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이야기

마눌 키우는 재미

by 프라우지니 2016. 9. 27.
반응형

 

누군가를 키우는 재미는 자식을 키우면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요새 남편이 마눌한테서 느끼는 것이 바로 이 “자식을 키우는 재미” 입니다.

 

남편이 저녁에 퇴근하면 마눌은 낮에 뭘 했는지,

어딜 갔는지 쫑알거리면서 열심히 이야기를 합니다.

 

자전거 타고 돌아다니다가 일어날 뻔 했던 사고 이야기를 해서 남편 간을 한 번에 콩알만 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매일 건너다니는 이 지방도로에서 사고가 날 뻔 했었습니다.

 

“남편, 나 요양원갈 때 출근하는 길에 지방도로 있잖아.

 

거기서 초록불 들어온 다음에 자전거를 출발했거든,

근디.. 차 한 대가 횡단보도 중간까지 진입했어. 바로 내 자전거 앞에서 섰다니깐,

 

나 한바터면 자전거 타고 날아갈 뻔했어. 그 순간 ”사고구나!“ 했었다니깐!!!”

“내가 그러게 초록불이여도 차들이 완전히 선 다음에 진입하라고 했잖아.”

“차들이 서 있었지. 그 차도 서서히 달려오고 다른 차선의 차들은 다 서있는지라 당연히 그 차도 설 거라고 생각했지.

 

내 앞에서 급브레이크 밟아서 끽~ 하고 선 차를 보니 운전자가 전화중이였더라고.

차 번호판을 보니 외국인이더라, 슬로베니아 번호판 이였어.

 

자기도 놀랐는지 내 앞에서 서더니만, 내가 자기를 지나자마자 바로 출발하더라,

아직도 빨간 불이였는데 말이지.”

“그러게 내가 항상 조심하라고 했잖아.”

“어쩌라고? 그럼 초록불인데도 양쪽 방향의 모든 차선의 차들이 다 설 때까지 기다리나?

그러다가 다시 빨간불 되면 난 어쩌라고? 그럼 또 다음 신호를 기다리남?”

“자전거 탈 때는 항상 헬멧 잊지 말고 챙겨서 쓰고 다니고..”

“웃기셔! 너나 자전거 타러 나갈 때 헬멧 쓰세요.

당신이 마눌 머리통 신경 쓰듯이 마눌도 남편 머리통에 엄청 신경 쓰거든요.”

 

남편의 잔소리를 마누라는 “너나 자알 하세요~”로 받아치지만 그래도 남편은 매번 잔소리를 합니다.

 

마눌이 쫑알거림이 항상 이렇게 남편을 걱정시키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학교를 다니고 있는 요즘은 남편도 모르는 여러 가지 것들을 설명해서 남편을 놀래키기도 합니다.

 

 

 

인체학 시험을 앞두고 있을 경우는..

묻지도 않는 남편 앞으로 달려가서 열심히 외운 것을 남편 앞에서 열심히 설명합니다.

 

“사람의 심장은 그 사람의 딱 주먹만 하거든.

이것이 사람의 평생 동안 쉬지 않고 펌프질을 해.

 

심장은 2개의 심방과 2개의 심실이 있어.

우측의 심실은 온몸순환을 마치고 들어오는 이산화탄소가 포화상태인 혈액이거든.

 

이 혈액은 우심방을 거쳐서 폐로 가게 되면 폐에서 혈액들은 다시 산소를 얻어서 다시 좌심실로 돌아오는 거지. 좌심방을 거친 피는 온몸순환을 하게 되는 거지.

 

“심장은 2개의 막으로 되어있고, 내막과 외막사이의 심낭에는 액체가 들어있는데, 이것이 심장이 펌프질할 때 생기는 마찰을 막아주는거지.

 

좌심실에서 온몸순환을 위해 나가는 혈액 같은 경우는 펌프질이 폐로 가는 우심실보다 엄청 강력해서 좌심실의 같은 경우는 심장의 근육이 3배가 두꺼워. 어쩌고저쩌고...“

 

남편은 들어도 모를 심장에 대한 모든 것을 열심히 설명하는 마눌이 신기한 건지,

아님 마눌의 이야기가 신기한 건지 남편은 항상 이야기에 집중하죠.

 

독일어의 “A아,B베,C체,D데”도 모를 때부터 마눌의 독일어를 듣고 봐온 남편.

 

처음 버벅이며 말 배울 때는 마눌이 새 단어를 하나씩 추가할 때마다,

새로운 문법으로 문장을 만들 때마다, 아주 대견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습니다.

 

아마 남편이 이때 느낀 것이 “아이를 키우면서 말 배워 가는 것을 보는 부모의 마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아직도 마눌을 아이 취급하는거 같기도 하고 말이죠.

 

오스트리아에서 독일어를 배우면서 살고 있는 한국인 마눌 또한 남편이 새로운 한국어를 말할 때마다 깜짝 놀라고 대견할 때가 있습니다.

 

한국인인 제가 오스트리아에서 독일어를 말하고 살고 있다고 해서 한국말을 절대 안 하는 건 아닙니다. 혼잣말은 거의 한국어로 하고, 남편을 부르는 호칭 또한 시시때때로 한국어죠.

 

그중에 제일 많이 쓰는 말.

 

“웃기세요”, “웃기지 마세요”, “웃기지 마시라”

 

남편은 마눌이 어떤 행동이나 말을 할 때 정말로 제대로 이 말을 사용합니다.

정말로 감탄이 나올 정도로 정확한 상황에서 사용하는지라 정말 놀랍죠.

 

요새 남편이 새로 개발한 단어는...

웃기(+)까불어.^^;

 

그 외 몇 가지 단어를 더 사용하지만, 썩 좋은 단어는 아니라서 설명은 여기까지만..

하지만 모든 단어를 적절한 때에 아주, 자알, 사용합니다.

 

가끔씩 마눌이 쓰는 언어를 잘못해석해서 엉뚱한 말을 하기도 합니다.

 

“여보~ 일어나!”(아침에 일어나라고 부르는 소리)

“여보~ 사랑해!”(뭐 부탁 할 때나 장난할 때)

“남편, 뭐해?”

 

이런 말을 시시때때로 들어온 남편.

 

여보랑 남편의 다른 뜻을 설명한 적이 한두 번 있었던 거 같았는데...

어느 날 남편이 마눌을 부르는 소리.

 

“내 kleine클라이네/귀여운(작은) 남편~”

 

헉? 내가 언제부터 남편의 남편 이였던고?

 

“아니지. 난 당신 남편이 아니지. 당신이 나에게 남편이고, 나는 당신의 아내야.

내가 남자냐? 남편이게?”

 

여보와 남편의 차이점을 남편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마눌이 항상 두 단어를 적절하게 섞어 쓰니 한국어 서툰 남편이 헷갈리는 것도 이해합니다.

 

저희는 이렇게 서로가 배워가는 언어를 보면서 서로 기특해하고,

서로 대견해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평생 말을 배우며 살아가는 부부여서 서로를 키우면서 살아간다고 느끼는 거 같습니다.

 

세상에는 아이가 아닌 (외국인)남편이나 아내와 살아가면서 “아기 키우는 재미”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지 싶습니다. 저희부부처럼 말이죠.^^

 

 

눌러주신 공감이 저를 춤추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로그인하지 않으셔도 공감은 가능합니다.^^

반응형

댓글