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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

날 울게 만드는 남편

by 프라우지니 2017.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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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아낙들이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남편은 저에게 꽤 여러 종류의 인간으로 변신합니다.

 

어떤 날은 쳐다보기도 싫은 웬수가 되기도 하고,

어떤 날은 내가 실컷 울 수 있는 가슴을 내어주기도 하고,

어떤 날은 내가 가진 걸 다 줘도 아깝지 않은 이 세상에 오직 한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그중에 제일 많은 부분은 바로 “웬수”죠.

오늘은 내 웬수 때문에 제가 아주 많이 울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타국에서 사는 것이 힘들고 외로울까봐,

외국인 아낙이라서 무시당하는 상황이 생길까봐,

마눌도 모르게 마눌 뒤를 봐주고 있는 남편!

 

탈장수술날짜가 잡히면서 우리병동의 책임자에게 사내 이멜을 보냈습니다.

같이 근무하는 날이 맞지 않을 때는 이멜로 서로 소통을 합니다.

 

한 달에 달랑 8일정도 일하는 직원이지만,

빠지면 다른 직원들이 힘들어지니 미리 알려줘야 하거든요.

 

이멜 내용은 대충 이렇습니다.

 

“병동책임자(사실은 상급자라고 해도 그냥 이름을 부릅니다.)

내가 8월9일에 병원에 입원해서 10일에 탈장수술을 하게 될 예정이고,

그 이후에 병원에 3일정도 있다가 퇴원하면 6주 정도는 병가를 내야한다고 해.

미리 알려야 할 거 같아서..“

 

수술 전 마지막 근무를 나간 날,

아침에 출근해서 책임자를 찾아갔습니다.

 

“내가 보낸 메일 읽었어?”

“응, 그런데 그 수술 연기하면 안돼?”

“왜?”

“여름 휴가철에는 직원들이 많이 비니 ”계획한 휴양“ 같은 건 안 된다고 했잖아.”

“이건 미리 계획한 것이 아니라 가정의가 병원으로 보내서 갔는데, 거기서 검진하고 곧바로 수술날짜를 잡은 거야.”

“일단 간호책임자가 휴가에서 돌아오는 월요일쯤에 알려줄게, 수술날짜에 예정대로 수술을 해도 되는지 아님 연기를 해야 하는지.”

“병원에 전화해서 물어봐야할 거 같은데. 연기해도 되는지..”

“참, 그리고 병가 낸 6주중에 3주는 네가 쓰기로 한 여름휴가 대신하면 되지?”

“그건 아니지, 병가를 내면 휴가도 못가고 집에 있어야 하는데, 휴가라니..”

 

평소에는 참 친절한 책임자인데 대화중에 그녀의 짜증을 봤습니다.

 

휴가간 직원들이 많아서 직원이 부족한데 또 한사람이 빠지겠다니 걱정이기는 합니다.^^;

 

그렇게 병동책임자의 방을 나와서는 남편에게 바로 문자를 보냈습니다.

 

“시간 있음 전화해!”

 

마눌이 이런 문자를 보내면 별일이 없는 한 남편은 바로 전화를 합니다.

 

“남편, 나 수술날짜를 미뤄야할지도 모르겠어.”

“무슨 말이야?”

“휴가철이라 직원이 없다고 간호책임자가 오는 월요일에 알려주겠다고 하는데?”

“병원에서 안 해도 되는 수술을 잡은 거겠어? 필요하니 잡은 거지?”

“글고 책임자가 병가 6주중에 3주는 여름휴가 잡아놨던거로 쓰라고 하는데?”

“뭐? 뭐 그런 경우가 다 있어? 당장 가서 여름휴가 잡아놨던거 취소하고, 가정의 만나서 물어보겠다고 해, 수술을 연기해도 되는지 안 되는지..”

“알았어.”

 

그렇게 전화를 끊고는 책임자와는 대충 이야기를 끝냈습니다.

 

“잡아놨던 여름휴가는 취소하고,  내일 가정의를 만나서 수술을 연기해도 되는지 물어보고 확인서를 가지고 올께.”

 

대충 이렇게 정리를 하고는 오전 일을 정신없이 했습니다.

요양원 근무 중에 오전이 가장 바쁘거든요.

 

아침을 나눠드리고, 혼자 못 드시는 어르신들 먹여드리고, 아침 간병을 시작합니다.

 

씻겨드리고, 옷 갈아 입혀드리고 등등이거나, 목욕 담당이면 그날 목욕예정인 어르신 3~4분을 씻겨드리느라 땀으로 목욕을 하면서 근무를 합니다.

 

대충 오전근무를 끝내고, 직원회의도 마치고 드디어 쉴 수 있는 점심시간.

점심은 어르신들 점심 나눠 드릴 때 대충 먹은지라 이 시간은 오로지 잠자는 시간입니다.

 

잠자러 가면서 가방에 넣어놨던 핸드폰을 꺼내들었는데, 남편이 보낸 문자가 하나 있습니다.

 

 

문자에 딸린 사진은 남편이 8살 무렵의 사진입니다.^^

 

남편은 한 번도 본적도 없는 내 가정의를 찾아서 통화를 한 모양입니다.

이름 하나만 알려줬는데, 아마도 인터넷에서 찾아 헤맸겠지요.

 

"네 가정의가 병가 써주겠다고 내일 오래. 그리고 병동 책임자에게 말해! 내일 가정의한테 가겠다고! 수술을 하고 말고는 요양원 직원의 상황이 아닌 의사가 결정하는 거라고!”

 

남편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을 일부러 대문자로 썼습니다.

 

남편은 원래 회사에서 근무시간에 인터네 접속을 안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마눌 때문에 급 검색을 내 가정의를 찾았던 모양입니다.

 

다짜고짜 전화해서는..

저기 제 마눌이 XX인데요, 선생님이 병원으로 보내서 수술이 잡혔다네요. 그런데 요양원에서 수술을 미루라고 하는데..”뭐 이런 대화를 했지 싶습니다.

그러니 선생님은 “병가”를 써주시겠다고 하신거겠구요.

 

남편의 문자를 보니 감동의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래서 엉엉~ 소리를 내면서 울었습니다.

 

다행이 방에는 저 혼자였던지라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펑펑 울었습니다.^^

 

다정하기보다는 무뚝뚝하고 말도 차갑게 하는 남편인데..

 

사실은 마눌의 건강을 걱정하고, 마눌이 우울할까봐 신경 쓰고,

마눌이 필요한 순간에는 항상 든든하게 뒤를 받쳐주고 있는 것이 너무 고마워서 말이죠.

 

다음날 저는 가정의를 찾아가서 “병가”를 받았습니다.

그걸 요양원에 제출함으로서 수술을 연기할 필요는 없어졌죠.

 

남편은 마눌이 입원하게 되면 혹시나 병실 업그레이드가 가능한지 마눌이 들어있는 건강보험공단에 전화해서 문의도 했었다고 합니다.

 

이왕이면 마눌이 여러 명이 북적거리는 병실보다는 조금 더 조용한 병실에 묵게 하고 싶어서 말이죠. (저는 이런 제도가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아쉽게도 내가 가입된 직장건강보험에 6개월 이상 가입이 되어 있어야 적용이 된다고 해서 저는 해당사항이 없지만, 그래도 이런 세세한 것까지 알아봐주는 남편에게 감동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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