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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

말로 하지 않는 감사인사

by 프라우지니 2019.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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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부부가 비엔나 시누이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졌습니다.

 

시누이가 2주간 집에 와있는 기간이라,

시누이가 혼자 사는 비엔나 집은 비어있는 상태였죠.

 

순조롭게 진행될 줄 알았던 뉴질랜드 비자였는데..

한국이 결핵 위험국이라 X-Ray엑스레이는 찍어야 한다는 대사관.

 

10일 이내 서류를 업로드하지 않으면 내 뉴질랜드 워킹비자가 거절될 수 있다니..

 

남편이 급하게 비엔나에 있는 “뉴질랜드 대사관 지정 건강 검진의“한테 예약을 걸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이틀 전에 비엔나행이 결정이 됐습니다.

 

처음에는 같이 비엔나에 가서 자전거 타고 린츠로 오자고 했던 남편.

생각 해 보니 안 되겠는지 마눌한테 혼자 다녀오라고 합니다.

 

평소에도 소, 닭 보듯이 하는 시누이한테 아쉬운 소리 하기 싫었던 거죠.

 

남편도 휴가라도 집에 있는데..

나 혼자 비엔나 가서 의사 만나고 엑스레이만 찍고 오면 조금 섭섭하죠.

 

이미 “도나우 강 자전거 여행”을 이야기 해 놓고 나 혼자 다녀오라니..

그래서 내가 총대를 메고 시누이에게 물어봤습니다.

 

“시누이, 우리가 급하게 비엔나에 가야하는데, 너희 집에서 하룻밤 자도 돼?”

 

이렇게 물어보면 비어있는 집이니 당근 쉽게 그러라고 할 줄 알았는데..

 

“내가 급하게 오는 바람에 집안이 개판이야.”

“상관없어. 우리는 잠 잘 공간만 있으면 되니까.”

“내가 빨래도 주렁주렁 널어놔서...”

 

남편이 우리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던 것인지..

잽싸게 쫓아와서는 내 옆에 서서 시누이에게 웃으면서 이야기 합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평소에는 여동생을 봐도 “왔냐?”딱 한마디만 하는 남편인데..

 

남편이 시누이와 얼굴을 맞대고 활짝 웃으면서 지금까지 본 중에 제일 오래 대화를 했습니다. 사람이 아쉬우면 비굴해지는 것인지...^^;

 

결혼 12년이 넘도록 본적이 없던 오누이의 모습이라 저는 이리 느꼈습니다.

 

“좀 지저분하면 어때, 우리는 잠만 자면 돼!”

 

오빠까지 나서서 이러니 시누이가 마지못해 허락을 하는 듯 합니다.

 

“집안이 더러운데...자는 건 상관이 없는데, 정리가 안 되어 있어서..”

 

우리가 시누이집에 청소 검열 가는 것도 아니고, 그저 잠잘 공간만 있으면 되는 거죠.

그렇게 시누이집 열쇠를 받아서 비엔나에 갔습니다.

 

 

 

시누이집은 비엔나의 유명 관광명소인 “Prater프라터“에서 엄청 가깝습니다.

프라터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놀이공원이라고 하죠.

 

난민청년들이 몰려들면서 이제는 우범지대가 되어버려,

저녁에는 이쪽으로 가는 걸 자제해야 하지만 말이죠.^^;

 

전철을 타면 한정거장이고, 걸어가도 10분 이내로 가능한 거리이고,

시누이집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나름 근사합니다.

 

집주변에 슈퍼마켓도 서너 개 있고, 시내와 가까우면서도 조용한 편이라,

비엔나에서 이런 위치에 집이 있는 것도 “나름의 행운이다” 싶은 곳이죠.

 

시누이네 집에 몇 번 가봐서 숙박을 해봤으니 어디서 자야하는지는 알고!

손님방에 있는 1인용 소파 2개를 침대로 만들었는데 침대보랑 이불이 없습니다.

 

남의 집에서 이것저것 뒤지는 것도 그렇고 해서 남편이 시누이한테 전화를 했습니다.

2번이나 전화를 했는데도 연락이 없는 시누이.

 

결국 우리는 시누이가 빨아놓은 대형수건 하나랑, 거실 소파에 깔려있던 담요를 소파 위에 침대보 대신에 깔았고, 시누이가 거실에 내놨던 이불보 없는 이불 하나를 둘이서 나눠덮고 잤습니다.

 

 

 

시누이네서 하룻밤 머물고 나올 때는 식탁 위에 답례로 와인 한 병을 놓고 왔습니다.

 

오빠네 부부가 자기 집에 자러가서 전화를 해왔으면 뭔가 필요한 것이 있어서 전화를 했었을 텐데..

 

평소에 올케의 문자를 씹어 드시는 시누이가 이번에는 오빠의 전화를 씹어 드셨습니다.

 

소파침대 밑에 깔고 잔 대형수건과, 이불보 없이 덮고 자는 이불 때문에 저는 몇 번 잠을 깼었습니다. 아무래도 편하게 자는 상태라 긴장을 했었던 모양인지..

 

시누이가 뭘 하느라 오빠의 전화를 받지도 않고,

나중에라도 해줄 수 있는 전화를 하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남편은 시누이에게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너희 집에서 자게 해줘서 고마워.

수건 2개는 우리가 사용한 것이고, 빨간 수건은 침대에 까는 용도로 사용했어.”

 

 

파란 수건은 우리부부가 머무는 동안 사용한 목욕타월.

 

이건 내가 출발전에 시누이한테 “어떤 수건을 사용해야하냐”고 물어봐서 시누이가 위치를 알려줬던 거죠. 빨간 수건은 우리가 잤던 침대의 반쪽을 덮는데 사용했던 것.

 

그렇게 시누이네 집에 감사의 선물을 놓고 나왔지만..

 

자전거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는 나도 남편도 시누이에게 “너희 집에서 자게 해줘서 고맙다.”라는 인사는 따로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인사를 하지 않는 이유는..

 

이야기를 꺼내면 “이불보가 없어서, 침대보가 없어서..”라는 이야기도 나올 거 같고,

“전화했는데 네가 안 받아서..”도 나올 거 같고 해서 였습니다.

 

시누이네 집 열쇠를 받았던 사람이 남편이라 남편에게 “인사했냐?"고 물어보니 남편도 안 했다고!

 

“아니, 열쇠를 시누이한테 받은 거 아니야? 열쇠줄때 인사 안 했어?”

“열쇠는 아빠한테 받았는데??”

 

아하! 시아버지가 시누이네 집 열쇠중 한 개를 보관하고 계셨던 모양입니다.

 

이래저래 우리 부부는 시누이에게 따로 감사하다는 인사는 하지 않았습니다.

 

시누이의 집에서 자게 해준 건 고마운데,

시누이가 남편의 전화를 받지 않는 건 내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오빠네 부부가 내 집에서 하룻밤 묵으러 갔는데, 오빠가 저녁에 전화를 해왔다?”

 

나중에라도 전화를 해서 우리에게 이불보와 침대보의 위치를 알려줬다면 기분 좋게 하룻밤묵고 나올 수 있었을 텐데.. 고마우면서도 30% 섭섭한 그런 기분을 이해하시려는지...

 

시누이는 집에서 2주의 휴가기간을 보내고 비엔나로 돌아갔습니다.

지저분한 집에 오빠네 부부가 남겨놓고 온 와인과 감사인사를 봤었을 텐데..

 

시누이도 우리에게 따로 연락을 해서 “와인 고맙다” 하지 않았습니다.

참 이상하고 재미있는 오누이 관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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