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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 직업이야기

날 떨게 하는 그

by 프라우지니 2018.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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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요양원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일을 합니다.

 

일단 주 40시간 일을 하는 정직원들이 있고,

그 외 주 20시간, 25시간 혹은 30시간 시간제 일을 하는 직원들도 있고,

 

군대 대신에 요양원에서 일을 하는 사회복무요원들도 있고,

그 외 방학 때면 짧은 알바를 나오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위에 나열된 사람들은 금액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요양원(이 속한 기관)에서 월급을 받는 직원들이죠.

 

요양원에서는 정식 월급이 나가는 직원 말고도 일하는 직원들이 또 있습니다.

 

여러 종류의 실습생과 또 다른 종류의 사회봉사를 하러오는 사람들.

 

저도 2년 동안 우리 요양원에서 “실습생”으로 일을 했었죠.

한 달에 주 20시간 일을 하면서 요양원에서 받았던 돈은 한 달에 200유로였습니다.

 

원래 주 20시간이면 한 달에 900유로 이상의 월급이 지급되어야 했지만, “실습생”이라는 꼬리표를 달아놓고는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월급이 아닌 보조금이 주어졌었습니다.

 

유럽의 직업의 세계에 존재하는 “견습생(기성세대는 일본어 ”시다“가 더 이해가 빠르죠^^)”

 

대부분의 기능직은 3년 동안 견습생으로 일을 하면서 기술도 배우고, 일도 하지만 월급은 기존직원이 받는 금액의 반의반도 못 받습니다.

 

제가 한 2년간의 “실습생”생활도 이와 같은 맥락이죠.

 

우리 병동 근무자 현황판.

 

우리요양원에 근무하는 직원/실습생들은 다 요양원 유니폼을 입고 일을 하는데..

가끔 유니폼이 아닌 사복을 입고 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명“사회봉사”를 하러 오는 사람들이죠.

쉽게 말하면 범죄자라는 이야기입니다.

 

사회봉사 명령이 떨어졌으니 일을 하러 온 거죠.

 

저는 “벌금” 대신에 몸으로 때우느라 오는 사람들 인줄 알았었는데..“벌금은 이미 납부했고, 정해진 시간만큼 사회봉사를 하지 않으면 교도소에 가야한다.”고 합니다.

 

사회봉사를 하러 온 이 사람들이 어떤 범죄를 저지르고 우리 요양원에 오는지는 잘 모릅니다.

 

요양원 일이라는 것이 하루 종일 바쁜지라 서로 마주서서 이야기할 시간도 별로 없고,

“넌 어떤 범죄를 저질러서 여기까지 온 거야?”라고 묻기고 참 거시기 한지라 묻지 않죠.

 

사실 범죄라고 해도 요양원에 사회봉사를 오는 사람들은 그렇게 나쁜 죄질은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요양원은 직원을 채용할 때도 “범죄증명서”까지 제출해야하는 곳이니 말이죠.

 

우리요양원에 못 보던 남자가 하나 등장했습니다.

큰 키에 “휴고보스”청바지 까지 챙겨 입고 오는걸 봐서는 패션에 꽤 신경 쓰는 인간형인디..

사복을 입고 일하는걸 보니 내가 생각하는 그 “범죄자”인거죠.

 

그를 처음 본 것이 벌써 3주가 넘었네요.

 

주중에는 본인이 일을 하는지라 주말에만 요양원에 일하러 온다는 그.

처음에는 같이 일하면서도 그냥 그러려니 했습니다.

 

요양원 일이라는 것이 하루 종일 바쁜지라 서로 잡담할 시간은 별로 없거든요.

 

저는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요양원 근무라는 것이 일을 안 하려고 눈을 감으면 일할 것이 안 보이지만,

굳이 일을 찾지 않아도 일이라는 것은 항상 도처에 있으니 말이죠.

 

처음에는 첫 주는 2층에 근무하러 오는 그와 같이 하루 종일 근무를 했습니다.

그는 틈틈이 내게 와서 나의 사생활을 자꾸 물어왔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저는 못사는 나라 출신이라고 생각했었고 말이죠.

 

대충 그가 물어오는지라 아주 짧게만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한국에서 왔고, 남편이 오스트리아 사람인지라 이곳에 살고 있고, 결혼 10년차 유부녀”

내가 알고 있는 그는 “사회봉사를 하러온 범죄자”인지라 웬만하면 거리를 유지하려고 하는데..

그는 자꾸만 나에게 옵니다. “예쁘다.”라는 말도 시시때때로 하고.

 

설마 사회봉사 하러온 요양원에서 결혼 10년차 유부녀를 꾀려고 하는 행동은 아니겠죠?

요양원 어르신들께도 “이 직원 예쁘죠?”하면서 저의 외모에 대해서 칭찬을 합니다.

사실 40대 후반의 아낙이 예뻐봤자 얼마나 예쁘겠습니까? 다 제 눈이 안경인거죠.

 

첫 주는 2층에 같이 근무한지라 오며가며 그와 부딪히고, 그가 시시때때로 물어오는 질문에 대답을 해줬었는데.. 둘째 주는 제가 1층 근무에 걸린지라 그와 부딪힐 일이 없다고 안심했었습니다.

 

그. 런. 데.

 

2층에서 근무해야할 그는 시시때때로 1층에 혼자 근무하는 나를 찾아서 내려왔습니다.

 

12명의 어르신들을 혼자 관리해야하는 1층 근무가 아직 1년차 직원인 나에게는 참 버거운 근무지만 그렇다고 하임힐페(도우미)일을 하러 온 그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은 없는데..

 

"내가 뭐 도와줄 일 있어?“

 

도우미가 도와줄 일은 많지 않는데, 뭘 도와주겠다고 자꾸 찾아오는 것인지..^^;

 

너무 자주 찾아오는 그가 너무 부담이 된지라,

주말 근무가 끝난 다음에야 남편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남편, 우리 요양원에 사회봉사 하러온 남자가 하나 있거든.

근데 무슨 범죄를 저질렀는지는 모르겠어.

 

근디.. 그 사람이 자꾸 나한테 와서 개인적인 것을 묻고, 도와주겠다고 자꾸 따라다녀.”

 

마눌이 쫑알거리는 이야기는 항상 흘러듣는 남편인데, 이번에는 바로 반응합니다.

 

“그 사람이 왜 당신한테 그래?”

“몰라, 난 결혼 10년차 유부녀고 한국 사람이란 거는 이야기 했는데..”

“그런 이야기를 왜 해?”

“그럼 묻는데 이야기 하지 씹남?”

“개인적인 것은 물어도 대답하지 말고 그냥 무시해!”

“범죄자 앙심사서 어떡하려고? 대충 적당히 넘기는 것이 좋지.”

“자꾸 그러면 사무실에 가서 이야기를 해!”

“뭘 이야기를 해? 근무 바꿔달라고?”

“....”

 

남편이 이렇게 반응하지 않아도 사실 저도 무섭습니다.

그가 내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물어볼까봐 말이죠.

 

이번 주말에 또 근무가 걸렸는데..

그가 일하는 2층 근무가 토, 일요일 양일간 걸려있는데..

 

그는 이번 주말에도 또 나타나려는지.

내가 근무하지 않는 지난 주말을 끝으로 그의 “사회봉사 이행시간”은 끝이 났으면 좋으련만..

 

이번 주에 또 그를 만날까봐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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