10년 단위로 낸다고 들었던것 같은데..

위의 금액이 10년치 인지, 5년치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큐에서 알려준 독일의 대략적인 장례식 비용은..

- 관/매장은 2,000유로,

- 공동묘지 사용료는 1,800유로.

- 묘비석은 1,500유로.

- 그 외 장례식 비용은 200유로,

- 꽃장식 200유로,

- 묘지 정원비 200유로와

- 증명비용 100유로.

위 모든 비용을 합치면 6,000유로.

 

이것이 가장 저렴하게 측정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견학 갔던 추모공원에 시아버지를 모신 선생님이 우리에게 말씀 해 주신 총 장례식 비용은 나무 매장지 가격인 3,000유로를 포함해서 7,200유로가 들었다고 합니다.

한화로 환산하면 대략 천만 원입니다.

 

우리가 방문한 추모공원에는 선생님이 시아버지를 모신 곳처럼 비싼 곳도 있지만,

벽면에 이름이 쓰인 유골 아파트 같은 곳은 300유로 정도의 가격입니다.

 

 

죽은 사람들이 모이는 추모공원에서 저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주택을 연상했습니다.

 

돈이 있으면 전망이 좋은 단독주택에서 살고, 서민은 이웃들과 어울려 살 수 있는 연립주택.

단돈주택에 살 여유가 없으면 판자촌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듯이..

 

죽어서 빈손으로 가는 순간에도 각자의 경제사정에 맞게 추모공원의 한자리를 차지합니다.

 

돈이 있는 사람은 추모공원의 중간 젤 좋은 자리에 땅이 넓고 멋진 곳을,

돈이 없는 사람은 추모공원의 변두리에 닭장 같은 공간을.

 

연세 많으신 시부모님이 심하게 알뜰하셔서 돈 아껴서 뭘 하시려 그러나?했었는데..

이곳에서 그 답을 찾았던 거 같습니다.

 

사람은 죽어서도 돈이 필요합니다.

남는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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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18. 9. 21. 00:00
  • Favicon of https://oxchat.tistory.com BlogIcon 옥포동 몽실언니 2018.09.21 18:03 신고 ADDR EDIT/DEL REPLY

    흥미로운 내용이네요! 저도 한국에서 일 때문에 전국 주요 도시의 화장장을 모두 다녀본 적이 있는데 화장장의 시설이 지역마다 차이가 커서 놀란 적이 있었죠. 남해와 부산, 수원의 화장장이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저도 그때 쇠붙이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걸 판매한 금액으로 좋은 곳에 기부를 한다니 그건 참 좋네요.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좋은 글, 잘 읽거갑니다~^^

  • 호호맘 2018.09.22 08:32 ADDR EDIT/DEL REPLY

    이 세상은 죽어서도 돈있으면 대접을 받는다는거 맞는말 같아요
    추모공원의 닭장같은 변두리라도 차지할수 있으면 고인을 찾아갈 곳이 있다지만 얼마전 고인이된 제 지인은 먼바다에 배타고 가서 뿌렸더라구요
    관리 해줄 자녀들도 없고 돈도 없으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거죠
    하루 아침에 갑자기 펑 하고 사라진 느낌에 참 허무 하더라구요

    • Favicon of https://jinny1970.tistory.com BlogIcon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18.09.23 06:56 신고 EDIT/DEL

      저도 돌아가신 엄마 유해를 뿌린지라 엄마를 찾아갈곳이 없답니다.^^; 하지만 내가 살아있는 동안 엄마는 내 가심에 가시고 계시니 가끔 혼잣말로 하늘을 쳐다보며 대화를 합니다. "엄마, 지금 나 보고 있지?"하고 말이죠^^

  • Favicon of https://mikamom.tistory.com BlogIcon 코부타 2018.09.24 15:37 신고 ADDR EDIT/DEL REPLY

    태어나면 엄마의 도움없인 살수 없고
    죽어서는 후손의 손을 빌려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

    일본의 장례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돈없는 사람은 죽을때도 편안히 갈수가 없겠군요.

    • Favicon of https://jinny1970.tistory.com BlogIcon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18.09.26 00:40 신고 EDIT/DEL

      우리 요양원에 사시다가 돌아가신 어르신들중에는 자녀들이 장례비용을 내야하는데, 자녀들이 안낸다고 배째라로 나오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나라 복지차원에서 처리(?)하는거 같은데, 자녀들이 장례비용을 안내도, 법적으로 어떠한 제재를 받지 않아서 이런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하더라구요.^^;

 

내 주변에는 이미 이 세상이 안 계신 분들의 사진들이 있습니다.

 

한동안은 돌아가셨던 시고모부님의 사진이 있었었고,

지금은 최근에 돌아가신 (남편의 외가쪽) 시삼촌의 사진이 있습니다.

 

요양원 사무실에도 돌아가신 입주민들이 사진들이 한동안 보이다가 사라지는데..

 

최근에는 우리 요양원 입주민은 아닌데 어디선가 본 얼굴이다 싶어서 동료에게 물어보니..

 

“R부인의 며느리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 그분 사진이잖아.”

 

요양원에 계신 90대의 시어머니를 자주 방문하셨던 지라 얼굴이 익었던 모양입니다.

 

가족이 가지고 있는 고인의 사진들은 대부분 다 소각하는 것이 정상인데..

오스트리아의 장례식에서는 고인의 사진을 모든 방문객에게 나눠듭니다.

 

 

 

R부인의 며느리는 오랫동안 중병을 앓으시다가 72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고인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약간의 정보와  생전에 찍으신 사진입니다.

 

장례식에 온 사람들은 이런 사진들을 한 장씩 받게 됩니다.

 

사실 받는 다기 보다는 교회에 들어갈 때 이 사진을 나눠주는데..

사진을 받으면 약간의 돈을 지불합니다.

 

지난 12월 시고모부님 장례식에서도 마을 한 바퀴를 돌고 다시 교회에 들어갈 때,

나눠주는 사진을 받았었는데 우리는 가족이라 따로 돈을 지불하지는 않았었지만,

다른 분들은 잔돈 내는 것을 봤습니다.

 

이렇게 지불된 돈은 사진을 나눠준 이에게 팁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장례식을 주관했던 교회에서 챙긴다고 알고 있습니다.

 

 

 

접을 수 있게 제작된 장례식에서 받은 사진의 겉면입니다.

장례식에 참석 해 줘서 고맙다는 인사가 담겨있죠.

 

 

 

제가 한국에 잠시 방문 했을 때 돌아가셨던..

시어머니의 오빠(시 외삼촌) 장례식에서 나눠줬던 사진입니다.

 

이 시외삼촌은 돌아가신 다음에 이렇게 얼굴을 뵙게 되네요.^^;

 

나는 이 땅에서 내가 사랑했고,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을 다시 볼 것이다,

하늘에서는 다 만날 수 있죠.^^

 

시 삼촌의 성함이 Johann 요한이셨네요.

 

시어머니가 결혼 전에 사용하셨던 성을 이번에 알았습니다.

결혼하면서 시어머니는 시아버지의 성을 받으신지라 결혼 전 성은 버려야했거든요.

 

85세 사실만큼 사신 연세이기는 하지만..

 

사람마다 세상을 떠나고 싶은 순간은 다른지라,

시 외삼촌은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나고 싶으셨던 순간이셨길 바랍니다.

 

 

 

시 외삼촌의 사진 겉장은 위에 기도하는 손과는 조금 다른 풍경입니다.

장례식에 참석해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인사가 있네요.

 

시 외삼촌의 영혼이 몸에서 벗어나 사진속의 풍경 속으로 훨훨 날아 하늘로 가셨겠지요?

 

이렇게 당분간 보관하고 있는 시 외삼촌의 사진은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또 사라지겠지요.

(버리는 것은 아닌데-아닌가? 남편이 버리나?-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사라집니다.)

 

누구에게도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장례식에서 사진을 나눠주는 이유가 이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당신 곁에 세상을 살다간 이런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잠시라고 기억 해 주시라.”

 

사진을 나눠주는 것이 장례식을 주관하는 회사의 (매상을 올리려는) 장사속인지,

아님 이곳의 오래된 전통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여러 사람에게 물어봐야겠습니다.

 

시 외삼촌의 사진 옆에 좋은 글귀가 있네요.

“우리 가슴속에 당신은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이건 다른 이야기인디..

고인이 우리들의 가슴 속에만 살아있지는 않는 거 같습니다.

 

며칠 전에 우리 요양원에서 돌아가신 분이 있었던 방마다,

유황을 피우면서 한 바퀴 도는 직원을 봤습니다.

 

보통 “크리스마스”쯤에 피우는 유황을 왜 피우냐고 물어보니..

 

“돌아가신 분의 방에 새 입주민이 들어와 사시는데,

그분들이 아무 일 없기를 바라는 이유”에서라고 합니다.

 

혹시나 돌아가신 분의 영혼이 방을 떠나지 못하고 새로 오신 분들에게 해코지를 할까봐,

그분들을 위로하는 하는 행위라 저 혼자 해석했습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제사를 지내서 위로하겠지만,

서양은 귀신은 안 먹는다고 생각하는지라 밥 대신에 냄새로만 달래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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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18. 9. 8. 00:00
  • Favicon of https://yes-today.tistory.com BlogIcon 예스투데이 2018.09.08 11:08 신고 ADDR EDIT/DEL REPLY

    고인의 사진을 나눠준다는 것, 특별한 의미가 되겠네요.
    저걸 보관할지 버릴지는 그 다음 문제지만, 저걸 받는 순간 고인의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될 것 같습니다.

    • Favicon of https://jinny1970.tistory.com BlogIcon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18.09.23 05:13 신고 EDIT/DEL

      받아서 한동안은 보이는데 잘 두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없어지는것을 보면 정리하면서 버려지는거 같더라구요.^^;

 

2018년 새해를 저는 감기와 함께 시작했습니다.

 

12일 새해 첫 출근.

 

감기 걸려 콜록거리시는 어르신 두어 분 점심, 저녁을 먹여드리려 그분들의 방을 들락거렸더니만.. 그 다음날부터 감기 증상이 하나하나 나타났습니다.

 

13일은 목이 아프고, 가래가 끼이는 듯 한 증상에.

14일은 목 아프고, 콧물도 떨어지고, 머리도 띠잉~

15일도 위의 모든 증상을 동반한 감기를 달고 있었지만, 가족 동반 행사가 있었습니다.

 

32녀를 형제, 자매 분들을 가지신 시아버지.

 

형제/자매간의 우애가 좋으셔서 같은 단지에 사시는 시삼촌은 매일 오시고,

린츠에 사시는 시 큰 아버지 내외분은 매주 일요일에 오십니다.

시고모님들은 시삼촌들보다는 왕래가 뜸한지라,

1년에 서너 번 정도 시고모 내외분이 함께 하시는 정도입니다.

 

제가 이 모든 분들을 부르는 호칭은 딱 2개입니다.

남자 분들은 Onkel 엉클(삼촌), 여자 분들은 Tante 탄테.

 

독일어는 우리나라처럼 촌수에 따라 호칭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백부/숙부/고모부/이모부/삼촌의 구분이 없이 무조건 Onkel 엉(옹)클.

백모/숙모/이모/고모 등의 구분 없이 Tante 탄테.

 

저에게 있는 시아버지 쪽의 형제분들중 시고모부인 Onkel엉클 한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시아버지의 형제/자매 내외분들 중에 제일먼저 남편을 떠나보내신 분이 시아버지의 여동생이십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서 돌아가셨고, 미리 화장을 한 후 한줌의 재가 되어 항아리에 담긴 시 고모부의 유골함을 교회 앞의 공동묘지에 묻는 장례(매장)식이 있었습니다.

 

장례식이 새해 연휴인지라, 시아버지 형제/자매님들의 아들/딸들이 다 총출동을 했습니다.

출근도 안하고 집에 쉬고 있는데, 시고모부의 장례식에 참석을 안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죠.

 

며느리인 저는 당연히 장례식에 참석 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정작 남편은 갈 생각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나중에 마눌에게 날리는 뜬금없는 한마디.

 

우리도 엉클 장례식에 가야 할 거 같아.
당연히 가는 거 아니었어? 안 갈려고 했어?

...

그런데 왜 마음을 바꿨어?

다들(남편의 사촌들) 가는 분위기인거 같아서..

 

그렇게 시부모님, 집에서 휴가를 즐기는 시누이, 그리고 남편과 감기를 달고 있는 며느리까지.

우리가족은 모두 총출동했습니다.

 

 

장례식 사진을 찍지 않는 관계로 인터넷에서 그 동네 것을 캡처

 

시고모님이 사는 곳이 Salzburg 잘츠부르크의 도시 근처인지 알았었는데..

멀리 설산이 보이고, 집들도 옹기종기 모여 있는 시골마을치고는 꽤 큰 동네였습니다.

 

시고모부님이 공무원이셨다는 말은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오랫동안 Gemeinde 게마인데 (작은 행정단위/동사무소)에서 근무를 하시면서,

나중에는 동장까지 하셨던 모양입니다. 이 동네를 적자 없는 마을로 만들기도 하셨답니다.

 

해마다 겨울에는 여동생이 사는 이곳에 시아버님이 혼자서 스키휴가를 오시곤 하셨었는데..

겨울에는 이 동네를 지나는 노르딕스키 코스가 있는지라 겨울 휴가지로 딱이었던 모양입니다.

 

시고모부는 그림 같은 마을의 한복판에 있는 성당에서 미사를 드린 후에 성당묘지에 묻히셨는데.. 전에 한번 가봤던 시어머니의 오빠 장례식과는 또 다른 장례식을 보고 왔습니다.

 

 

장례식 사진을 찍지 않는 관계로 인터넷에서 그 동네 것을 캡처

 

장례식을 위해서 참석한 사람들의 규모에 놀란 장례식입니다.

우리가 성당에 도착한 시간이 2시가 안된 시간.

 

가족들의 입장후에, 한 시간 동안 끊임없는 사람들의 행렬이 성당 안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시작된 성당 미사. 작은 성당에 파이프 오르간의 소리에 맞춰 노래하는 성가대도 함께하는 굉장히 웅장한 대형 장례식이었습니다만, 난방도 안 된 성당에서 두어 시간 넘게 앉아있는 것이 감기 걸린 상태의 저에게는 많이 힘들었습니다.

 

나중에는 손, 발도 꽁꽁얼고 콧물은 계속해서 줄줄~^^;

경건한 미사를 보는데 코를 풀어대는 소리가 방해될까봐..

흐르는 콧물은 계속해서 휴지를 대고 있어야했죠.^^;

 

나에게는 길고, 추운 미사가 끝난 후에는 장례식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다 시고모부의 유골함을 따라서 마을 한 바퀴를 돌았습니다. 위의 사진처럼 말이죠.

 

 

장례식 사진을 찍지 않는 관계로 인터넷에서 그 동네 것을 캡처.

 

오스트리아 전통 복장을 한 어르신들은 마을의 원로들이셨나 봅니다.

이분들도 장례식 미사중에 앞쪽에 쭉 앉아계셨었는데..

 

시고모부님도 이분들중에 한분이셨나 봅니다.

한분의 마을의 존경을 받는 원로로 말이죠.

 

 

장례식 사진을 찍지 않는 관계로 인터넷에서 그 동네 것을 캡처

 

마을의 음악대도 시고모부님의 마지막을 함께 했습니다.

좋은 일은 아니지만, 마을의 모든 분들과 모든 행사진들이 총출동한 대규모 장례식이었습니다.

 

날씨도 추운데 맨손으로 악기를 연주하는 분들도 평생 공무원으로, 동사무소의 직원으로, 동장으로 마을에 헌신한 시고모부님의 마지막을 온 동네 사람들이 다 함께 하셨습니다.

 

시고모부님의 유골함 뒤로 시고모님과 딸 셋그리고 그들의 배우자와 그 자손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시고모님의 형제/자매들과 그 자손들.

그리고 그 뒤로 마을 사람들이 따라서 걸었습니다.

 

시고모부님은 이복형이 하나밖에 없는 관계로..

시고모님의 형제/자매님들이 가까운 친인척 자리를 채웠습니다.

 

저도 얼떨결에 가까운 친인척으로 분류가 돼서 함께 걸었는데..

제가 이곳의 유일한 까만 머리 외국인이었던지라 사람들이 눈길을 한 번에 받았습니다.^^;

 

집안에 한국에서 온 며느리가 있다더라.라고 알고 있었던 사람도 있었을 테고..

모르는 사람들은 동양에서 데리고 온 여자가 하나 있는 집안이라고 생각했겠죠.^^;

 

 

장례식 사진을 찍지 않는 관계로 인터넷에서 그 동네 것을 캡처

 

시고모부님은 이미 매장되어계신 (시고모부님의)어머니의 무덤에 함께 묻히게 되어 시고모부님의 유골항아리를 땅에 넣고 꽃을 던지는 순간 요란하게 울리는 대포소리.

 

깜짝 놀랐습니다. 축제도 아닌데 왠 대포를..

몇번을 쏴대는데 매번 깜짝 놀랄정도로 엄청나게 큰 소리였습니다.

 

뭔 장례식에 대포를 몇 방씩이나 쏘나 했었는데..

평생 이 마을에 헌신한 시고모부님의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던 거 같습니다.

 

그렇게 장례식은 끝나고..

사실 배가 무지하게 고팠습니다.

 

집에서는 1030분에 출발해서 시고모님 댁에 12시경에 도착했는데..

130분까지 시고모님 댁에 있으면서 우리가 먹은 건 차와 물.

 

성당에 도착해서 길고 추운 미사가 끝나고 마을 행진하고 성당 앞 묘지에 시고모님의 유골함을 넣고나니 오후 4. 춥고 배고픈 시간이 끝나고 드디어 식당에 갔습니다.

 

식당에 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가까운 친인척만 장례식이 끝난 후에 식사를 하는 줄 알았었는데..

장례식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다 식당에 온 듯 합니다.

 

우리가 시고모님 댁으로 이동을 하면서 시아버지께 여쭤봤었습니다.

 

아빠, 한국은 장례식에 갈 때는 조의금을 가지고 가는데, 여기는 어떻게 해요?

보통은 꽃을 가지고 가는데, 니 시고모가 꽃은 됐다고 해서 돈으로 조금 주려고..

 

옆에 계시던 시어머니가 끼어들어서 한마디 하십니다.

 

너희(아들과 딸)은 따로 낼 필요 없다. 너희 아빠가 넉넉하게 낸다.

 

이 부분에 헉^^; 했습니다.

짠내나게 알뜰하신 두 분이 넉넉하다신 금액이 설마 100유로는 아니겠지요?

우리는 5명이 가니 1인당 20유로씩 잡아도 밥값만 100유로인데 말이죠.

 

 

인터넷에서 캡처

 

장례식에는 소고기를 먹는다고 예전에 들었던 것 같았는데..

이번에는 프랑크푸르트소시지 2개가 나오는 국수스프를 먹었습니다.

 

국수스프는 인터넷에서 캡처한 사진과 동일한데 소시지는 사진처럼 썰어진 상태가 아니라,

긴 상태로 2개가 나왔습니다. 같이 먹을 수 있는 하얀 빵인 셈멜이 나왔습니다.

 

300명이 함께 먹는 저녁이라 조금 더 저렴한 메뉴를 준비한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장례식에 국수 스프를 먹는 것이 전통이라는 이야기도 들은 거 같고!!

 

국수로 끝나는 줄 알았던 메뉴였는데..

뜬금없는 디저트인 다양한 종류의 케이크에 커피까지 나옵니다.

 

우리나라처럼 문상을 가서 조의금내고 육개장 먹는 문화도 없는 오스트리아인데..

300여명이 먹은 음식 값은 누가 내는 것인지...

 

음료 3유로(맥주는 더 비싸고), 소시지 2개가 딸려 나오는 국수스프는 대략 6유로?

거기에 커피& 케이크는 아무리 싸도 5유로정도. 저렴하게 따져도 1인당 15유로.

 

음료도 잔이 비어있으면 웨이츄레스가 계속 추가할 것인지를 물어오는지라 금액은 더 올라가죠.

시고모님이 재벌도 아니고 300x 15유로만 계산해도 엄청나게 나올 금액.

 

도대체 이 금액을 누가 다 부담하는지 궁금했었는데..

시아버지가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하셨습니다.

 

가까운 친인척이 먹은 건 네 시고모가 부담을 하고, Gemeinde게마인데(동사무소)쪽에서도 온 사람들이 많으니 거기서도 조금 부담을 하는 거 같더라구!

 

나의 경제적인 추측은 여기까지!

 

장례식을 마치고 밥도 먹고, 시고모께 인사를 하고 우리는 식당을 나왔습니다.

 

시고모님은 한동안 매일같이 성당 묘지의 귀퉁이에 계실 시고모부님을 찾아가시지 싶습니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것은 슬프지만, 오랫동안 병으로 힘들고 아파하셨을 시고모부님이 이제는 편안해지셨지 싶은 마음도 드는 날입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이번 생이 다 했을 뿐이죠.

 

시고모부님은 가셨지만, 그분과 함께 했었던 우리의 기억 속에 계속 계시지 싶습니다.

우리들의 생이 다할 때까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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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18. 1. 10. 00:30
  • 율진복 2018.01.10 21:35 ADDR EDIT/DEL REPLY

    글에서 장례식전경이 눈에 보이는듯 그려지네요.
    감기로 힘드셨을텐데 잘 드시고 잘 쉬셔서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 Favicon of https://jinny1970.tistory.com BlogIcon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18.01.10 23:19 신고 EDIT/DEL

      70을 앞두고 돌아가셨으니 살만큼 사셨다고 할수도 있고, 내주변(요양원?)에는 거의 대부분의 8~90대이신지라 이 연세에 비하면 일찍 가신것같고... 10년을 아프다 가셨으니 더이상 고통을 느끼지시는 않을거 같아서 그나마 이제는 편안하시지 싶습니다.^^;

  • Favicon of https://silvermoon77.tistory.com BlogIcon 실버문77 2018.01.11 00:52 신고 ADDR EDIT/DEL REPLY

    이 장례식이 일반화는 아니죠? 일반화면 너무 거창하고 저금을 많이 해놔야 될것 같아요
    읽어가면서 돈은 누가 내지?하고 계속 궁금했는데 지니님도 정확한 답변은 못 얻었군요 ㅎㅎ
    그렇다고 대놓고 물어볼수도 없고^^
    참신한 장례 정보 였습니다~

    • Favicon of https://jinny1970.tistory.com BlogIcon 프라우지니 프라우지니 2018.01.11 03:14 신고 EDIT/DEL

      전에 오스트리아/독일 장례식에 대한 다큐를 TV 에서도 봤었고, 화장후 묘지에 매장하는 곳을 학교다닐때 답사 갔었는데, 그때 우리 담임샘이 한 7천유로 정도 든다고 하시더라구요. 묘지에 매장할 곳 사는데 3~4천유로, 돌아가신분 화장하고 장례식까지 다 하는 비용이 또 3~4천유로. 가끔 자신의 부모가 돌아가셨는데 장례비용 안내려고 나몰라라 하는 자식들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 요양원에서 이런 경우가 있었던 모양인데, 자식이 안한다면 그만인지라 나라에서 대충 처리(?)했지 싶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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