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름 럭셔리한 오페라나 연극을 보러 다닌다고 하면, 사람들은 제가 아주 문화를 사랑(?)하는 인간형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제가 사실 그렇지는 못합니다.
“기회가 되고, 시간이 되니 많이 경험 해 보자“ 는 생각도 있고! “이때가 아니면 내가 언제 이런 고급스런(비싼?) 문화생활을 즐기겠나?"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나의 럭셔리 취미인 (무료) 오페라/연극 관람을 할 때 내가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나의 흥미를 자극하는 작품 위주입니다.
나의 흥미라는 것이 가끔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일 때도 있고, 유명하지는 않지만 내가 들어본 작품일 때도 있고, 가끔은 한국인으로 예상되는 인물이 나오는 작품일 때도 있습니다.
“리골레토”라는 작품은 사실 클래식을 모르는 사람들도 아는 노래를 담고 있는 오페라죠.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아~~”
바로 이 노래가 “리골레토”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작품 사진 속에 한 인물에 눈이 확 갔습니다.
어쩐지 한국인 같은 저 외모!
그래서 이 작품을 골랐습니다.^^
여기서 잠깐!
전에 오스트리아로 유학 온 학생에게 들었던 이야기인데..
한국 사람은 주변국인 중국이나 일본사람에 비해서 목소리가 상당히 (크고) 좋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악을 전공하는 한국 학생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다고 하더라구요.
실제로 유럽의 크고 작은 국립극장에는 꽤 많은 수의 한국 성악가들이 활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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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츠 주립 국립극장 내부입니다.
사진에 해당하는 곳은 무대 바로 앞자리입니다.
극장에서 제일 비싼 좌석이죠.
재미있는 것은 이 부분의 좌석에 앉으시는 분들이 꽤 연세가 지긋하십니다.
그 사이에 상대적으로 젊고 머리마져 까만 내가 앉는지라 뒤쪽이나 위에 있는 사람이 나를 보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 연세 많으신 분들 사이에 끼여 있는 검은머리 아낙은 요양보호사 인가?”
요양원에 가는 비용이나, 동유럽에서 온 무자격 요양보호사를 24시간 상주로 들여놓는 비용이나 차이는 별로 없고, 혼자 사는 어르신은 하루 종일 누군가 옆에 있으면 좋으니 상주 요양보호사를 선호합니다.
집에서 함께 사는 요양보호사를 데리고 오페라를 보러 왔다고 해도 상영시간동안 “밖에서 기다려라”하지 않고 비싼 입장료(62.50유로) 들여가면서 극장 안에 데려오는 사람이 있겠냐마는..
돈이 많은 집에서는 불가능한 일도 아니죠.^^
남들이 나를 “부자가 데리고 온 요양보호사”로 보던가 말던가, 내 앞을 지나가는 어르신이 도움이 필요하면 잡아도 드리고 지팡이도 들어드리고 합니다.^^
전에 다니던 그라츠의 극장은 오페라가 독일어가 아닌 다른 언어일 경우, 무대 위의 거의 천장쪽에 (독일어) 자막이 나오는지라 자막을 읽다보면 무대 위의 장면들을 놓치기도 하는데..
린츠 국립극장은 나름 최신이라고 자막이 나오는 화면이 내 앞좌석 뒤에 있습니다.
그래서 고래를 쳐들고 목이 빠져라 무대 위를 쳐다볼 필요가 없습니다.^^
유럽의 극장은 옷을 받아주는 서비스를 해주는 공간, “Garderobe 가데로베” 가 있습니다.
특히나 겨울에는 두툼한 외투를 입고 극장 안에 입장 하실 수 없습니다.
이곳을 지나쳐서 가셨다고 해도 극장 앞에서 티켓을 보여줄 때 한마디 들으십니다.
“외투는 가데로베에 맡기도 오시기 바랍니다.”
한 번에 몇 백 명의 관객이 오는 대극장이여서 그런지 외투보관서비스를 하는 공간에 근무하는 직원들도 꽤 있습니다.
원래는 무료보관이지만, 유럽의 서비스가 그렇듯이 “팁”을 무시할 수는 없죠.
물론 “내가 산 비싼 극장 입장료에 포함된 서비스잖아.“도 맞는지라 안 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가데로베에 근무하는 직원의 일손을 덜어주기 위해서 내가 찾는 장소는 이곳입니다.
물품보관소도 한쪽에 마련되어있는지라 저는 외투를 이곳에 쏙 넣어버립니다.
사실 이곳을 이용하는 이유는 직원에게 팁을 안 주는 미안함을 줄이는 것도 있지만,
공연이 끝나면 사람들이 피터지는 옷 찾기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공연이 끝나면 한꺼번에 쏟아지는 사람들 사이를 뚫고 나오기도 힘들고, 내 앞에 이미 긴 줄이 있는 상태라면 나는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우리 집 가는 전차를 놓칠 수도 있죠.
저녁 8시 이후에는 전차도 30분에 한 대씩 오고, 때맞춰 오는 전차를 놓치고 나면 30분 기다려야 하는지라.. 치열할 수밖에 없는 시간입니다.
내 옷을 이곳에 보관하면 공연이 끝난 후에 잽싸게 와서 얼른 열고 외투입고 나갈 수 있어서,
빠른 귀가를 해야 하는 나에게는 아주 매력적인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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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보게 될 리골레토에 대한 간략한 정보는 내가 앉은 좌석 앞의 모니터에서 대충 읽습니다.
등장인물 소개에 내 눈에 뜨이는 이름 하나,
Hyojong Kim (Herzog) 김효종 (공작역)
역시나 내가 팸플릿 사진에서 봤던 그 배우가 한국인이었네요.^^
공연은 시작되고 저는 아주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페라 라는 것이 무대 위만 집중해서 보기만 하면 좋겠지만,
이태리어로 공연하는 리골레토는 무대만 쳐다보면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모릅니다.
그러니 내 앞의 모니터에 나오는 독일어 자막도 읽어야 하는 거죠.
저는 독일어로 공연하는 작품도 독일어 자막을 읽어야 합니다.
그냥 말해도 이해하기 힘든데, 이걸 노래로 길게 늘여서 하면 더 이해불가 거든요.^^;
무대 위가 뮤지컬처럼 볼 것이 넘치는지라 주인공 외에 다른 사람들의 연기도 봐야하는데..
나는 자막을 읽어가면서 무대를 봐야하니 눈이 엄청나게 바쁘게 움직입니다.^^;
공작으로 나온 한국인 성악가의 공연은 정말 훌륭했습니다.
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것이 여자의 맑은 목소리를 표현하는데,
남자의 맑은 목소리는 어찌 표현해야하는지.. 정말 낭랑한 목소리였습니다.
상대적으로 덩치가 큰 서양 배우들에 비해서 키가 작은지라 품새가 조금 안 나기는 했지만,
작은 덩치에서 나오는 목소리 하나는 정말 근사한 배우였습니다.
다른 배우들에 비해서 “브라보”도 덜 나왔고, 공연을 마치고 나오는 등장인물 하나하나에게 박수를 보낼 때도 다른 서양배우에 비해서 조금 약한 박수를 받는 느낌은 있었지만,
공연을 마치고 무대 인사를 하는 한국인 성악가를 보면서 괜히 눈물이 찔끔 났습니다.
무대 위의 그는 자기 공연은 본 수많은 서양관객들의 박수를 받는 것이 자랑스러웠겠지만, 무대 아래서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함께 자랑스러워했던 아낙이 있었던 건 모르겠지요.^^
나를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만든 그 성악가는 누구인지 인터넷으로 이름을 검색해봤습니다.
그리고 내가 찾은 정보는..
독일 브레멘 국립극장 오페라단 솔로이스트 테너 김효종
유럽 같은 경우 솔로이스트들은 한 극장 소속이면서도 다른 지역의 극장으로 공연을 가기도 합니다. 자신이 소속된 극장에서 공연하는 작품 중에 자신에게 맡는 작품이 없으면 다른 지역으로 갈수도 있다고, 그라츠 주립극장에 소속된 솔로이스트 성악가에게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내가 들었던 테너 김효종의 목소리를 다음의 한 카페에서 찾았습니다.
궁금하신분은 아래를 클릭하시라,
이태리어와는 다른 종류의 노래지만 그의 목소리는 감상하실수 있습니다.
한 음악잡지에서 한 인터뷰를 보니 "한국에도 조금 알려지고 싶다."라는 희망을 밝힌것으로 봐서는 한국에서는 아직 알려지지 않는 독일에서 활동하는 성악가입니다.
내가 무대 위에서 본 외모와는 조금 다른지라 당황하지만 목소리는 맞는 거 같습니다.
리골레토의 공작이 부르는 노래와는 다른 노래를 부르시지만,
그의 낭랑한 목소리는 노래 중간, 중간에 들으실 수 있습니다.
유럽에는 한국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한국인이 살고 있는 거 같고, 아주 다양한 직업군(요양보호사 같은?)에 종사를 하고 있고, 그리고 꽤 많은 한국인 성악가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국을 떠나서 한국인으로 사는 것이 가끔은 아주 힘들고 지치기도 하는데.. 누군가 자기의 자리에서 자기의 몫을 멋지게 해내고 있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힘을 얻는 거 같습니다.
간만에 한국 사람을 만나서 반가웠고, 그 사람의 멋진 공연을 본 것이 행복했고, 공연 후 관객의 박수를 받는 그와 내가 같은 한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러던 겨울밤의 ‘리골레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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